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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달전리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2003
  • 시대
    청동기~철기
  • 위치
  • 원소장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603-10번지 일원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입지
강원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처음 확인되었으며, 2003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개관
이 유적에서는 장방형 주거지 34기, 원형 주거지 1기, 형태를 알 수 없는 유구 6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 내부에는 바닥에 점토를 깔아다지고 주거지내부의 가장자리나 모서리에 저장구덩이를 시설한 것이 많다. 장방형 주거지 33호의 경우는 바닥에 점토를 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토광형노지가 아닌 위석식노지를 만들었으며 가로 5열과 세로 2열의 기둥받침돌을 내부에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한편, 이곳에서는 철기시대 낙랑계 토광묘가 조사되어 주목되었는데, 곽을 사용하면서 토광을 단이 지게 굴토하는 것은 서북한의 황해도 외곽지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사된 낙랑계 토광묘에서는 토기와 철기가 공반되었다. 낙랑계 토광묘의 경우, 공반 유물과 함께 유구가 확인된 것은 남한지역에서는 매우 드문 예라고 할 수 있다.
출토유물
* 심발형의 공렬토기와 장경호 및 단경호, 굽다리잔, 마제석촉, 석부, 유구석부, 반월형 석도, 화분형토기, 연질회색타날문단경호, 철부, 낫, 가지창 등
참고문헌
「가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강원대학교박물관, 1999
「경춘선 복선전철 제6공구 가평역사부지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자료」, 한림대학교박물관, 2003
해설
가평군은 광주산맥의 한가운데 위치한 전형적인 내륙 산악지형이다. 광주산맥의 주능선은 포천군과 가평군의 경계를 형성한다. 동쪽으로 강원도 화천, 서남으로 경기도 포천과 연접하고 있다. 가평군의 남쪽으로는 북한강이 흐르는데 주변에는 협소하지만 분지와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비교적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는 곳은 조종천 중류의 분지성 지형을 이루는 현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과 북한강으로 유입하는 가평천의 중하류 지역이다.
달전리는 서남쪽 구릉성 산지로부터 북한강변 충적대지로 이어지는 완사면 평탄지형에 해당한다. 서남쪽에는 비교적 낮은 구릉선 산지가 위치하며, 북쪽의 달전천과 동북쪽의 가평천이 각각 동류, 남류하며 북한강으로 흘러들면서 동쪽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달전리의 북쪽인 가평천 주변의 구릉과 충적평야에는 석장리 고인돌, 삼회리 유물산포지, 이곡리유적, 마장리유적, 항사리유적, 대곡리유적, 마장리유적, 조옥동절터, 가평향교 등 신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많은 유적이 분포한다.
경춘선 복선전철화사업 제6공구 가평역사건설부지에 해당하여 1998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 의해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에 2002년 동 박물관에 의해 시굴조사가 이루어져 청동기시대 유구가 확인되어 전면발굴의 필가마성이 제기되었다. 발굴조사는 2002년부터 2003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구덩유구 조선시대 야외 화덕자리 5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로는 집자리 31기와 구덩유구 10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열을 지어 분포하는데 강의 흐름과 나란하게 조성된 것과 직교한 방향으로 조성된 것으로 구분된다. 평면 형태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상당수는 집자리 한켠 바닥에는 진흙다짐을 하여 침상이나 작업장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인 이색점토다짐지역을 마련하였다. 진흙다짐이 된 지역 내부에서는 평면 원형 직경 50~60㎝ 크기의 작업공 1~2기가 확인된다. 바닥면 중앙 또는 단벽에 치우친 지점에는 원형으로 얇게 굴착하여 조성한 화덕자리 또는 깬돌을 돌려놓아 조성한 위석식 화덕자리 1~2기가 조성되어 있다.
화덕자리 사이에는 기둥구멍이 열을 지어 설치되어 있으며 벽가 또는 벽가 내측에도 다수 배치되어 있다. 33호 집자리의 경우 2×5열의 초석시설이 시설되어 있다. 모서리 벽면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공이 확인된다. 가장 규모가 큰 집자리는 3호와 37호 집자리로 면적 37.4㎡에 달하며 가장 작은 것은 21호 방형집자리로 6.4㎡ 정도이다. 일부 집자리 내부 바닥면에는 지붕의 서까래로 추정되는 탄화 목재가 다량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8호 집자리는 바닥면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구멍이 설치된 이른바 송국리식 집자리로 단 1기만이 확인되었다.
평면 원형과 방형의 구덩유구는 모두 10기가 조사되었는데 집자리의 부속유구나 저장 구덩리로 추정된다. 이 중 31호는 평면 방형 320×320×36㎝ 크기로 가장 큰 것이다.
유물은 즐문토기, 골아가리토기, 골아가리단사선문토기, 구멍무늬토기, 항아리형토기, 적색마연토기, 갈색간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토기류와 간돌도끼, 반달돌칼, 대팻날도끼, 가락바퀴, 갈돌과 갈판, 숫돌, 돌창, 간돌검, 돌창, 간돌화살촉, 돌끌, 그물추, 격지 등의 석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이와 함께 출토사례가 드문 기장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주목된다.
달전리유적은 가평에서 지금까지 조사된 것 중 가장 규모가 크며 방사성탄소연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기원전 14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까지 장기 존속된 대규모 마을 유적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중부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변화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달전리유적에서는 중부지역 구멍무늬토기문화가 북한강 상류역으로 확산되는 과정과 함께 강원 영동지역과 북한강 상류지역의 이른 시기 무문토기문화가 전파되는 양상, 그리고 이들 문화가 혼합되는 모습을 동시에 살필 수 있다. 추가적으로 달전리에서 조사된 송국리식 집자리는 주로 금강유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적인 유구로 북한강유역 일대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조사 사례가 매우 드문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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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전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20_008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