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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명주도 감창 김유립에게 우릉도를 조사하게 하다

사료해설
왕이 동해(東海) 가운데 우릉도(羽陵島; 울릉도)란 섬이 있는데 땅이 넓고 토질이 비옥하며, 예전에 주현을 설치한 적도 있는 땅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명주도 감창(溟州道監倉) 김유립(金柔立)을 파견하여 조사하게 하였다. 김유립이 돌아와 섬 가운데 큰 산이 있고 그 면적은 동으로는 1만여보, 서족으로는 1만 3천보, 남쪽으로 가면 1만 5천보, 북쪽으로는 8천보에 달한다고 하였다. 울릉도에는 촌락의 옛 터가 7개소 있고, 석불과 철종(鐵鍾)과 석탑이 있으나 암석이 많아 거주가 어렵다고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의논을 중지하였다. 고려 조정에서 울릉도로 백성들을 이주시키려는 정책을 논의하였고 관리를 파견했다는 사실을 통하여 고려시대에도 울릉도의 주민과 영토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문
○王,聞東海中,有羽陵島,地廣土肥,舊有州縣,可以居民,遣溟州道監倉金柔立往視,柔立,回奏,島,中有大山,從山頂,向東,行至海一萬餘步,向西,行一萬三千餘步,向南,行一萬五千餘步,向北,行八千餘步,有村落基址七所,有石佛,鐵鍾,石塔,多生柴胡,蒿本,石南草,然,土多巖石,民不可居,遂寢其議。
번역문
○ 왕이 동해 가운데에 우릉도(羽陵島 경북 울릉도)란 섬이 있는데, 지역이 넓고 토질도 비옥하여 옛날에는 주(州)ㆍ현(縣)을 두었던 곳으로 백성이 살 만하다는 말을 듣고, 명주도감창(溟州道監倉) 김유립(金柔立)을 보내어 시찰하게 하였는데, 유립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섬 가운데에 큰 산이 있는데, 산마루로부터 동쪽으로 향하여 가면 바다에 이르기까지 1만여 보요, 서쪽으로 향하여 가면 1만 3천여 보요, 남쪽으로 향하여 가면 1만 5천여 보요, 북쪽으로 향하여 가면 8천여 보입니다. 촌락의 옛 터가 7개소나 있고, 석불(石佛)과 철종(鐵鍾)과 석탑(石塔)이 있으며, 시호(柴胡)ㆍ고본(蒿本)ㆍ석남초(石南草)가 많이 생산됩니다. 그러나 암석이 많아서 백성이 살 수 없습니다." 하여, 드디어 그 논의를 정지했다. 관정사(觀靜寺)에 행차하여 풍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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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도 감창 김유립에게 우릉도를 조사하게 하다 자료번호 : sd.d_0016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