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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강원도 어사 조석명이 영동 지방 해방(海防)의 허술한 상황에 대해 논하다

사료해설
강원도 암행어사 조석명(趙錫命)이 영동지방의 해양방어가 허술한 상황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다. 그는 영동지방의 해양방어에 대해 논의하던 중에 “어민의 말에 따르면 평해(平海)와 울진(蔚珍)은 울릉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뱃길이 조금도 막힘이 없으며, 울릉도 동쪽으로 도서(島嶼)가 잇달아 倭의 지경과 접한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숙종대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지리적 지식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울릉도 동쪽으로 도서가 잇달아 있고, 이 섬들은 일본의 경계와 접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울릉도 동쪽으로 잇달아 있는 도서란 오늘의 울릉도와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1696년에 있었던 막부의 ‘죽도(울릉도)도해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일본 연해민들의 울릉도 도해가 계속되자 정부 관원들 사이에서는 왜선에 대한 방어책이 거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문
○辛酉/江原道御史趙錫命, 論嶺東海防踈虞狀。 略曰: “詳聞浦人言, 平海、蔚珍, 距鬱陵島最近, 船路無少礙, 鬱陵之東, 島嶼相望, 接于倭境。 戊子、壬辰, 異樣帆檣, 漂到高、杆境, 倭船往來之頻數, 可知。 朝家雖以嶺海之限隔, 謂無可憂, 而安知異日生釁之必由嶺南, 而不由嶺東乎? 綢繆之策, 不容少緩。” 廟堂請依其言, 飭江原道, 團束軍保。
번역문
강원도 어사 조석명(趙錫命)이 영동 지방의 해방(海防)의 허술한 상황을 논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포인(浦人)의 말을 상세히 듣건대, ‘평해(平海)·울진(蔚珍)은 울릉도(鬱陵島)와 거리가 가장 가까와서 뱃길에 조금도 장애(障礙)가 없고, 울릉도 동쪽에는 섬이 서로 잇달아 왜경(倭境)에 접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자년과 임진년에 모양이 다른 배가 고성(高城)과 간성(杆城) 지경에 표류(漂流)해 왔으니 왜선(倭船)의 왕래가 빈번함을 알 수 있는데, 조가(朝家)에서는 비록 영해(嶺海)가 격(隔)해 있어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후일의 변란이 반드시 영남에서 말미암지 않고 영동으로 말미암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방어(防禦)의 대책을 조금도 늦출 수 없습니다.”
하니, 묘당(廟堂)에서 그 말에 따라 강원도에 신칙하여 군보(軍保)를 단속할 것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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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어사 조석명이 영동 지방 해방(海防)의 허술한 상황에 대해 논하다 자료번호 : sd.d_0149_0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