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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4-3-1 야하타제철소

연합군 포로 찰리 웨이블 | 1942년 9월 후쿠오카 포로수용소에 연행,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노동
 
미국인 찰리 웨이블은 1942년 9월 후쿠오카 포로수용소로 연행되었습니다. 수용소에는 벼룩, 이, 빈대 등이 들끓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식량과 의료품 부족 등으로 사망자가 증가했습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했고, 휴일은 한 달에 3일이었습니다. 공습이 있은 후에는 일본인들의 대우가 더 나빠져서 일하던 중에 몇 명의 포로가 사망했습니다.
 
「야하타제철소의 강제연행 강제노동에 대해서(八幡製鉄所における強制連行・強制労働について)」
 
연합군 포로 E.K.브릿 | 1945년 1월 후쿠오카 포로수용소에 연행,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노동
 
미국인 브릿은 1945년 1월 후쿠오카 포로수용소에 연행되었습니다. 수용소에는 약 1,200명이 12개동에 나누어 수용되었습니다. 책임자인 미군 대위가 수용소 지붕에 적십자 표시를 그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군 소위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대꾸했습니다. 미군 포로 장교 100명 중 24명이 이질, 각기병, 폐렴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야하타제철소의 강제연행 강제노동에 대해서(八幡製鉄所における強制連行・強制労働について)」
 
연합군 포로 도널드.L.버소 | 1944년 7월 후쿠오카 후타세탄광에 연행
 
미국인 도널드.L.버소는 필리핀 코레히도르에서 포로가 되어 가바나투안 수용소에 수용되어 사체 매장 등의 일을 했습니다. 1944년 7월, 마닐라 부두에서 닛쇼마루 선창에 쳐박혀 일본제철 후타세탄광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지원병처럼 훈련 받고 뺨을 맞거나 구타 등의 폭력을 당하며 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탄광 노동을 벗어나기 위해 자기 팔을 부러뜨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향과 가족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바라보며 버텼습니다.
 
「미국 전 포로·가족과의 교류회(アメリカ元捕虜·家族との交流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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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야하타제철소 자료번호 : isjs.d_0004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