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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4-2-1 야하타제철소

중국인 양만귀(梁万貴) | 1944년 포로가 되어 9월 강제연행
 
양만귀 씨는 산서성 출신으로 1938년 14세에 항일군에 참가했습니다. 1944년 핑루(平魯)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다퉁(大同) 수용소에 수감되어 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이후 베이징 포로수용소로 보내져 200명 규모의 대대에 편성되었습니다. 이후 탕구(塘沽)로 보내졌다가 1944년 9월 야하타 제철소로 연행되었습니다. 제철소에서는 항만에서 석탄, 광석, 철강 등의 실어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1945년이 되자 도야마 현 후시키(伏木)항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는 석탄, 식염, 대두 등을 실어 날랐습니다. 중국 팔로군(八路軍) 동료가 일본 감독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어 전쟁포로를 학대하지 말라는 단결의 목소리를 내어 저지시켰습니다.
 
『일본군의 무기 아래 중국인 노동자4 재일본 중국인 노동자(日軍槍刺下的中国労工4 中国労工在日本)』, 新华出版社, 1995
 
중국인 고쌍희(賈双喜) | 1944년 후쿠오카 후타세탄광으로 강제연행
 
고쌍희 씨는 1944년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고문당했습니다. 그 후 스자좡(石家莊) 남(南)병영에 들어가 베이징 시위안(西苑)병영을 거쳐 칭다오로 보내졌습니다. 그 후 후쿠오카 후타세(二賴)의 우루노(潤野)갱으로 연행되었습니다. 체력이 회복되면 갱내로 들어가야 했고, 동작이 느리다며 일본인에게 몽둥이로 맞았습니다. 떨어지는 돌에 맞아 팔이 골절되었습니다. 우루노갱으로 연행된 300명 중 40명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 강제연행 중국노동자 구술사2(二戦擄日中国労工口述史2)』, 斎魯書社, 2005
 
중국인 김구양(金九讓) | 1942년 포로가 되어 1944년 후쿠오카 후타세탄광으로 강제연행
 
김구양 씨는 산둥성 출신으로 1937년 유격대에 입대하여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1942년 일본군의 토벌작전 중 붙잡혀 고문당했습니다. 스자좡 남(南)병영에 들어가 칭다오에서 후타세의 주오(中央)갱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대대 2중대 6소대 12반으로 편성되었습니다. 매일 12시간 노동을 했고, 20상자 분량의 석탄을 채굴해야 했습니다. 일할 때 안전에 대한 배려는 없었고 월급, 보수도 없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 강제연행 중국노동자 구술사2(二戦擄日中国労工口述史2)』, 斎魯書社,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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