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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동이전

현조(顯祖)가 백제에게 내린 조서(詔書)

지난 경진년(440) 이후에 신이 우리 나라 서쪽 경계인 소석산북국주 001
번역주 001)
小石山北國 : 『삼국지』 위서 한전에 열거하고 있는 마한 54국 중 小石索國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경기도 남양 지방이나 강화 교동으로 보는 견해(千寬宇, 1979 ; 천관우, 1989)가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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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바다 가운데서 시신 10여 구를 발견하고 아울러 의복과 기물, 안장과 굴레를 얻었는데, 그것을 살펴보니 고[구]려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는 황제의 사신이 신의 나라로 내려오던 중 기다란 뱀주 002
번역주 002)
長蛇 : 잔인하고 흉악한 것을 비유한 것으로, 고구려를 비하하여 쓴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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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막아 바다에 빠진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마음속 깊이 분노를 품게 됩니다. 옛날 송나라가 신주를 죽이자 초나라 장왕이 맨발로 뛰어나갔고,주 003
번역주 003)
宋戮申舟 楚莊徒跣 : 신주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大夫로 초 장왕의 명령을 받아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송으로 가는 도중에 살해되자 극도로 분노한 장왕(기원전 613~기원전 591)이 맨발로 뛰어나와 군대를 이끌고 송을 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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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매가 놓아준 비둘기를 낚아채자 신릉군주 004
번역주 004)
信陵君 : 중국 전국시대 말기 위나라 昭王의 아들로 이름은 無忌이다. 신릉군은 그의 봉호이며 ‘戰國4君’ 중 하나로 칭해질 정도로, 어질고 자신을 낮추며 식객을 잘 대접하여 그 인원이 3, 000명에 달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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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먹지를 않았습니다. 적을 이겨 이름을 세우는 것은 아름답고 높기가 그지없습니다. 무릇 구구한 변방의 나라들도 오히려 만대의 신의를 사모하는데, 하물며 폐하께서는 그 기개가 하늘과 땅에 부합하고, 세력은 산과 바다를 기울게 할 만한데, 어찌 더벅머리 아이(고구려왕)가 천자에게 가는 길에 걸터앉아 가로막게 하십니까? 이제 습득한 안장 하나를 올리니 이 한 가지로 사실을 징험하십시오.”
현조주 005
번역주 005)
顯祖 : 북위의 獻文帝를 말하며, 이름은 弘이다. 孝文帝의 父로 재위기간은 465~471년이다. 天安(466~467)과 皇興(467~471)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471년 5세가 되는 어린 아들 宏(효문제)에게 선위하여 476년 23세로 죽을 때까지 어린 효문제를 대신하여 섭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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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백제가] 그 궁벽지고 먼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조공하였다고 생각하여 예우를 더욱 두텁게 하고, 사신 소안을 파견하여 백제의 사신과 함께 돌아가게 하면서 조서를 내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표문을 받고 별 탈이 없다고 들으니 매우 기쁘오. 경이 동쪽 구석 오복 주 006
번역주 006)
五服 : 고대 중국에서 京畿 밖의 지역을 甸服·侯服·綏服·要服·荒服 등 5등급으로 나누어 5복이라 하였다. 1복은 500리이므로, 5복은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2,500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5복의 밖이라는 표현은 매우 아주 먼 外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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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있으면서도 산과 바닷길을 멀다 하지 않고 위나라의 궁궐에 정성을 바치니 지극한 뜻을 기쁘고 가상히 여겨 마음속에 간직해두었소. 짐은 만세의 위업을 이어받아 천하(四海)에 군림해서 모든 살아있는 것을 다스리고 있소. 지금 온 세상이 깨끗이 하나가 되고 팔방 구석 먼 곳에서도 귀의해 와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오는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풍속이 조화로워지고 병사와 군마가 강성해진 것은 모두 여례 등이 직접 듣고 보았소. 경은 고구려와 화목하지 못하여 여러 차례 능멸과 침범을 당했으나 진실로 의에 따르고 인으로써 지킬 수 있다면 원수에 대해 또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앞서 보낸 사신은주 007
번역주 007)
前所遣使 : 앞서 개로왕이 보낸 국서에는 庚辰年(440, 비유왕 14) 이후로 되어 있다. 이 기사를 통해 북위도 백제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36년 북연의 멸망과 풍홍의 신병 인도에 따른 고구려와 북위, 송 사이의 갈등과 대립의 파장을 염려한 비유왕이 경진년(440) 북위에 먼저 사신을 파견했고, 북위는 그 후 어느 시기에 荒外之國을 위무한다는 명목으로 백제에 사신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노중국,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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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 황복주 008
번역주 008)
荒服 : 고대 중국의 五服 중 왕기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200~2,500리에 해당하는 가장 먼 지역을 말한다. 따라서 荒外 지역은 荒服 바깥의 지역, 즉 화외의 만이를 지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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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먼 나라를 위무하게 하였는데, 이제까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달했는지 못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가 없었소. 경이 보낸 안장은 옛날 타던 것과 비교해보니 중국의 물건이 아니었소. 비슷한 일을 가지고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아니 되오. 나라를 다스리고 경영하는 요체는 별지에 갖추어 놓았소.”
또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고[구]려가 강함을 믿고 경의 영토를 자주 침범하며, 선대 임금의 옛 원한을 갚으려고 백성을 쉬게 하는 커다란 덕을 버려 전쟁이 여러 해에 걸치고 환난이 황복 변경에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대가 보낸] 사신은 신서주 009
번역주 009)
申胥之誠 :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의 공격 때 초나라를 구원한 신서, 즉 신포서(申包胥)의 정성을 뜻한다. 신서는 중국 춘추시대 楚나라 昭王 때의 大夫로, 吳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매우 곤경에 빠지자 秦나라의 哀公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진나라가 이를 거절하자 신서는 7일 동안 먹지도 않고 곡을 하면서 초나라를 구원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진나라 애공은 이러한 신서의 정성에 감동하여 군대를 보내 초나라를 구해주었다. 신서의 정성은 이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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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정성을 겸비하였고 나라에는 초·월과 같은 위급함주 010
번역주 010)
楚越之急 : 초나라와 월나라의 위급함을 말한다. 초나라의 위급함은 신서의 정성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월나라의 위급함이란 越王 句踐과 吳王 夫差의 대결을 말하는 것으로, 臥薪嘗膽이란 고사로 잘 알려져 있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패배하여 會稽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위급한 순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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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으니, 이에 마땅히 의로움을 펼치고 약한 자를 도와 기회를 타서 번개처럼 쳐야 할 것이오. 다만 고[구]려가 선대의 조정부터 번국이라 칭하면서 조공을 한 지가 오래되었소. 저들(고구려)에게 비록 예로부터 지은 흠이 있지만, 우리 나라(魏)에 대해서는 아직 명령을 어긴 허물이 없소. 경이 사신을 처음 통하면서 곧바로 정벌할 것을 요구하는데, 일의 시기를 깊이 따져보니 이치가 또한 충분하지 않소. 그래서 지난해주 011
번역주 011)
往年 : 개로왕이 여례 등 백제 사신을 위나라에 보낸 472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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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여례 등을 보내 평양에 이르러 그 사유와 정상(由狀)을 징험하고자 하였소. 그러나 고[구]려가 여러 차례 상주하여 요청하였고, 말과 이치가 모두 맞으니 사신이 그 주청을 억제할 수 없었고, 법관도 그 죄책을 물을 [죄상을 엮어낼] 수가 없었소. 그 때문에 아뢰는 바를 듣고, 여례 등에게 조서를 내려 돌려보내는 것이오. 만약 지금이라도 다시 짐의 뜻을 어긴다면 과오와 허물이 더욱 드러날 것이므로, 나중에 비록 스스로 진술한다고 하더라도 죄를 피할 수가 없을 것이오. 그런 다음에 군사를 일으켜 치는 것이 의에 합당할 것이오. 구이주 012
번역주 012)
九夷 : 중국이 자신들의 동쪽 지방에 거주하는 이민족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에 “王制云 東方曰夷 夷者也 言仁而好生 萬物地而出 故天性柔順 … 夷有九種 曰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 등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기록에 나오는 畎夷부터 陽夷까지가 구이의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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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나라들은 대대로 바다 건너 살면서 도가 창달되면 번국으로서의 예를 받들고 은혜를 거두면 자기 강토를 보전할 뿐이었소. 그러므로 속박해 묶는 일주 013
번역주 013)
羈縻 : 覊는 말의 굴레, 縻는 소의 고삐를 뜻한다. 말과 소는 기미를 통해 제어하기 때문에 상대를 직접 지배하지 않고 고삐로 붙잡아 매는, 즉 고삐를 통해 제어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주변의 이민족들을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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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옛 전적에 드러나 있으나 호시주 014
번역주 014)
楛矢 : 광대싸리로 만든 화살로, 중국의 동쪽에 있는 이민족인 肅愼의 특산품으로 전해진다. 화살의 공납[矢之貢]이란 주나라 武王이 은나라 桀王을 쳐서 멸망시키자 숙신이 石弩와 矢를 보낸 데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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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바치는 것은 연중 때때로 비었소. 경은 강약의 형세를 갖추어 아뢰고 과거의 행적을 모두 열거하였는데, 풍속이 다르고 사정도 달라 비기고 견주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지만, [우리의] 큰 규칙과 큰 책략은 도달하고자 하는 바가 여전히 있소. 지금 중국이 하나로 평정되고 통일되어 천하에 근심이 없으므로 매번 동쪽 끝까지 위엄을 드높이고 국경 밖에 깃발을 매달며, 외딴 나라에서 백성들을 구하고 먼 지역까지 황제의 위풍을 펼치려고 하였으나, 진실로 고구려가 제때에 사정을 말하였기 때문에 아직 정벌을 점칠 단계에는 미치지 못했소. 지금 만약 [고구려가] 조서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경이 가져온 계책이 짐의 뜻에 일치하므로 대군(元戎)이 출동하는 것도 장차 멀다고 할 수 없을 것이오. [경은] 곧 미리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가 함께 일으킬 수 있으니 갖추어 놓고 일을 기다릴 것이며, 때때로 보고하는 사신을 보내어 속히 저쪽의 정황을 알려주도록 하시오. 군사를 일으키는 날에 경이 [길을 안내하는] 향도의 우두머리가 되면 크게 승리한 뒤에는 또 으뜸가는 공훈의 상을 받을 것이니 또한 좋지 않겠소? 바친 비단과 베, 해산물이 비록 어떤 물건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나 그대의 지극한 마음을 알겠으니, 이제 여러 가지 물건을 별지와 같이 내리오.”
또 연에게 조서를 내려 소안 등을 [백제로] 호송케 하였다. 소안 등이 고구려에 이르자 연은 예전에 여경과 원수진 일이 있다 주 015
번역주 015)
餘慶有讎 : 『삼국사기』 18 고구려본기6 고국원왕 41년조에 나온 사건을 말한다. 371년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전사한 사건으로, 동일한 사건의 기록이 백제본기2 근초고왕 26년조와 근구수왕 즉위년조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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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면서 동쪽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소안 등이 이에 모두 돌아오자 조서를 내려 그들을 준절히 꾸짖었다. 5년(475) 소안 등으로 하여금 동래주 016
번역주 016)
東萊 : 중국 산동성에 있는 지명이다. 산동성의 登州와 萊州는 예로부터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오는 출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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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바다를 건너가서 여경에게 옥새가 있는 문서를 하사하여 그 정성과 절개를 포상하게 하였다. 소안 등이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바람을 만나 떠다니다가 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 번역주 001)
    小石山北國 : 『삼국지』 위서 한전에 열거하고 있는 마한 54국 중 小石索國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경기도 남양 지방이나 강화 교동으로 보는 견해(千寬宇, 1979 ; 천관우, 1989)가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바로가기
  • 번역주 002)
    長蛇 : 잔인하고 흉악한 것을 비유한 것으로, 고구려를 비하하여 쓴 표현이다. 바로가기
  • 번역주 003)
    宋戮申舟 楚莊徒跣 : 신주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大夫로 초 장왕의 명령을 받아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송으로 가는 도중에 살해되자 극도로 분노한 장왕(기원전 613~기원전 591)이 맨발로 뛰어나와 군대를 이끌고 송을 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바로가기
  • 번역주 004)
    信陵君 : 중국 전국시대 말기 위나라 昭王의 아들로 이름은 無忌이다. 신릉군은 그의 봉호이며 ‘戰國4君’ 중 하나로 칭해질 정도로, 어질고 자신을 낮추며 식객을 잘 대접하여 그 인원이 3, 000명에 달했다 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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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顯祖 : 북위의 獻文帝를 말하며, 이름은 弘이다. 孝文帝의 父로 재위기간은 465~471년이다. 天安(466~467)과 皇興(467~471)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471년 5세가 되는 어린 아들 宏(효문제)에게 선위하여 476년 23세로 죽을 때까지 어린 효문제를 대신하여 섭정을 하였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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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五服 : 고대 중국에서 京畿 밖의 지역을 甸服·侯服·綏服·要服·荒服 등 5등급으로 나누어 5복이라 하였다. 1복은 500리이므로, 5복은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2,500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5복의 밖이라는 표현은 매우 아주 먼 外地를 의미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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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所遣使 : 앞서 개로왕이 보낸 국서에는 庚辰年(440, 비유왕 14) 이후로 되어 있다. 이 기사를 통해 북위도 백제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36년 북연의 멸망과 풍홍의 신병 인도에 따른 고구려와 북위, 송 사이의 갈등과 대립의 파장을 염려한 비유왕이 경진년(440) 북위에 먼저 사신을 파견했고, 북위는 그 후 어느 시기에 荒外之國을 위무한다는 명목으로 백제에 사신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노중국, 2005).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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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荒服 : 고대 중국의 五服 중 왕기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200~2,500리에 해당하는 가장 먼 지역을 말한다. 따라서 荒外 지역은 荒服 바깥의 지역, 즉 화외의 만이를 지칭하기도 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申胥之誠 :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의 공격 때 초나라를 구원한 신서, 즉 신포서(申包胥)의 정성을 뜻한다. 신서는 중국 춘추시대 楚나라 昭王 때의 大夫로, 吳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매우 곤경에 빠지자 秦나라의 哀公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진나라가 이를 거절하자 신서는 7일 동안 먹지도 않고 곡을 하면서 초나라를 구원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진나라 애공은 이러한 신서의 정성에 감동하여 군대를 보내 초나라를 구해주었다. 신서의 정성은 이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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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楚越之急 : 초나라와 월나라의 위급함을 말한다. 초나라의 위급함은 신서의 정성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월나라의 위급함이란 越王 句踐과 吳王 夫差의 대결을 말하는 것으로, 臥薪嘗膽이란 고사로 잘 알려져 있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패배하여 會稽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위급한 순간을 말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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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往年 : 개로왕이 여례 등 백제 사신을 위나라에 보낸 472년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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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九夷 : 중국이 자신들의 동쪽 지방에 거주하는 이민족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에 “王制云 東方曰夷 夷者也 言仁而好生 萬物地而出 故天性柔順 … 夷有九種 曰畎夷·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陽夷” 등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기록에 나오는 畎夷부터 陽夷까지가 구이의 명칭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13)
    羈縻 : 覊는 말의 굴레, 縻는 소의 고삐를 뜻한다. 말과 소는 기미를 통해 제어하기 때문에 상대를 직접 지배하지 않고 고삐로 붙잡아 매는, 즉 고삐를 통해 제어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주변의 이민족들을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으로 자리잡았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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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楛矢 : 광대싸리로 만든 화살로, 중국의 동쪽에 있는 이민족인 肅愼의 특산품으로 전해진다. 화살의 공납[矢之貢]이란 주나라 武王이 은나라 桀王을 쳐서 멸망시키자 숙신이 石弩와 矢를 보낸 데서 유래한 말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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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餘慶有讎 : 『삼국사기』 18 고구려본기6 고국원왕 41년조에 나온 사건을 말한다. 371년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전사한 사건으로, 동일한 사건의 기록이 백제본기2 근초고왕 26년조와 근구수왕 즉위년조에 실려 있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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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萊 : 중국 산동성에 있는 지명이다. 산동성의 登州와 萊州는 예로부터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오는 출발지였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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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顯祖)가 백제에게 내린 조서(詔書) 자료번호 : jd.k_0010_0100_003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