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갈정숙녜(葛井宿禰; 후지이노스쿠네)

갈정숙녜(葛井宿禰; 후지이노스쿠네)
 관야조신(菅野朝臣; 스가노아오미)과 조상이 같으며, 염군(鹽君)의 아들 미산군(味散君)의 후손이다.
 
【주석】
1. 갈정숙녜(葛井宿禰)
갈정(葛井)의 씨명은 등정(藤井)으로도 쓴다. 모두 ‘후지이’로 읽는다. 하내국(河內國) 지기군(志紀郡) 장야향(長野鄕) 등정사(藤井寺)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대판부(大阪府) 등정사시(藤井寺市) 일대이다.
갈정숙녜의 성은 왕(王)에서 백저사(白猪史), 갈정련(葛井連)의 순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서기』 흠명기(欽明紀) 30년(569)조에 왕진이(王辰爾)의 조카 담진(膽津)이 백저사(白猪史)의 씨성을 받았고, 『속일본기』 양로(養老) 4년(720) 4월에 백저사씨(白猪史氏)가 갈정련(葛井連)으로 개성되었다고 한다. 또 『속일본기』 연력(延曆) 10년(791) 정월 계유조에는 갈정련도의(葛井連道依) 등은, 자신의 동족인 진련씨(津連氏)는 이미 높은 조신(朝臣)의 성을 받았는데 자신들은 아직도 연(連) 성에 머물고 있다고 하면서 숙녜(宿禰) 성을 청원하여 승인받았다.
갈정숙녜(葛井宿禰) 일족으로는 갈정숙녜석웅(葛井宿禰石雄)과 갈정숙녜점천(葛井宿禰鮎川)이 있다. 이들은 『속일본기』 승화(承和) 원년(834) 11월 계사조에 우경인(右京人)으로서 번량조신(蕃良朝臣)으로 개성하였다고 한다. 번량조신씨는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6년(864) 8월 신미조에 우경인 하내수(河內守) 종5위하 번량조신풍촌(蕃良朝臣豐村)이 갈정련종지(葛井連宗之), 갈정련거도성(葛井連居都成) 등과 함께 관야조신(菅野朝臣)의 씨성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갈정련직신(葛井連直臣)은 『일본삼대실록』 원경(元慶) 원년(877) 12월 임오조에 동족인 선련부사마(船連副使麿), 진숙녜보주(津宿禰輔主) 등과 함께 관야조신의 씨성을 받았으며 자신의 선조가 백제국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2. 관야조신(菅野朝臣)
관야조신에 대해서는 앞의 「관야조신(菅野朝臣)」 조(857) 참조.
3. 염군남미산군(鹽君男味散君)
『속일본기』 연력(延曆) 9년(790) 7월 신사조에 인덕천황은 진손왕의 장자인 태아랑왕(太阿郞王)을 근시로 삼았는데, 태아랑왕의 아들은 해양군(亥陽君)이며, 그 아들은 오정군(午定君)인데 여기서 3명의 아들을 낳으니 장남은 미사(味沙), 차남은 진이(辰爾), 막내는 마려(麻呂)이고, 이들로부터 갈정(葛井), 선(船), 진련(津連) 3성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염군(鹽君)은 해양군의 아들인 오정군이고, 미산군(味散君)은 오정군의 장남인 미사에 해당한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갈정숙녜(葛井宿禰; 후지이노스쿠네)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40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