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덕(路博德)과 양복(楊僕) 등을 장군으로 삼고 남하한 뒤 번우(番禺)에 집결하도록 함
원정(元鼎) 5년(전112) 가을 위위(衛尉) 노박덕(路博德)이 복파장군(伏波將軍)이 되어 계양(桂陽)
주 001에서 출동하여 회수(匯水)
주 002
각주 002)
로 남하하였다. 주작도위(主爵都尉)주 003
양복(楊僕)
주 004匯水 : 현재의 廣東省 連州市 東南 連江이다. 『集解』의 徐廣에 의하면, 匯는 ‘황(湟)’으로 된 곳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裴駰은 「地理志」에 “桂陽에 匯水가 있어 四會로 통한다.”라고 하여 徐廣이 말한 ‘湟’을 부정하고 있다. 아울러 이 匯는 ‘淮’로 된 곳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索隱』은 劉氏를 인용하여 匯는 ‘湟’이 되어야 한다고 하며, 그 근거로 『漢書』에는 ‘下湟水’로 되어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본래 ‘광(洭)’이라고 하기도 한다. 『漢書』 「地理志」에 “桂陽匯水, 南至四會入郁林, 過郡二, 行九百里”라 하였고, 『水經注』 「匯水注」에는 “匯水出桂陽縣西北上驛山盧聚為盧溪水, 東南流徑桂陽縣故城, 謂之匯水”라 하여 桂陽縣에서 발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주 004)
은 누선장군(樓船將軍)이 되어 예장(豫章)
주 005에서 출동하여 횡포(橫浦)
주 006로 남하하였다.주 007이전 월나라 사람으로 한에 귀의한 귀의후(歸義侯) 두 사람주 008은 각각 과선장군(戈船將軍)주 009楊僕 : 『史記』 「酷吏列傳」에 “양복은 의양사람이다. 천부로 관리가 되었다. 하남군수 안의 추천으로 어사가 되었고 관동의 도적을 감찰하였다. 윤제의 통치를 모방하여 함부로 잡아들였다. 벼슬이 주작도위에까지 이르러 구경의 반열에 들어섰다. 천자가 능력이 있다고 여겨 남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누선장군에 제수하였고 공을 세워 將梁侯에 봉하였다. 순체에게 잡혔다가 병사하고 말았다(楊僕者, 宜陽人也. 以千夫爲吏. 河南守案擧以爲能, 遷爲御史, 使督盜賊關東. 治放尹齊, 以爲敢摯行.稍遷至主爵都尉, 列九卿. 天子以爲能. 南越反, 拜爲樓船將軍, 有功, 封將梁侯. 爲荀彘所縛. 居久之, 病死).”고 전하고 있다.
각주 009)
과 하려장군(下厲將軍)주 010이 되어 영릉(零陵)
주 011에서 출발하여 한 사람은 이수(離水)
주 012로 남하하고, 한 사람은 창오(蒼梧)
주 013로 진격하였다. 치의후(馳義侯)
주 014로 하여금 파촉(巴蜀)의 죄수들과 야랑국(夜郞國)
주 015의 군사를 징발하여 장가강(牂柯江)
주 016戈船將軍 : 『集解』에서 裴駰은 명칭의 유래에 대해 張晏설을 인용하여, 월나라 사람들은 물 속에서 다른 사람의 배를 뒤집어엎거나 또 물 속의 교룡을 처치하기 위해서 배 아래에 창을 넣어 두기 때문에 戈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였다. 臣瓚은 또 『伍子胥書』에 戈船이란 것이 있는데, 방패와 창을 실었기 때문에 그리 불렀다고 설명하고 있다(集解徐廣曰 : 「厲, 一作 『瀨』.」 駰案 : 張晏曰 「越人於水中負人船, 又有蛟龍之害, 故置戈於船下, 因以爲名也」. 應劭曰 「瀨, 水流涉上也」. 瓚曰 「伍子胥書有戈船, 以載干戈, 因謂之 『戈船』 也」). 이처럼 戈船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考證』도 徐德森과 劉攽의 설을 인용하여 배 밑에 창을 둔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張晏설이 황당하다고 설명하고 臣瓚의 설이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하고 있다(4662쪽). 또, 『西京雜記』 권6에는, “昆明池에 戈船, 樓船이 각각 백척이 있다. 樓船 위에는 樓櫓를 세우고 戈船 위에는 戈矛를 세운다. 네 모퉁이에 모두 幡旄를 드리운다……”고 되어 있어 과선은 창을, 누선은 망루를 배 위에 설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주 016)
으로 남하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모두 번우(番禺)에 집결하도록 하였다.牂柯江 : 『正義』에 의하면 牂牁江은 남쪽 요새 밖에서 나와 동쪽으로 四會와 통하며 番禺에 다다라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다. 牂柯江의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史記』 「西南夷列傳」의 정의에 인용된 崔浩에 의하면, ‘牂柯’는 ‘배를 매는 말뚝’이다(正義崔浩云 : 「牂柯, 繫船杙也.」). 이것이 地名의 유래가 된 데에는 『華陽國志』에 “楚 頃襄王 때 莊蹻를 보내 夜郞을 쳤는데, 군대가 且蘭에 이르러, 江岸에 배를 대고 步兵戰을 벌였다. 夜郞을 멸한 뒤에, 且蘭을 배를 댄 말뚝이 있는 곳이라 하여 곧 그 이름을 고쳐 牂柯라 하였다(常氏華陽國志云 : 「楚頃襄王時, 遣莊蹻伐夜郞, 軍至且蘭, 椓船於岸而步戰. 旣滅夜郞, 以且蘭有椓船柯處, 乃改其名為牂柯.」).”라고 하였다.
- 각주 001)
-
각주 002)
匯水 : 현재의 廣東省 連州市 東南 連江이다. 『集解』의 徐廣에 의하면, 匯는 ‘황(湟)’으로 된 곳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裴駰은 「地理志」에 “桂陽에 匯水가 있어 四會로 통한다.”라고 하여 徐廣이 말한 ‘湟’을 부정하고 있다. 아울러 이 匯는 ‘淮’로 된 곳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索隱』은 劉氏를 인용하여 匯는 ‘湟’이 되어야 한다고 하며, 그 근거로 『漢書』에는 ‘下湟水’로 되어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본래 ‘광(洭)’이라고 하기도 한다. 『漢書』 「地理志」에 “桂陽匯水, 南至四會入郁林, 過郡二, 行九百里”라 하였고, 『水經注』 「匯水注」에는 “匯水出桂陽縣西北上驛山盧聚為盧溪水, 東南流徑桂陽縣故城, 謂之匯水”라 하여 桂陽縣에서 발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각주 003)
-
각주 004)
楊僕 : 『史記』 「酷吏列傳」에 “양복은 의양사람이다. 천부로 관리가 되었다. 하남군수 안의 추천으로 어사가 되었고 관동의 도적을 감찰하였다. 윤제의 통치를 모방하여 함부로 잡아들였다. 벼슬이 주작도위에까지 이르러 구경의 반열에 들어섰다. 천자가 능력이 있다고 여겨 남월이 반란을 일으키자 누선장군에 제수하였고 공을 세워 將梁侯에 봉하였다. 순체에게 잡혔다가 병사하고 말았다(楊僕者, 宜陽人也. 以千夫爲吏. 河南守案擧以爲能, 遷爲御史, 使督盜賊關東. 治放尹齊, 以爲敢摯行.稍遷至主爵都尉, 列九卿. 天子以爲能. 南越反, 拜爲樓船將軍, 有功, 封將梁侯. 爲荀彘所縛. 居久之, 病死).”고 전하고 있다.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戈船將軍 : 『集解』에서 裴駰은 명칭의 유래에 대해 張晏설을 인용하여, 월나라 사람들은 물 속에서 다른 사람의 배를 뒤집어엎거나 또 물 속의 교룡을 처치하기 위해서 배 아래에 창을 넣어 두기 때문에 戈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였다. 臣瓚은 또 『伍子胥書』에 戈船이란 것이 있는데, 방패와 창을 실었기 때문에 그리 불렀다고 설명하고 있다(集解徐廣曰 : 「厲, 一作 『瀨』.」 駰案 : 張晏曰 「越人於水中負人船, 又有蛟龍之害, 故置戈於船下, 因以爲名也」. 應劭曰 「瀨, 水流涉上也」. 瓚曰 「伍子胥書有戈船, 以載干戈, 因謂之 『戈船』 也」). 이처럼 戈船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考證』도 徐德森과 劉攽의 설을 인용하여 배 밑에 창을 둔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張晏설이 황당하다고 설명하고 臣瓚의 설이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하고 있다(4662쪽). 또, 『西京雜記』 권6에는, “昆明池에 戈船, 樓船이 각각 백척이 있다. 樓船 위에는 樓櫓를 세우고 戈船 위에는 戈矛를 세운다. 네 모퉁이에 모두 幡旄를 드리운다……”고 되어 있어 과선은 창을, 누선은 망루를 배 위에 설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각주 010)
- 각주 011)
- 각주 012)
- 각주 013)
- 각주 014)
- 각주 015)
-
각주 016)
牂柯江 : 『正義』에 의하면 牂牁江은 남쪽 요새 밖에서 나와 동쪽으로 四會와 통하며 番禺에 다다라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다. 牂柯江의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史記』 「西南夷列傳」의 정의에 인용된 崔浩에 의하면, ‘牂柯’는 ‘배를 매는 말뚝’이다(正義崔浩云 : 「牂柯, 繫船杙也.」). 이것이 地名의 유래가 된 데에는 『華陽國志』에 “楚 頃襄王 때 莊蹻를 보내 夜郞을 쳤는데, 군대가 且蘭에 이르러, 江岸에 배를 대고 步兵戰을 벌였다. 夜郞을 멸한 뒤에, 且蘭을 배를 댄 말뚝이 있는 곳이라 하여 곧 그 이름을 고쳐 牂柯라 하였다(常氏華陽國志云 : 「楚頃襄王時, 遣莊蹻伐夜郞, 軍至且蘭, 椓船於岸而步戰. 旣滅夜郞, 以且蘭有椓船柯處, 乃改其名為牂柯.」).”라고 하였다.
색인어
- 이름
- 노박덕(路博德), 양복(楊僕), 귀의후(歸義侯), 치의후(馳義侯)
- 지명
- 계양(桂陽), 회수(匯水), 예장(豫章), 횡포(橫浦), 월나라, 한, 영릉(零陵), 이수(離水), 창오(蒼梧), 파촉(巴蜀), 야랑국(夜郞國), 장가강(牂柯江), 번우(番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