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왕 을불리(乙弗利)가 요동을 노략질함
[서]진에서 영가(307~312)의 난주 001이 일어나자, 선비 모용외(269~333)주 002가 창려[군]의 대극성주 003을 점거하였다. [동진의] 원제(재위: 317~322)주 004가 [모용외에게] 평주자사주 005
번역주 005)
를 제수하였다. 고구려왕 을불리(미천왕, 재위: 300~331)가 자주 요동을 노략질하였지만, [모용]외는 막을 수 없었다. [을]불리가 죽자, 아들 쇠(고국원왕, 재위: 331~371)주 006가 이어서 왕위에 올랐다. 平州刺史 : 평주는 조위에서 幽州의 동부를 분할해 처음으로 세운 행정단위이다. 서진이 274년에 다시 설치하였다. 현재 요령성 六股河 以東에서 遼河의 이서와 이동 지역을 관할하였다. 창려·요동·현도·낙랑·대방의 5군을 예하에 두었으며 치소는 襄平이었다. 영가의 난 이후 혼란상황 속에서 모용외의 세력이 커지자 평주자사 崔毖와 고구려·于文部·段部의 3국 연합군이 모용외를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격파당하고 모용외의 선비세력이 평주 지역을 석권하게 되었다. 이에 동진 원제는 모용외를 평주자사로 삼아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인해주었다. 이 문단은 진의 지배력이 약화된 이후 선비 모용부가 평주 지역을 차지하게 된 과정을 축약한 내용에 해당한다.
- 번역주 001)
- 번역주 002)
- 번역주 003)
- 번역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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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5)
平州刺史 : 평주는 조위에서 幽州의 동부를 분할해 처음으로 세운 행정단위이다. 서진이 274년에 다시 설치하였다. 현재 요령성 六股河 以東에서 遼河의 이서와 이동 지역을 관할하였다. 창려·요동·현도·낙랑·대방의 5군을 예하에 두었으며 치소는 襄平이었다. 영가의 난 이후 혼란상황 속에서 모용외의 세력이 커지자 평주자사 崔毖와 고구려·于文部·段部의 3국 연합군이 모용외를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격파당하고 모용외의 선비세력이 평주 지역을 석권하게 되었다. 이에 동진 원제는 모용외를 평주자사로 삼아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인해주었다. 이 문단은 진의 지배력이 약화된 이후 선비 모용부가 평주 지역을 차지하게 된 과정을 축약한 내용에 해당한다.
- 번역주 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