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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성산자산성

城山子山城
  • 저필자
    이현주(성균관대학교)
  • 시대
    발해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吉林省) 돈화시(敦化市) 현유진(賢儒鎭) 대석하(大石河) 남안 성산자산(城山子山)
  • 시대
    발해
  • 유형
규모
둘레: 2,000m
입지
대석하(大石河)가 북쪽에 있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목단강으로 들어가며, 하구와 산성은 4,5km 떨어져 있다. 목단강은 산 동남쪽 4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유유하게 흘러간다. 대강(大江) 동안(東岸)은 영승둔유지(永勝屯遺址)가 있고 산성과 동서방향으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데, 두 유적의 거리는 5km이다. 오동성(敖東城) 유지는 동북쪽에 있으며,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육정산(六頂山) 발해고분군은 동북쪽으로 7km 정도 떨어져있다. 동북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는 발해사찰지가 있다.
유적개관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은 대체로 타원형으로 산허리를 감싸고 있다. 성벽은 산의 높고 낮음에 따라 축조하여, 굽이굽이 산 허리를 감싼다. 성벽은 토석혼축(토협석축(土夾石築))으로, 성벽의 기단의 너비는 5-7m에 이르는데, 어떤 곳은 너비가 10m 이상인 곳도 있다. 서문에서 동남쪽으로 성벽은 매우 큰 산비탈을 따라 점차 높아지며, 이 구간은 산의 형태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으므로, 각각 일정하지 않은 거리에 3개의 마면을 설치되어 있다. 동문 안쪽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50여개의 반지하식(반지혈식(半地穴式)) 주거지가 남아있다.
유물개관
성 안팎에서 일찍이 창끝, 쇠칼, 철화살촉, 당나라 동전 “開元通寶” 등이 출토되었다.
해설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은 발해시기의 성지이다.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은 중국의 길림성(吉林省) 돈화시(敦化市) 현유진(賢儒鎭) 대석하(大石河)의 남안에 위치한 성산자산(城山子山)에 축조되었다. 성산자산의 동남쪽 4㎞ 떨어진 곳에 목단강이 있고, 강을 사이에 마주 두고 강의 동안에 영승유지(永勝遺址)가 있다. 성산자산성과 영승유지의 거리는 5㎞이다. 또한 오동성(敖東城) 유지는 동북쪽으로 15㎞ 정도 떨어져 있다. 육정산 발해무덤떼는 동북쪽으로 7㎞정도 떨어져 있다. 동북쪽으로 5㎞ 떨어진 곳에는 발해사찰지가 있다.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은 대체로 타원형을 이루면서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데, 성벽의 둘레는 2,000m이다. 성벽은 토석혼축(土夾石築)으로, 성벽의 기단의 너비는 5-7m에 이르는데, 어떤 곳은 너비가 10m 이상인 곳도 있다. 서문에서 동남쪽으로 성벽은 매우 큰 산비탈을 따라 점차 높아지며, 이 구간은 산의 형태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으므로, 각각 일정하지 않은 거리에 3개의 마면[雉]을 설치하였다. 성 동북쪽 모서리는 낮고 평평해지므로, 이곳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동문 안쪽에 평평하고 완만한 산굽이가 있는데, 이곳에는 50여개의 수혈식[半地穴式] 주거지가 남아있다. 각각의 집에는 문이 있는데, 대부분이 동쪽 벽 중간에 있으나, 일부는 북쪽에 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성의 동쪽 주거지 근처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또한 산 남쪽 기슭과 산성의 서쪽에도 약간의 주거지가 있는데, 성의 안쪽에 서문으로부터 100m 떨어진 곳에는 지름이 4.6m인 돌로 만든 연못이 있다. 또한 성 중간에는 몇 곳의 평평하게 깎은 운동장 형태의 연병장이 있는데 큰 것은 100여m에 이른다. 성 안팎에서 일찍이 창끝, 쇠칼, 철화살촉, 당나라 동전인 개원통보(開元通寶) 등이 출토되었다. 성산자산성의 유물과 형식은 발해 초기의 역사를 구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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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자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50_0020_0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