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속자치통감장편

거란과 화친했다는 고려왕 왕순(王詢)의 표문(表文)

  • 날짜
    1021년 9월 (음)(天禧 5年(1021) 9月 甲午)
  • 출전
    卷97 天禧 5年(1021) 9月 甲午
권지고려국왕사(權知高麗國王事) 왕순(王詢)[현종(顯宗)]이 고주사(告奏使)·어사예부시랑(御事禮部侍郎)주 001
각주 001)
御事禮部侍郎 : 고려의 관직. 예의·제향·조회·교빙·학교 등의 정사를 관장하는 禮部(尙書禮部)의 부관이다. 국초에는 禮官이라 하였으나 성종 14年(995)에 상서예부라 고쳤는데, 문종대 인원과 품계를 정함에 따라 判事(宰臣이 겸직), 상서, 知部事, 시랑, 낭중, 원외랑을 둠으로써 정4품의 예부시랑 1인을 두게 되었다. 이후 충렬왕대 관제 격하 과정에서 典理司에 병합되었다가, 충선왕 즉위年(1298)에 儀曹라 고치며 상서 이하 시랑을 3인으로 두고 그 가운데 1인은 他官이 겸직하도록 하였다. 충선왕 복위年(1308)에 選部로 통합되어 없어졌다가, 공민왕 5年(1356)에 문종대 관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예부를 복설하며 상서, 시랑, 낭중, 원외랑을 다시 두었다. 이후 예부가 禮儀司 등으로 명칭이 바뀌는 과정에서 시랑 역시 그 명칭이 摠郞, 議郞 등으로 바뀌었다. 다만 여기에서 ‘御事’가 붙어 있는데, ‘御事禮部’는 ‘尙書禮部’의 오기이다. 3성6부제가 성종대에 御事6官으로 처음 설치되었기 때문에, 이후 관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닫기
한조(韓祚)주 002
각주 002)
韓祚 : 생몰년 미상. 고려의 관인. 본관은 湍州이다. 문하시중 韓彦恭의 아들이다. 靖宗의 비 容信王后와 容懿王后의 부친이기도 하다. 현종 12年(1021) 송나라에 사은사로 가서 이듬해 5월 귀국할 때 송나라의 인종으로부터 『陰陽二宅書』, 『乾興曆』, 『釋典』 등을 받아 왔고 10월에 諫議大夫가 되었다. 1030년 知西京留守事가 되었다.
닫기
등 170인을 보내 은혜에 사례하고 또한 거란(요)과 화친했다고 말했으며 또한 표를 올려 음양·지리서, 『성혜방』을 구하니 그것을 모두 하사했다.

  • 각주 001)
    御事禮部侍郎 : 고려의 관직. 예의·제향·조회·교빙·학교 등의 정사를 관장하는 禮部(尙書禮部)의 부관이다. 국초에는 禮官이라 하였으나 성종 14年(995)에 상서예부라 고쳤는데, 문종대 인원과 품계를 정함에 따라 判事(宰臣이 겸직), 상서, 知部事, 시랑, 낭중, 원외랑을 둠으로써 정4품의 예부시랑 1인을 두게 되었다. 이후 충렬왕대 관제 격하 과정에서 典理司에 병합되었다가, 충선왕 즉위年(1298)에 儀曹라 고치며 상서 이하 시랑을 3인으로 두고 그 가운데 1인은 他官이 겸직하도록 하였다. 충선왕 복위年(1308)에 選部로 통합되어 없어졌다가, 공민왕 5年(1356)에 문종대 관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예부를 복설하며 상서, 시랑, 낭중, 원외랑을 다시 두었다. 이후 예부가 禮儀司 등으로 명칭이 바뀌는 과정에서 시랑 역시 그 명칭이 摠郞, 議郞 등으로 바뀌었다. 다만 여기에서 ‘御事’가 붙어 있는데, ‘御事禮部’는 ‘尙書禮部’의 오기이다. 3성6부제가 성종대에 御事6官으로 처음 설치되었기 때문에, 이후 관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2)
    韓祚 : 생몰년 미상. 고려의 관인. 본관은 湍州이다. 문하시중 韓彦恭의 아들이다. 靖宗의 비 容信王后와 容懿王后의 부친이기도 하다. 현종 12年(1021) 송나라에 사은사로 가서 이듬해 5월 귀국할 때 송나라의 인종으로부터 『陰陽二宅書』, 『乾興曆』, 『釋典』 등을 받아 왔고 10월에 諫議大夫가 되었다. 1030년 知西京留守事가 되었다.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거란과 화친했다는 고려왕 왕순(王詢)의 표문(表文) 자료번호 : jt.k_0003_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