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석(大石; 오이시)
대석(大石; 오이시)
고구숙녜(高丘宿禰; 다카오카노스쿠네)와 같은 조상이며, 광릉고목(廣陵高穆)의 후손이다.
【주석】
1. 대석(大石)
대석은 근강국(近江國) 율태군(栗太郡) 대석(大石)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하현(滋賀縣) 대진시(大津市) 대석중(大石中) 일대이다.
대석씨의 일족으로는 대석모인(大石毛人, 天平 7년 9월 18일 「經師寫紙給絁布案」, 『대일본고문서』 7-42), 대석광만려(大石廣万呂, 天平 8년 7월 1일자 「寫疏所解」, 동 2-2), 대석조마려(大石鯛麻呂, 天平 15년 7월 13일자 「中宮職利移案」, 동 8-220), 대석제상(大石諸上, 天平勝寶 2년 3월 10일자 「寫書所解」, 동 10-44), 대석아고만려(大石阿古万呂, 天平勝寶 2년 6월 「寫書所解案」, 동 11-296), 대석동인(大石東人, 天平勝寶 2년 8월 28일자 「造東大寺司解)」, 동 25-133)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서륭사 발굴 조사 출토 목간(奈良國立文化財硏究所, 1976, 『西隆寺發掘調査報告書』 )에도 대석상인(大石常人)이 명기되어 있다. 『만엽집』(15-3617)에도 대석곤마(大石蔉麿)가나오고, 『일본삼대실록』 인화(仁和) 원년(885) 윤3월조에도좌변관(左弁官) 사부(使部) 대석익행(大石益行)이 있다.
대석은 근강국(近江國) 율태군(栗太郡) 대석(大石)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하현(滋賀縣) 대진시(大津市) 대석중(大石中) 일대이다.
대석씨의 일족으로는 대석모인(大石毛人, 天平 7년 9월 18일 「經師寫紙給絁布案」, 『대일본고문서』 7-42), 대석광만려(大石廣万呂, 天平 8년 7월 1일자 「寫疏所解」, 동 2-2), 대석조마려(大石鯛麻呂, 天平 15년 7월 13일자 「中宮職利移案」, 동 8-220), 대석제상(大石諸上, 天平勝寶 2년 3월 10일자 「寫書所解」, 동 10-44), 대석아고만려(大石阿古万呂, 天平勝寶 2년 6월 「寫書所解案」, 동 11-296), 대석동인(大石東人, 天平勝寶 2년 8월 28일자 「造東大寺司解)」, 동 25-133)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서륭사 발굴 조사 출토 목간(奈良國立文化財硏究所, 1976, 『西隆寺發掘調査報告書』 )에도 대석상인(大石常人)이 명기되어 있다. 『만엽집』(15-3617)에도 대석곤마(大石蔉麿)가나오고, 『일본삼대실록』 인화(仁和) 원년(885) 윤3월조에도좌변관(左弁官) 사부(使部) 대석익행(大石益行)이 있다.
2. 고구숙녜(高丘宿禰)
고구숙녜에 대해서는 하내국 제번의 「고구숙녜」 조(991)에는 “백제국 공족(公族)인 대부 고후(高侯)의 후손인 광릉고목(廣陵高穆)에서 나왔다”라고 하여 출자가 백제국으로 나온다.
고구숙녜에 대해서는 하내국 제번의 「고구숙녜」 조(991)에는 “백제국 공족(公族)인 대부 고후(高侯)의 후손인 광릉고목(廣陵高穆)에서 나왔다”라고 하여 출자가 백제국으로 나온다.
3. 광릉고목(廣陵高穆)
광릉(廣陵)은 한 무제 시대에 광릉국(廣陵國)을 두고 광릉현(廣陵縣)을 지배하였으며, 후한 시대에는 광릉원(廣陵國)을 광릉현(廣陵縣)으로 개편하였다.
광릉(廣陵)은 한 무제 시대에 광릉국(廣陵國)을 두고 광릉현(廣陵縣)을 지배하였으며, 후한 시대에는 광릉원(廣陵國)을 광릉현(廣陵縣)으로 개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