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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앵정조신(櫻井朝臣; 사쿠라이노아소미)

앵정조신(櫻井朝臣; 사쿠라이노아소미)
 석천조신(石川朝臣)과 조상이 같다. 소아석천숙녜(蘇我石川宿禰; 소가노이시카하노스쿠네)의 4세손인 도목숙녜대신(稻目宿禰大臣; 이나메노스쿠네노오오미)의 후손이다. 『일본기』와 합치한다.
 
【주석】
1. 앵정조신(櫻井朝臣)
앵정(櫻井)이라는 씨명은 율령제 시대의 하내국(河內國) 석천군(石川郡) 앵정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대판부(大阪府) 부전림시(富田林市) 앵정이다. 앵정조신은 원래 신(臣)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 앵정신이 다른 52씨와 더불어 조신이라는 성을 받은 사실이 보인다.
앵정신·앵정조신의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서명천황 즉위전기의 앵정신화자고(櫻井臣和慈古)가 보일 뿐이고, 『신찬성씨록』 편찬 당시까지 그 일족을 확인할 수 없다. 앵정신화자고는 소아도목(蘇我稻目)의 후손이라고 하였으므로 소아도목의 아들이나 손자로서 곧 소아하이(蘇我蝦夷)의 숙부나 4촌 형제였을 것이다. 소아도목의 딸로 흠명(欽明)의 왕비가 된 견염원(堅鹽媛)이 낳은 아들 앵정황자(櫻井皇子) 등으로 보아 소아씨와 앵정이라는 지역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 석천조신(石川朝臣)
좌경 황별(상) 「석천조신」 조(065) 참조.
3. 소아석천숙녜(蘇我石川宿禰)
『고사기』 효원천황단에서 건내숙녜(建內宿禰)의 아들이며 소아신(蘇我臣), 앵정신(櫻井臣) 등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일본서기』에서는 응신천황 3년에 기각숙녜(紀角宿禰)와 함께 백제에 파견되었다고 하였다. 『기씨가첩(紀氏家牒)』에서는 그가 대왜국 고시현 소아리에 집이 있어서 소아석하숙녜라고 불렀다고 하고, 소아신이 천변신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의 아들 소아만지(蘇我滿智)가 이중·반정·윤공·안강·웅략 5대에 걸쳐 봉사(奉仕)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4. 도목숙녜대신(稻目宿禰大臣)
『일본서기』 선화천황(宣化天皇) 원년(536) 2월 임신삭(壬申朔)조에 소아도목숙녜(蘇我稻目宿禰)를 대신으로 삼았다고 하였고, 같은 해 5월 신축(辛丑)에 소아대신도목숙녜(蘇我大臣稻目宿禰)가 미장련(尾張連)을 보내 미장국(尾張國) 둔창(屯倉)의 곡식을 옮겼다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흠명(欽明) 즉위전기(即位前紀) 12월 갑신조에 소아도목숙녜대신을 대신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흠명 2년(541) 3월조에는 소아대신도목숙녜의 딸로 견염원(堅鹽媛)이 있는데 7남 6녀를 낳았다고 하였고,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德法王帝說)』에서도 종아도목족니대신(宗我稻目足尼大臣)의 딸 지다사비매명(支多斯比賣命, 堅鹽媛)이 이파례지변궁치천하귤풍일천황(伊波禮池邊宮治天下橘豐日天皇)을 낳았는데 그가 성덕태자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흠명 13년(552) 10월에 백제 성명왕(聖明王)이 석가불 금동상 등을 바치자 소아대신도목숙녜가 아뢰기를, “서번제국(西蕃諸國)이 모두 예배하는데, 풍추일본(豐秋日本)이 어찌 홀로 등지겠는가.”라고 하자 천황이 진심으로 원하는 도목숙녜에게 맡겨 예배하도록 해보라고 하였다.
이에 대신이 소간전(小墾田)의 집에 모시고, 향원(向原)의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았다고 하였다. 흠명 14년(553) 7월 갑자조에 소아대신도목숙녜가 칙을 받들어 왕진이(王辰爾)를 보내어 선부(船賦)를 조사하여 기록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흠명 16년(555) 7월 임술조에 소아대신도목숙녜와 수적반궁신(穗積磐弓臣) 등을 길비5군(吉備五郡)에 보내어 백저둔창(白猪屯倉)을 두었고, 동 17년(556) 7월 기묘조에서는 소아대신도목숙녜 등을 비전아도군(備前兒島郡)에 보내어 둔창을 두었다고 하였다. 흠명 23년(562) 8월조에서는 갑옷 2벌, 금으로 장식한 칼 2자루, 모양을 새긴 동종 3구, 오색번(五色幡) 2자루, 미녀원(美女媛)과 그 시녀 오전자(吾田子)를 소아도목숙녜대신에게 보냈다고 하였다. 흠명 31년(570) 3월 갑신삭에 소아대신도목숙녜가 죽었다고 하였다.
용명천황(用明天皇) 원년(586) 정월 임자삭조에서는 소아대신도목숙녜(蘇我大臣稻目宿禰)의 딸 석촌명(石寸名)을 세워 빈으로 삼았는데 전목황자(田目皇子)를 낳았다고 하였다. 『상궁성덕법왕제설』에서도 천황이 소아이나미숙녜대신(蘇我伊奈米宿禰大臣)의 딸 이지지나랑녀(伊志支那郞女)를 맞아들여 다미왕(多米王)을 낳았다고 하였고, 『고사기』 용명천황단(用明天皇段)에서도 천황이 도목숙녜대신(稻目宿禰大臣)의 딸을 의부예다지비매(意富藝多志比賣)를 맞아들여 다미왕(多米王)을 낳았다고 하였다. 『일본서기』숭준천황(崇峻天皇) 즉위전기에 박뢰부천황(泊瀬部天皇)의 어머니는 소자군(小姊君)인데 도목숙녜의 딸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소아도목은 안한천황·선화천황·흠명천황에 걸쳐 대신의 지위에 있었고, 그 딸들이 천황의 후궁에 들어가 천황과 황자를 낳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불교의 수용에 적극적이었으므로 후대의 불교 관련 사료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소아도목의 계보에 대해서는 『공경보임(公卿補任)』 선화천황(宣化天皇) 조항의 소아도목숙녜의 말미에 원년(536) 2월에 임명되었으며 만지숙녜(滿智宿禰)의 증손이고 한자(韓子)의 손자이며 고려(高麗)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또 흠명천황 조항의 소아도목숙녜의 말미에는 31년(570) 봄 3월에 죽었는데 관직에 35년 동안 있었으며, 용명(用明)·숭준(祟峻)·추고(推古) 세 천황의 외조부라고 하였다. 또한 『기씨계도전(紀氏系圖傳)』 일문에도 소아도목숙녜는 소아석하숙녜의 현손이며 만지숙녜의 증손이고 한자숙녜(韓子宿禰)의 손자이며 마배숙녜(馬背宿禰)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5. 일본기합(日本紀合)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1월 경신조에 석천신(石川臣)에게 조신이라는 성을 내린 기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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