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국(闍婆國) 조공사(朝貢使)의 복장
전에 조공사(朝貢使)들이 범선을 타고 60일 만에 명주(明州) 정해현(定海縣)
주 001
각주 001)
에 도달했을 때, 시박을 관장하던 감찰어사 장숙(張肅)
주 002이 우선 역(驛)을 통해 사절단의 복장 형태가 전에 입공했던 페르시아[波斯]와 흡사하다고 상주하였다. 통역[譯者]은 “현재 선박을 책임지고 있는 대상인 모욱(毛旭)은 건계(建溪)주 003사람으로 수차례 본국을 왕래한 바 있어, 그를 향도로 삼아 내조하여 조공하게 되었다”고 밝혔다.주 004 또한 그 나라의 국왕은 ‘하지마라야(夏至馬囉夜)’주 005라고 부르고, 왕비는 ‘낙견사파리(落肩娑婆利)’로 부르며, 본국에는 또한 각 부서가 설치되어 속료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나라 말[方言]로 박주(舶主)를 ‘발하(葧荷)’라고 칭하며, 박주의 처는 ‘발하비니속(葧荷比尼贖)’주 006이라고 일컫는다고 했다. 그 배에 있던 부인 이름은 미주(眉珠)로서, 상투를 틀었으나 보석장식은 하지 않았고 만포(蠻布)로 몸을 휘감았는데 얼굴색은 청흑색이고 언어는 통하지 않았으며 절을 하는 것도 마치 남자들이 땅에 무릎을 꿇고 모배(膜拜)하는 것 같았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목에 금목걸이를 찼으며, 손에는 금팔찌를 하고 비단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이름은 아로(阿嚕)라고 했다. 그 나라는 삼불제(三佛齊)국과는 원한이 있어서 서로 공격하여 전쟁을 벌인 바 있다.주 007 본국에는 산에 원숭이가 많았는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고, 소리를 내어 부르면 바로 나타났으며, 때때로 과일을 던지면, 두 마리 커다란 원숭이가 먼저 나타났는데, 현지인들은 그들을 후왕(猴王)과 후부인(猴夫人)으로 불렀으며, 그들이 식사를 끝내야 나머지 원숭이들이 남은 것을 먹었다. 사절이 도착하자 황상께서는 해당관리에게 융숭히 접대하라고 명했다. 오래 머무른 후에 사절단이 귀환했는데, 황금과 비단[金帛]을 매우 후하게 하사했으며, 그들의 청에 따라 또한 양마(良馬)와 병기[戎具]도 하사해주었다. 사절이 일컫기를: “옆 나라 이름이 파라문(婆羅門)
주 008인데, 인정(人情)을 살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타인을 해치려 하면 모두 사전에 미리 알 수 있다”고 했다.定海縣: 宋代 兩浙路 明州의 속현으로 甬江을 타고 내려가다가 바다로 진입하는 입구에 위치하여, 당시 명주에 설치된 市舶司가 위치하던 곳이다. 북송 대에 望海縣을 定海縣으로 개명하여 세워졌으며, 治所는 현 寧波市 동북방의 鎭海區에 위치했었다. 李心傳의 『建炎以來朝野雜記』 甲集 「兵馬·平江許浦水軍」에 “平江許浦水軍者, 本明州定海縣水軍也. 舊隸沿海制置司, 防托海道.”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곳에는 명주 주둔 수군이 포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外交使節과 海商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항구가 있었기 때문에 安壽의 상주로 東海神祠가 설치된 이래로 媽祖廟·昭利廟 등 海神廟도 연이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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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定海縣: 宋代 兩浙路 明州의 속현으로 甬江을 타고 내려가다가 바다로 진입하는 입구에 위치하여, 당시 명주에 설치된 市舶司가 위치하던 곳이다. 북송 대에 望海縣을 定海縣으로 개명하여 세워졌으며, 治所는 현 寧波市 동북방의 鎭海區에 위치했었다. 李心傳의 『建炎以來朝野雜記』 甲集 「兵馬·平江許浦水軍」에 “平江許浦水軍者, 本明州定海縣水軍也. 舊隸沿海制置司, 防托海道.”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곳에는 명주 주둔 수군이 포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外交使節과 海商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항구가 있었기 때문에 安壽의 상주로 東海神祠가 설치된 이래로 媽祖廟·昭利廟 등 海神廟도 연이어 건립되었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색인어
- 이름
- 장숙(張肅), 모욱(毛旭), 미주(眉珠), 아로(阿嚕)
- 지명
- 명주(明州) 정해현(定海縣), 페르시아[波斯], 삼불제(三佛齊)국, 파라문(婆羅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