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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경상 감사 홍열모가 허황된 말로 인심을 동요한 정우룡·이상우 등을 잡아 문초한 사실을 아뢰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852년 7월 11일(음)
  • 출전
사료해설
17세기 후반 ‘울릉도 쟁계’가 발생하면서 조선 조정은 울릉도를 정기적으로 수토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지리적 정보가 확대되었고, 연해민들의 울릉도와 독도왕래가 더욱 활발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울릉도 수토제가 해금(海禁)의 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울릉도 왕래는 불법적인 것이었다. 그 결과 울릉도를 근거지로 하는 도적(賊漢)이 생기기도 하였다.
원문
"○慶尙監司洪說謨, 以安東營將金在徽秘報, 上密啓:“英陽縣居鄭禹龍及其子自性李尙友及其子允慶, 朴平陽孫密陽等, 作黨追逐, 胥動浮言, 募聚無賴之類, 耕田者撤, 搆屋者停。 急發將差, 捉致諸漢, 鉤覈根因, 則鄭禹龍, 本以南海之人, 年前新寓於本縣, 而其子自性, 性本頑悍, 自恃幻術, 敢生不道之兇計, 嘯聚徒黨於隣邑, 締結新寓之愚氓, 今月初七日, 期會於本縣劍磨山中, 仍爲擧事, 又與鬱陵島賊漢, 期會於今月初十日云, 端緖可謂盡露。 魁首鄭自性, 出招未捉者, 刻期跟捕之意, 關飭於英陽等邑, 而嗣後形止, 隨卽更報。”"
번역문
경상 감사(慶尙監司) 홍열모(洪說謨)가 안동 영장(安東營將) 김재휘(金在徽)의 비보(秘報)를 가지고 밀계(密啓)하기를,
“영양현(英陽縣)에 거주하는 정우룡(鄭禹龍)과 그의 아들 정자성(鄭自性), 이상우(李尙友)와 그의 아들 이윤경(李允慶), 박평양(朴平陽)의 손자 박밀양(朴密陽) 등이 작당(作黨)하여 서로 왕래하며 허황된 말을 퍼뜨리어 인심을 선동하고, 무뢰(無賴)한 무리를 불러 모으니, 경전(耕田)하는 자는 걷어치우고 집을 짓는 자는 중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급히 장차(將差)를 보내어 여러 놈을 잡아 와서 근인(根因)을 끝까지 핵실하였던 바, 정우룡(鄭禹龍)은 본시 남해(南海) 사람으로서 연전에 새로 본현(本縣)에 우거(寓居)하였고, 그의 아들 정자성(鄭自性)은 성품이 본시 완악하여 스스로 환술(幻術)을 믿고는 감히 부도(不道)한 흉계(凶計)를 내어 도당(徒黨)을 이웃 고을에서 불러 모으고, 새로 우거(寓居)한 어리석은 백성과 체결(締結)하여, 이달 초7일에 본현(本縣)의 검마산(劍麻山) 속에 모여서 그대로 거사(擧事)할 것을 기약하였으며, 또 울릉도(鬱陵島)의 도적들과 이달 초10일에 모이기로 기약하였다고 하였으니, 단서(端緖)가 죄다 드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괴수(魁首) 정자성(鄭自性)의 초사(招辭)에 나온 잡지 못한 자들은 기일을 정하여 염탐해 잡으라는 뜻을 영양(英陽) 등의 고을에 관칙(關飭)하였습니다. 이 뒤의 형지(形止)는 수시로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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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감사 홍열모가 허황된 말로 인심을 동요한 정우룡·이상우 등을 잡아 문초한 사실을 아뢰다 자료번호 : sd.d_0149_1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