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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흉노가 여러 차례 변방의 침입을 당한 뒤 한나라의 변경을 침입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군대를 해산함

  • 국가
    흉노(匈奴)
그 이듬해주 001
각주 001)
漢 宣帝 地節 3년(전6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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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 성곽주 002
각주 002)
城郭 : 성채에 살고 있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를 말한다. 타림분지의 여러 오아시스 도시들에 있던 성곽 국가를 말한다. 漢의 侍郞 鄭吉은 이때 타림분지의 오아시스국가 군대 만여 명과 자신이 이끌고 온 漢나라의 屯田兵士 1,500명을 이끌고 가서 車師國을 함락하였다(주77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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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국가들]이 모두 함께 흉노를 공격하여 거사국(車師國)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왕과 백성들을 잡아갔다. 선우가 다시 거사왕의 동생 두막(兜莫) 주 003
각주 003)
兜莫 : 車師國 왕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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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거사왕(車師王)으로 삼고 그 나머지 백성을 잡아 동쪽으로 옮겨 가게 하니 이전의 땅에 감히 [다시] 살 수 없었다. [한편] 한나라는 주둔 군대를 더 보내고 그들에게 거사 땅을 나누어 주어 그 곳을 채우도록 했다. 그 이듬해주 004
각주 004)
漢 宣帝 地節 4년(전6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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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는 여러 나라가 거사국을 함께 공격한 것을 원망하여 좌우대장에게 각각 만여 거느리게 해 [그곳으로] 보낸 다음 [흉노의] 오른쪽 땅에 둔전(屯田)하게 함으로써 오손과 서역[의 여러 나라들]을 압박했다. 그 후 2년주 005
각주 005)
2년이 아니라 4년 후, 즉 元康 4년(전62)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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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나 흉노가 좌오건(左奧鞬)과 우오건(右奧鞬)주 006
각주 006)
奧鞬 : 奧鞬은 匈奴의 官號인데, 이후 突厥時代 氏族長을 지칭하는 ‘이르킨(irkin)’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內田吟風, 1971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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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각각 6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출정하게 하여] 좌대장과 함께 거사성에 둔전하고 있던 한나라의 [군대를] 공격하게 했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그 이듬해주 007
각주 007)
漢 宣帝 神爵 元年(전6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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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이 [이곳에서] 3년간 자주 흉노 [영역] 안으로 쳐들어와 수천 명의 백성을 죽이거나 잡아갔고 말과 가축도 몰아갔다. 흉노가 만여 명의 기병을 보내 쫓아가 공격하였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 이듬해주 008
각주 008)
漢 宣帝 神爵 2년(전6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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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가 십만여 기병을 이끌고 요새 부근에서 사냥을 하면서 변경 안으로 들어와 노략질하고자 했다. 도착하기 이전에 마침 그 백성인 제제거당(題除渠堂) 주 009
각주 009)
題除渠堂 : 漢나라에 투항한 匈奴人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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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복해와 상황을 말하자 한나라가 이 사람을 언병록계려후(言兵鹿奚盧侯)주 010
각주 010)
言兵鹿奚盧侯 : “軍事에 대해 말을 하는 鹿奚盧(봉지의 이름)의 侯爵”을 의미한다. 이런 용례는 『漢書』 「趙充國傳」에서 “符奚盧山”이라고 기록이 나오는 것에서 볼 때 “鹿”이 잘못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匈奴大發十餘萬騎南傍塞, 至符奚盧山. 欲入爲寇. 亡者題除渠堂言之. 是符奚盧山爲塞南地, 故以封之.”) 그리고 爵의 이름에 “言兵”이 붙은 것은 그가 군대가 온다는 것을 漢나라에 투항하면서 알려온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명에다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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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봉했고, 후장군 조충국에게 군대 4만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변경을 따라 있는 아홉 개의 군(郡)주 011
각주 011)
九郡 : 五原, 朔方, 雲中, 代郡, 雁門, 定襄, 北平, 上谷, 漁陽을 말한다(주46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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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주둔하게 하여 흉노에 대비하게 했다. 한 달쯤 지나서 선우가 병이 나서 피를 토했기 때문에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가 군대를 해산했다. 그리고 제왕(題王)주 012
각주 012)
題王 : 匈奴王의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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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호차(都犁胡次) 주 013
각주 013)
都犁胡次 : 匈奴의 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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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에 사신으로 들여보내 화친을 청하였는데, 이에 답하기도 전에 바로 선우가 죽었다. 이해가 신작(神爵)주 014
각주 014)
漢 宣帝의 네 번째 연호(전61~전5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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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60)이었다.

  • 각주 001)
    漢 宣帝 地節 3년(전6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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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城郭 : 성채에 살고 있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를 말한다. 타림분지의 여러 오아시스 도시들에 있던 성곽 국가를 말한다. 漢의 侍郞 鄭吉은 이때 타림분지의 오아시스국가 군대 만여 명과 자신이 이끌고 온 漢나라의 屯田兵士 1,500명을 이끌고 가서 車師國을 함락하였다(주77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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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兜莫 : 車師國 왕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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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漢 宣帝 地節 4년(전6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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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2년이 아니라 4년 후, 즉 元康 4년(전62)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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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奧鞬 : 奧鞬은 匈奴의 官號인데, 이후 突厥時代 氏族長을 지칭하는 ‘이르킨(irkin)’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內田吟風, 1971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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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漢 宣帝 神爵 元年(전6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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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漢 宣帝 神爵 2년(전6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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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題除渠堂 : 漢나라에 투항한 匈奴人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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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0)
    言兵鹿奚盧侯 : “軍事에 대해 말을 하는 鹿奚盧(봉지의 이름)의 侯爵”을 의미한다. 이런 용례는 『漢書』 「趙充國傳」에서 “符奚盧山”이라고 기록이 나오는 것에서 볼 때 “鹿”이 잘못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匈奴大發十餘萬騎南傍塞, 至符奚盧山. 欲入爲寇. 亡者題除渠堂言之. 是符奚盧山爲塞南地, 故以封之.”) 그리고 爵의 이름에 “言兵”이 붙은 것은 그가 군대가 온다는 것을 漢나라에 투항하면서 알려온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명에다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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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1)
    九郡 : 五原, 朔方, 雲中, 代郡, 雁門, 定襄, 北平, 上谷, 漁陽을 말한다(주46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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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2)
    題王 : 匈奴王의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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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3)
    都犁胡次 : 匈奴의 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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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4)
    漢 宣帝의 네 번째 연호(전61~전5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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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두막(兜莫), 제제거당(題除渠堂), 조충국, 도리호차(都犁胡次)
지명
거사국(車師國), 한나라, 거사국,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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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가 여러 차례 변방의 침입을 당한 뒤 한나라의 변경을 침입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군대를 해산함 자료번호 : jo.k_0002_0094_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