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써 불러 이끄니, 소륵이 이에 내조하였다.
예로써 불러 이끄니, 소륵이 이에 내조하였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소륵[국]은 낙양과의 거리가 1만 300리이다. 순제 연간(125~144)에 왕 신반이 사신을 보내 헌상물을 바치니, 황제가 신반을 한대도위로 삼고, [그] 형의 아들 신훈을 수국사마로 삼았다주 001. [순제] 5년(130), 신반이 시자를 보내어 대완·사거의 사신과 함께 궐에 나아와 공물을 바쳤다주 002. 양가 2년(133), 신반이 다시 사자와 봉우 등을 바쳤다주 003.”
• 참고
『後漢書』 卷88 疏勒國 疏勒國去長史所居五千里 去洛陽萬三百里 領戶二萬一千 勝兵三萬餘人 … 帝永建二年 臣磐遣使奉獻 帝拜臣磐爲漢大都尉 兄子臣勳爲守國司馬 五年 臣磐遣侍子與大宛 莎車使俱詣闕貢獻 陽嘉二年 臣磐復獻師子 封牛 至靈帝建寧元年 疏勒王漢大都尉於獵中爲其季父和得所射殺 和得自立爲王 (五)[三]年 涼州刺史孟佗遣從事任涉將敦煌兵五百人 與戊(己)司馬曹寬 西域長史張晏 將焉耆 龜茲 車師前後部 合三萬餘人 討疏勒 攻楨中城 四十餘日不能下 引去 其後疏勒王連相殺害 朝廷亦不能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