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이 드러나 물고기를 살피니, 따로 진지(오후진수)의 그물을 놓았다.
공적이 드러나 물고기를 살피니, 따로 진지(오후진수)의 그물을 놓았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광화 원년(178), 선비가 주천을 노략질하니, 변경에 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무리가 날로 많아져, 가축을 기르고 짐승을 사냥해도, 음식을 공급하기에 부족했다. 단석괴가 이내 스스로 순행하다가, 오후진수주 001를 보았는데, 너비가 수백 리였으며, 흐르지 않고 멈춰 있었다. 그 속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을 잡을 수 없었다. 왜인이 그물질하여 [물고기] 잡기를 잘한다는 것을 듣고서, 이에 동쪽으로 왜국을 쳐서, 천여 가를 얻어, 진수 가에 이주시켜, 물고기를 잡게 하고, 이로써 식량을 조달했다. 광화 연간(178~183)에 단석괴가 죽었는데, 손자인 건만은 어리므로, 형의 아들인 괴두가 뒤를 이었다. 건만이 장성하자, 괴두와 나라를 다퉜으므로, 무리가 마침내 흩어졌다.”
• 참고
『後漢書』 卷90 烏桓鮮卑 光和元年冬 又寇酒泉 緣邊莫不被毒 種衆日多 田畜射獵不足給食 檀石槐乃自徇行見烏侯秦水廣從數百里 水停不流 其中有魚 不能得之 聞倭人善網捕 於是東擊倭人國 得千餘家 徙置秦水上令捕魚以助糧食 光和中 檀石槐死 時年四十五 子和連代立 和連才力不及父 亦數爲寇抄 性貪淫 斷法不平 衆畔者半 後出攻北地 廉人善弩射者射中和連 即死 其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