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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동이전

고안(高安)을 고구려왕에 제수함

신구 연간(518~519)에 운이 죽자, 영태후(?~528)주 001
번역주 001)
靈太后 : 北魏 宣武帝의 妃 胡氏를 말하는데, 孝明帝의 생모로서 섭정하였으므로 ‘靈太后’라는 시호를 추존하였다. 불교를 신봉하여 佛寺·塔·石窟을 짓고, 6년의 세금을 미리 징수하는 등 백성의 불만을 샀다. 523년 六鎭의 난이 일어나고, 528년 효명제가 사망하자 어린 나이(3세)의 元釗를 옹립하였지만, 낙양에 군을 이끌고 들어온 爾朱榮(493~530)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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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동당에서 거애하고, 사신을 보내 책명하여 거기대장군·영호동이교위주 002
번역주 002)
領護東夷校尉 : ‘領護’ 군관직은 본래 동이를 監護하던 군관직으로 漢 이래로 주변 이민족 통제를 담당한 2,000석 官位의 군관에게 제수되었다. 따라서 이들 제관을 ‘領護軍官’이라 칭하기도 한다(李周鉉, 2008). ‘校尉’는 戰國時代부터 설치된 무관직으로, 秦漢 시기의 교위는 1개 ‘校’를 통솔한 중급 군관이었다. 북위 시기 주변 제 민족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領護校尉’로는 ‘護羌’, ‘護戎’, ‘護夷’, ‘護蠻’, ‘護越’ 등이 있는데, ‘領護中郞將’과 직책이 동일하나, 그 지위는 조금 낮다. 북위는 太武帝시기 領護東夷校尉를 두었으며, 493년 孝文帝의 職員令 개편 이후 護夷校尉로 고쳤다. 그 품계는 正3品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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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에 추증하였다. 또 그의 세자 안(안장왕, 재위: 519~531)을 안동장군주 003
번역주 003)
安東將軍 : 安東, 安南, 安西, 安北 장군을 四安將軍으로 통칭하는데, 後漢 시기에 처음 설치되었다. 北魏 중·후기 때의 품계는 正2品下이다. 한편, 『北史』와 『冊府元龜』에는 ‘鎭東將軍’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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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동이교위·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에 제수하였다. 정광(520~524) 초에 광주에서 또 다시 소연(양 무제, 재위: 502~549)주 004
번역주 004)
蕭衍 : 永元 2年(500) 남제의 국정이 어지러워지자, 東昏侯에 대한 타도군을 일으켜 도읍인 건강을 함락한 뒤 정권을 잡았다. 和帝를 폐위하고 제위에 올라 梁을 세웠다. 내정을 정비하고 불교를 장려하여 문화가 번영하였다. 대외 관계도 비교적 평온하여 남조 최대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재위 후반기에 들어 불교에 빠져들어 재정을 악화시켰다. 548년 동위에서 투항해온 侯景이 난을 일으켜 건강이 포위되었고, 고조는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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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게 내린 영동장군주 005
번역주 005)
寧東將軍 : 南朝의 梁에서 설치한 武官職으로, 武職 24班 중 22班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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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의관과 검, 패물 그리고 사신 강법성 등을 바다에서 사로잡아, 경사(낙양)로 보냈다.

  • 번역주 001)
    靈太后 : 北魏 宣武帝의 妃 胡氏를 말하는데, 孝明帝의 생모로서 섭정하였으므로 ‘靈太后’라는 시호를 추존하였다. 불교를 신봉하여 佛寺·塔·石窟을 짓고, 6년의 세금을 미리 징수하는 등 백성의 불만을 샀다. 523년 六鎭의 난이 일어나고, 528년 효명제가 사망하자 어린 나이(3세)의 元釗를 옹립하였지만, 낙양에 군을 이끌고 들어온 爾朱榮(493~530)에게 죽임을 당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領護東夷校尉 : ‘領護’ 군관직은 본래 동이를 監護하던 군관직으로 漢 이래로 주변 이민족 통제를 담당한 2,000석 官位의 군관에게 제수되었다. 따라서 이들 제관을 ‘領護軍官’이라 칭하기도 한다(李周鉉, 2008). ‘校尉’는 戰國時代부터 설치된 무관직으로, 秦漢 시기의 교위는 1개 ‘校’를 통솔한 중급 군관이었다. 북위 시기 주변 제 민족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領護校尉’로는 ‘護羌’, ‘護戎’, ‘護夷’, ‘護蠻’, ‘護越’ 등이 있는데, ‘領護中郞將’과 직책이 동일하나, 그 지위는 조금 낮다. 북위는 太武帝시기 領護東夷校尉를 두었으며, 493년 孝文帝의 職員令 개편 이후 護夷校尉로 고쳤다. 그 품계는 正3品下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安東將軍 : 安東, 安南, 安西, 安北 장군을 四安將軍으로 통칭하는데, 後漢 시기에 처음 설치되었다. 北魏 중·후기 때의 품계는 正2品下이다. 한편, 『北史』와 『冊府元龜』에는 ‘鎭東將軍’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蕭衍 : 永元 2年(500) 남제의 국정이 어지러워지자, 東昏侯에 대한 타도군을 일으켜 도읍인 건강을 함락한 뒤 정권을 잡았다. 和帝를 폐위하고 제위에 올라 梁을 세웠다. 내정을 정비하고 불교를 장려하여 문화가 번영하였다. 대외 관계도 비교적 평온하여 남조 최대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재위 후반기에 들어 불교에 빠져들어 재정을 악화시켰다. 548년 동위에서 투항해온 侯景이 난을 일으켜 건강이 포위되었고, 고조는 병사하였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寧東將軍 : 南朝의 梁에서 설치한 武官職으로, 武職 24班 중 22班에 해당한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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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안(高安)을 고구려왕에 제수함 자료번호 : jd.k_0010_0100_0010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