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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헤이조쿄

平城京
  • 저필자
    한영화(성균관대학교)
  • 시대
    발해
  • 위치
  • 원소장처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奈良]시
  • 시대
    발해
  • 유형
입지
나라현 나라시 법화사와 서대사 사이에 궁터가 남아있다.
유적개관
헤이조쿄는 나라 시대(710년~794년)의 대부분 기간(710년~740년, 745년~784년)때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이 중 헤이조 궁은 나라시의 다른 장소와 함께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모방하여 708년(와도 원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710년 천도하였다. 발해와 관련해서는 중심 배수로였던 동대구(東大溝)의 SD 2700 구역에서 1986년에 탄소가 내외면에 달라붙고 그릇 표면을 흑색 처리한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바퀴모양의 꼭지를 가진 뚜껑인데, 뚜껑은 두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도쿄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상경용천부 출토의 뚜껑과 유사하여 발해산의 토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 이외에 평성경에서는 발해산으로 추정되는 흑도구배편, 흑색삼이호, 경경호의 경부인 흑도편, 백색 약호형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개관
발해산으로 추정되는 흑도구배편, 흑색삼이호, 경경호의 경부인 흑도편, 백색 약호형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윤재운, 일본소재 발해 유적유물의 종합적 검토, 한국사학보41, 2010년 11월
해설
헤이죠쿄[平城京]는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奈良]시에 위치한다.
헤이죠쿄는 나라 시대(710~794)의 대부분 기간(710~740, 745~784)때 일본의 수도였다. 몬무[文武]에 의해 후지와라쿄[藤原京]에서 헤이죠쿄로의 천도 문제의 심의가 시작되었고 다음해인 겐메이[元明]에 의해 공식적인 조가 내려지면서 710년 천도가 단행되었다. 헤이죠쿄는 당의 수도인 장안성을 모방하여 건설되었다. 740년 쇼무[聖武]에 의해 구니쿄[恭仁京]나 나니와쿄[難波京]로 옮겨가기도 했지만, 745년 다시 이 곳으로 환도하였다. 784년 간무[桓武]가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까지 일본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다.
헤이죠쿄는 남북으로 긴 장방형 모양으로 중앙의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좌우가 나뉜다. 전체 규모는 동서 길이 약 4.3㎞, 남북으로 약 4.7㎞ 정도이다.
발해와 관련해서는 중심 배수로였던 동대구(東大溝)의 SD 2700 구역에서 1986년 시행된 발굴 조사에서, 탄소가 안팎으로 달라붙고 그릇 표면을 흑색 처리한 토기 파편이 출토되었다. 바퀴 모양의 꼭지를 가진 뚜껑으로 뚜껑은 두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도쿄[東京]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상경용천부 출토의 뚜껑과 유사하여 발해산의 토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
이외에 헤이죠쿄에서는 발해산으로 추정되는 흑색도기 술잔 파편[黑陶高杯片], 흑색 세 귀 항아리[黑色三耳壺], 장경호의 목 부분인 흑도편(黑陶片), 백색 약항아리 모양[藥壺形]의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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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조쿄 자료번호 : isea.d_0003_0020_004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