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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2) 제47구역의 유구

석축담장기초. 2011년과 2012년에 제47구역의 섹터1과 섹터4에서 일부씩이 조사되었다(도면 462; 463). 2011년도 발굴조사보고서에는 ‘석축기단 건축물’의 일부로 판단하였다. 왜냐하면 2011년도 발굴조사에서는 섹터1에서 이 담장기초의 한쪽 가장자리 부분만 노출되었고, 또 두께 1m의 둑을 남기고 서남쪽으로 확장을 섹터1'에서는 돌무더기가 노출되었음에도 석축담장기초의 다른 쪽 가장자리는 둑에 의해 노출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섹터1에서 노출된 동쪽 가장자리의 길이는 약2 m이다. 2012년도에 조사를 한 제47구역의 섹터4에서는 이 석축구조물이 석축담장의 기초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석축담장의 기초는 양쪽 측면에 비교적 정연한 모양의 큰 강돌과 할석을 각각 가지런하게 밖으로 면을 맞추어1 열씩 놓고 그 사이에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돌들을 채워넣어 조성하였다. 바깥쪽 가장자리에 사용된 돌들은 크기가 길이3 0~40㎝, 두께 15~20㎝이다. 안쪽 가장자리에 사용된 돌들은 모양이 조금 더 부정형이며 크기도 약간 더 작은 편이다. 양쪽 가장자리에는 1단만 남아 있다. 양쪽 가장자리가 모두 노출된 부분은 담장 기초의 너비가 1.1~1.15m 사이이다. 섹터1에서 노출된 것과 폭 1m의 둑 아래에 있는 것을 감안하면 확인된 전체 길이는 약 4.6m이다.
도면 462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1과 섹터 1' 그리고 섹터 4의 석축 담장기초와 돌무더기 등 평면도(2011; 2012)
도면 463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석축 담장기초 모습(남남동쪽에서)(2012)
이 석축담장 기초는 장축이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서, 크게 보면 남-북 방향에 가깝다. 북쪽으로 이 석축담장이 얼마나 더 길게 형성되어 있는지는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야 할 과제이다. 석축담장의 남쪽 끝부분은 19호 주거지의 벽과 인접하고 있고, 또 19호 주거지의 북북동-남남서 방향 벽체, 즉 동벽과 동일한 선을 이루고 있다. 때문에 이 석축담장과 19호 주거지 동벽은 동일한 하나의 구획 내 구조물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상 19호 주거지의 담장기초였을 수도 있지만 아직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돌무더기. 2011년에 제47구역의 섹터1'에서 조사되었다(도면 462; 464). 처음에는 ‘석축기단 건축물’의 안쪽을 이루는 구조물로 판단한 유구이다. 하지만2 012년도의 발굴조사를 통해 그 동변의 ‘기단석열’로 보았던 부분이 석축담장의 기초가 분명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석축기단 건축물’의 한 부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크기 3×4m의 섹터1' 전체 범위에 걸쳐 돌무더기가 노출되었지만 섹터의 남쪽과 북쪽 모서리에는 돌들이 드물게 분포하고 있어 크게 보면 이 돌무더기가 동-서 방향으로 나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돌무더기의 북동쪽 부분은 석축담장의 일부일 것이다.
도면 464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돌무지 모습(남쪽에서)(2011)
18호 주거지. 제47구역의 섹터2에 위치한다(도면 465). 2011년에 유구의 전체적인 양상이 조사되었고, 2015년에 일부 보완조사가 이루어졌다. 18호 주거지에서는 구들만 확인되었고, 주거지 벽체 등의 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못하였다(도면 466~468). 구들은 2줄 고래이고, 평면은 ‘ㄱ’자 모양이다. 그런데 발굴조사 당시의 사진을 보면 구들 고래의 평면이 마치 ‘S’자인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추후 발굴조사를 통해 남쪽구간 가장 북쪽 고래 벽체의 동쪽 부분이 그대로 곧게 나있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평면은 ‘ㄱ’자 모양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곳은 부뚜막 혹은 건물 벽체에 사용된 돌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고래의 벽체는 돌을 쌓아 만들었다. 구들은 두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쪽구간과 서쪽구간으로 구분된다.
도면 465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2의 18호 주거지 등 평단면도(2011)
도면 466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2의 18호 주거지 모습(북동쪽에서)(2011)
도면 467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2의 18호 주거지 모습(남동쪽에서)(2011)
도면 468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2의 18호 주거지 모습(남쪽에서)(2011)
서쪽구간은 잔존하는 길이가 약 1m로 짧지만 2줄의 고래 벽체들이 확인되었다. 서쪽구간 구들의 너비는 약 1.2m이고, 고래의 너비는 20~30㎝이다. 남쪽구간에는 구들이 동-서 방향으로 나있다. 이곳에는 고래의 벽체가 가장 북쪽의 것은 비교적 잘 남아 있지만, 중간과 가장 남쪽의 벽체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고래 벽체 부분에 남아 있는 몇 개의 돌들과 고래 바닥에 남은 그을음 흔적을 통해 고래의 존재가 확인된다. 이곳의 고래 북쪽 벽체의 경우에는 돌들이 2단 혹은 3단 이상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고래 남쪽구간의 길이는 약4m 로 보고되었지만, 약 4.5m로 수정이 필요하다. 남쪽구간 구들의 너비는 1.3~1.4m이고, 고래의 너비는 30~40㎝이다.
구들의 동쪽 끝부분에는 큰 덩이 돌들과 강돌 그리고 얇게 쪼개어진 할석들이 어지럽게 늘여있는데 아마도 아궁이와 부뚜막이 있었던 자리라고 생각된다. 이곳에는 또한1 8호 주거지 건물의 벽체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조사된 범위가 제한되었고 또 훼손이 심해 아궁이 혹은 부뚜막, 혹은 건물 벽체의 양상이 파악되지는 못하였다. 이곳은 서쪽에 비해 레벨이 약 50㎝ 정도로 낮다. 레벨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것은 이곳이 지하수의 작용으로 인해 지반이 침하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18호 주거지는 제47구역의 석축담장기초 및 19호 주거지와 마찬가지로 제1생활면에 속한다. 인접하여 도로가 남북방향으로 나있고, 또 구들의 장변은 동서 방향, 단변은 남북방향으로 각각 나있기 때문에 집의 출입구는 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19호 주거지. 2012년에 제47구역의 섹터4와 섹터5에서 조사되었다(도면 467). 주거지의 전체 규모는 확인되지 못하였다. 구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고, 또 구들의 벽체와 바로 인접하여 주거지 벽체의 기초도 일부 확인되었다(도면 470~473).
도면 469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4와 5의 19호 주거지 등 평단면도(2012)
도면 470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4와 5의 19호 주거지 모습(동쪽에서)(2012)
도면 471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4와 5의 19호 주거지 모습(북동쪽에서)(2012)
도면 472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4와 5의 19호 주거지 모습(북서쪽에서)(2012)
도면 473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모습(남동쪽에서)(2012)
구들은 2줄 고래이고, 평면이 ‘ㄱ’자 모양이며, 동쪽구간과 북쪽구간으로 구분된다. 고래의 벽체는 돌을 1줄 혹은 2줄 쌓아 만들었는데, 상대적으로 큰 돌은 쓴 부분은 벽체에 하나의 돌을 놓았고, 작은 돌은 쓴 부분은 일반적으로 두 개씩의 돌을 놓았다(도면 474). 구들의 동쪽구간은 장축이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서 인접하는 석축담장기초와 동일한 방향이다. 구들의 동쪽구간은 길이가4 m이고, 전체 너비는 약1 .7m이다. 구들의 북쪽구간은 대체로 동-서 방향으로 나있고, 잔존 길이는5 .9m이고, 너비는 1.6m이다. 고래의 너비는 대체로2 0~30㎝이다. 동쪽구간의 안쪽 고래에서는 아궁이 가까이에서 2점의 철제 창이 출토되었다(도면 475; 692, 1, 2). 이 창들은 주거지가 폐기되기 전에 아궁이를 통해 고래에 숨겨둔 것이 생각된다.
도면 474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구들 세부 모습(2012)
도면 475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고래 내 창 출토 모습(2012)
그런데 이 북쪽구간의 고래 벽체 끝부분에서 서쪽으로 약 1.1m의 거리를 두고 남-북 방형의 석열이 하나 길이 1.35m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도면 476). 이 석열은 구들의 동쪽구간 고래 벽체들과 평행을 이루기 때문에 구들 고래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고래의 가장 안쪽 벽체일 것으로 보고되었다. 하지만 이 석열은 고래의 벽체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구들의 동쪽구간과 북쪽구간에는 고래 벽체에 모두 돌을 수평으로 놓았지만, 그 석열에는 돌들을 장변이 아래에 가게 수직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석열의 서쪽 부분에는 19호 주거지의 고래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다른2 줄의 고래가 확인되었다(도면 476). 오히려 이 석열은 19호 주거지의 서벽 잔재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이 경우 주거지 동벽과 서벽의 거리는 약 6.5m가 된다. 19호 주거지의 크기는 동-서 약 8.5~9m, 남-북 6.4m 이상일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이 수치는 그 석열을 구들의 서쪽구간 가장 안쪽의 고래 벽체로 추정한 결과이다. 하지만 그 석열을 건물 벽체의 기초로 판단한다면, 19호 주거지의 동-서 길이는 약 6.5m가 된다.
도면 476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밖 고래 모습(남서쪽에서)(2012)
굴뚝자리는 확인되지 못하였다. 구들의 동쪽구간과 북쪽구간은 서로 직각을 이루지만 모서리 부분의 내부 고래 벽체는 둥그스름하게 돌아간다. 아궁이는 동쪽구간의 끝부분 안쪽에 구들 고래와 직교하는 방향으로 위치한다. 아궁이는 적색 사질토 얼룩의 형태로 노출되었고, 크기는9 4×106㎝였다(도면 477; 478). 아궁이의 좌우에는 수직으로 세운 돌들이 몇 개 남아 있고, 또 부뚜막의 윗부분에 떨어져 내린 돌들이 몇 개 놓여있었다. 동쪽구간과 북쪽구간의 모서리 부분 안쪽에는 노출면의 크기가 132×90㎝인 구덩이가 하나 위치한다. 이 1호 구덩이는 벽을 황갈색의 점토로 발라 사용하였다(도면 479). 구덩이의 바닥과 내부퇴적토에서 수 개의 토기 동체부편과 자갈돌 그리고 작은 목탄편들이 발견되었다(도면 480). 이 구덩이는 불에 달구어진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저장구덩이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도면 477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아궁이 노출 모습(서쪽에서)(2012)
도면 478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아궁이 조사 모습(2012)
도면 479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내 1호 구덩이 노출 모습(2012)
도면 480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내 1호 구덩이 모습(2012)
구들의 동쪽구간과 북쪽구간 밖으로는 고래의 가장 바깥쪽 벽체와 바로 인접하여 건물 벽체의 흔적이 남아있다(도면 470; 474). 이것은 고래 벽체와는 구분되는 석열이다. 동쪽구간의 경우에는 고래 벽체보다 작은 돌들이 2줄 정도 남아 있는데 건물 벽체의 기초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건물 벽체와 10~20㎝ 정도 거리를 두고 토양의 색깔도 차이를 보이는데 동쪽구간은 건물 벽체 쪽은 회황색 사질토이고, 그 바깥은 연갈색 점질토이며, 북쪽구간은 건물 회황색 사질토이지만, 그 바깥은 회갈색 점질토이다. 또한 북쪽구간의 건물 벽체 바깥에는 회황색 사질토와 연갈색 점질토 사이에 너비 약 10㎝로 회백색 점질토가 길에 띠를 이루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19호 주거지를 중심으로 한 섹터4와 5의 제3인공층과 1호 구덩이에서 주철제 솥 다리편, 철제 창편(도면 2012-446; 447)(도면 692, 3), 철제 손칼, 철제 심봉, 철제 판(도면 2012-452; 453), 토제 발해 입방체편(도면 2012-448; 449), 토제 고리들(도면 2012-450; 451), 정요자기 동체부편, 토제 구상유물, 다수의 윤제토기편과 놀이 알들 등이 출토되었다.
19호 주거지의 서남쪽에는 아궁이에서 서남쪽으로 약 5.8m의 거리에서 다듬잇돌이 1점 발견되었다(도면 481; 672). 이 다듬잇돌의 곁에는 불에 탄 소토얼룩이 위치하였다. 또 주변에 다른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고, 가까운 거리에 다른 소토얼룩이 또 하나 있다. 이 다듬잇돌이 19호 주거지의 내부에 위치하는지는 분명하지 못하다.
도면 481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19호 주거지 다듬잇돌 등 모습(남서쪽에서)(2012)
22호 주거지. 2013년에 제47구역의 섹터6에서 조사되었다(도면 482; 483). 표토와 부식토 아래의 회갈색 사질토층 윗부분을 조사할 때에 22호 주거지와 관련이 있는 자갈돌들이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이때에 섹터6에서 50점 이상의 토기편이 수습되었고, 그리고 주철제 수레바퀴 차관편(도면 2013-178)과 철제 판상 유물편(도면 2013-179)도 출토되었다. 22호 주거지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석축구조물은 제3인공층에서 다양한 크기의 모래와 석립이 섞여있는 회갈색 사질토층을 대부분 제거한 다음에 완전히 노출되었다(도면 2013-204~215)(도면 484; 485). 석축구조물은 평면 ‘ㄱ’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긴 부분은 동서방향, 짧은 부분은 남북방향으로 각각 나있다. 길이는 200㎝, 너비는 58~78㎝이다. 이 석축구조물은 자갈돌과 덩이 돌들로 이루어져 있고, 훼손된 구들의 잔재로 추정되었다.
도면 482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6의 22호 주거지 등 평면단도(2013)
도면 483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6의 22호 주거지(안쪽) 등 모습(북서쪽에서)(2013)
도면 484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6의 22호 주거지 구들 모습(남서쪽에서)(2013)
도면 485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6의 22호 주거지 구들 모습(북서쪽에서)(2013)
섹터6의 제2인공층에서는 철제 창 고달(도면 2013-190)(도면 692, 5), 와당편(도면 2013-191), 철제 못(도면 2013-192), 철제 화살촉(도면 2013-193; 194)(도면 693, 13), 다공 입방체 유물편(도면 2013-195), 청동 거울(도면 2013-183; 196~198)(도면 741), 주철제 솥 동체부편(도면 2013-202), 철제 유물편(도면 2013-203) 등이 출토되었다. 섹터6의 서쪽 부분에서는 제3인공층 레벨에서 눌러 깨진 옹이 1점 묻혀있었고(도면 2013-216; 217), 또 그 남쪽에는 다른 눌러 깨진 토기도 확인되었다.
석열유구. 2015년에 제47구역의 섹터2에서 조사되었다(도면 486; 487). 섹터2의 서쪽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다. 북북서-남남동 방향으로 2줄을 돌을 평행하게 배치한 석열 형태의 구조물이다(도면 488). 이 석열이 노출된 길이는 약 1.2m이다. 석열에 사용된 돌의 크기는 10×20㎝부터 20×30㎝까지이다. 석열의 전체 너비는 약 0.58m이다. 두 석열 사이의 간격은 약1 5㎝로 보고되었지만 간격이 일정하지 못하다. 이 유구는2 5호 주거지 구들로 보고되었다. 하지만 이 석열을 이루고 있는 2줄의 돌들은 양쪽 측면 쪽이 면을 맞추고 있고, 또 그 안쪽은 간격도 불규칙적일 뿐만 아니라 면을 맞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들의 고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안쪽에서 그을음 등의 흔적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유구의 북쪽 부분은 제47구역의 제1부분에, 남쪽 부분은 발굴구역 남쪽으로 계속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조사되지가 못하였다. 따라서 이 유구는 현재로서는 성격을 알 수 없는 석열유구로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도면 486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2의 제8인공층 상면 석열유구 등 평면도(2015)
도면 487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2의 제8인공층 상면 석열유구 등 모습(동쪽에서)(2015)
도면 488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2의 석열유구 모습(위에서)(2015)
이 석열유구의 노출면 부분에서는 주변에 다수의 작은 돌들이 널려있었고, 또 화병모양 윤제토기의 윗부분이 출토되었다. 이 유구 일대에서는 철제 화살촉(도면 2015-362; 363), 주철제 솥 다리(도면 2015-364; 365), 토기 동체부편으로 만든 놀이 알들 등이 발견되었다. 이 석열유구는 18호 주거지 구들보다는 아래에 위치하는 제2생활면에 속한다.
1호 부석유구. 2013년에 조사되었다. 제47구역의 섹터7과 일부 섹터8에 위치한다(도면 489; 490). 표토와 부식토 아래의 회갈색 사질토층 윗부분에서 둥그스름한 혹은 모난 자갈돌과 돌들로 이루어진 부석유구가 조사되었다. 이 부석유구의 장축 방향은 동동북-서서남 방향으로서 바로 인접하여 남쪽에서 발견된 도로유구와 동일한 방향이다. 섹터7에서 노출된 부분은 길이 7m이다. 다만이 부석유구는 발굴구역의 범위를 벗어나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 길이는 훨씬 더 길 것으로 생각된다. 너비는 1.7m이다. 그런데 섹터7의 범위 내에서 부석유구의 서쪽 부분은 돌들이 매우 조밀하게 놓여있었고, 동쪽부분은 조밀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부석유구는 크라스키노성의 주민들이 새로운 건축물을 짓기 위한 석재를 인위적으로 모아 놓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하지만 이 추정은 너비1. 7m로 길게 띠를 이루고 있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제1생활면의 것으로 판단된 도로보다는 약간 레벨이 높기는 하지만 도로의 북변을 따라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도로와 관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석유구가 노출된 섹터7의 제인2공층에서는 철제 못 3점(도면 259), 철제 꺾쇠(도면 2013-260), 주철제 수레바퀴 차관 3점(도면 2013-261~263)(도면 715, 6), 철제 화살촉(도면 2013-264), 주철제 솥 구연부편(도면 2013-265), 정요 자기 완편(도면 2013-266)(도면 1001, 5), 놀이 알 10점, 다수의 토기편과 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곳의 제3인공층에서는 토제 고리편, 석제 구상유물(도면 2013-301), 놀이 알들, 다수의 윤제 토기편들(도면 2013-303~317)(도면 825, 2, 13; 829, 8; 943, 10, 14) 등이 출토되었다. 섹터7의 남벽 가운데 부분에 큰 돌이 하나 위치하는데 마침 부석유구의 위에 얹혀있다. 하지만 이 큰 돌은 부석유구와의 사이에서 부식토가 확인되어 부석유구와는 무관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도면 489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7의 1호 부석유구 평단면도(2013)
도면 490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7의 1호 부석유구 모습(북동쪽에서)(2013)
2호 부석유구. 2014년에 조사되었다(도면 491; 492). 제47구역의 섹터3 동쪽 부분에서 제10인공층을 조사할 때에 3×4m의 크기로 노출되었다. 크고 작은 돌들이1 ~2겹 정도 깔려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황백색의 점토가 함께 섞여있었다(도면 493). 부석유구가 발견된 지표에서의 깊이는 약 130㎝이다. 서쪽으로 도로와 인접하고 있는데 도로 제4생활면보다 더 아래의 레벨에 해당되며 도로 제5생활면보다는 높은 레벨이다. 이 부석유구 자체는 연갈색 사질토층에 위치하며, 일부는 모래가 섞인 회색 사질토에 의해 훼손되었다. 부석유구에 사용된 깨진 돌들은 크라스키노성의 성벽 아랫부분을 축조할 때에 사용된 돌과 동일한 경석 응회암인데 단면은 백색 혹은 간혹 황색이며 표면은 갈색이다. 부석유구와 섞여 있는 황백색의 점토는 토기를 만드는데 사용한 도토였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부석유구가 발굴구역의 범위를 벗어나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 규모는 확인되지 못하였다.
도면 491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3의 2호 부석유구 등 평면도(2014)
도면 492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3의 2호 부석유구 모습(북서쪽에서)(2014)
도면 493 | 크라스키노성 제47구역 섹터 3의 2호 부석유구 세부 모습(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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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47구역의 유구 자료번호 : kr.d_0016_0020_005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