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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사할린 ‘이중징용’ 피해 진상조사』, 2007.8.

사할린에서 미쓰비시광업의 다카시마탄광과 하시마탄광으로 전환배치 당한 조선인들의 노동과 생활실태를 파악한 조사보고서입니다.
 
노영돈 인천대 교수와 서정길 러시아사할린주한인이중징용광부유가족회 회장이 2005년 5월 3일에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의 이중징용의 피해 실태 조사를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신청하였습니다. 조사 신청 내용은 사할린 북서부탄광지역으로 강제동원 된 조선인 가운데 3천여 명이 가족을 남겨두고 일본의 규슈, 이바라키 현으로 재징용(이중징용)되었다가 1945년 일본 패전 후 귀환하지 못함으로써 본인과 가족이 입은 피해 사실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남사할린을 점령한 이후부터 자원개발을 위해 많은 노동력을 투입했고, 조선인 노무자의 수도 점차 늘었습니다. 전시 인력동원에 의해 1940년부터 조선인 탄광부의 숫자는 더욱 증가하였습니다. 전쟁 말기 선박 부족과 연합군 공격으로 수송선의 피해가 늘자 1944년 8월 11일 사할린의 노동력을 일본 본토로 전환 배치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조선인 3,000명은 후쿠오카, 후쿠시마, 나가사키, 이바라키 등 4개현의 탄광으로 전환배치 되었습니다.
 
사할린에서도 열악한 노동 상황 아래 놓여 있었으나 일본 본토 배치 이후에는 노동조건이 더욱 열악하여 사고사도 빈번했습니다. 가장 큰 후유증은 가족 이산이었고, 전쟁이 끝난 후 사할린에 남은 가족과 영원히 이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할린에서 미쓰비시광업 다카시마탄광으로 전환배치 된 조선인들이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노무관리가 이루어지는 강제노동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실태는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할린 이중징용 피해 진상 조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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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이중징용’ 피해 진상조사』, 2007.8. 자료번호 : isjs.d_0006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