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쇼소인 소장 유물

  • 저필자
    한영화(성균관대학교)
  • 시대
    발해
  • 위치
  • 원소장처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奈良]시 조시[雜司]정(町)
  • 시대
    발해
  • 유형
    건축지
입지
도다이지[東大寺]에서 약 300m 거리에 있다.
유적개관
창건연대는 쇼무왕[聖武王]대인 덴뵤[天平] 연간(729~749)으로 추정되며 왕실의 유물창고이다. 쇼소인[正創院]은 도다이지[東大寺]에서 약 300m 거리에 있다.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1동만 남아 있다. 756년 쇼무왕이 죽자 왕비는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숟가락을 비롯한 칼·거울·무기·목칠공예품·악기 등 600여 종의 애장품을 49재(齋)에 맞춰 헌납하였다. 가치 있는 미술·공예·기록·생활 등 각 방면에 걸친 물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8세기 나라시대부터 일본문화를 구체적으로 전하는 수많은 유품과 한국·중국·인도의 고대 유물에 이르기까지 9천여 점이 소장되어 있어 일본이 세계 제일의 보고로 자랑하는 곳이다. 그 가운데는 구양 순(歐陽詢)의 진적(眞蹟) 병풍, 왕희지(王羲之)·헌지(獻之) 부자의 진적, 신라민정(民政)문서 등도 있다. 또한 가위·유리잔·칼·사리기(舍利器) 등 외형, 또는 새겨진 무늬만으로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고, 일본에서는 백제금이라고도 하는 신라금과 금동가위, 신라 먹, 신라 종 등이 소장되어 있다. 752년 도다이지 대불 개안식에 참석한 신라의 사절이 기증한 문화재들도 상당 수 있다. 일본 학자들은 이들 유물이 대륙으로부터 직접 또는 한국을 거쳐 들어온 것이라고 하나 8세기 일본의 공예품 제작 능력, 재료의 생산 여부, 일본의 조선(造船)·항해(航海) 수준, 일본 사신(使臣)이 당에서 가져온 물품,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공예품과 비교해 볼 때 이들 유물이 당나라 제품이기보다는 통일신라의 제품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주장도 한다. 이곳에 소장된 총 667권 5책의 '쇼소인문서' 가운데 《신라장적(新羅帳籍)》으로 부르는 신라민정문서가 있는데, 755년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 일본 쇼소인 소장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화엄경론(華嚴經論)의 질(帙) 속에서 발견되었다. 신라 농촌사회의 구조와 토지제도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로 발해와 관련해서는 인삼을 들 수 있다. 일본에 인삼이 들어왔음이 최초로 확인되는 것은 739년 7월 발해 문왕 때의 사신 기진몽이 인삼 39근을 공헌했다는 내용이 속일본기에 나온다.
참고문헌
윤재운, 일본소재 발해 유적유물의 종합적 검토, 한국사학보41, 2010년 11월
해설
쇼소인[正倉院]은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奈良]시 조시[雜司]정(町)에 위치하며 현재 도다이지[東大寺]에 속해 있다. 도다이지 대불전 북서쪽으로 약 300m 거리에 있다.
쇼무[聖武]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쓰임은 왕실의 유물 창고이다. 원래 북창, 중창, 남창 3개의 창고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현재에는 1개만 남아있다.
쇼소인에는 8세기 나라시대부터 일본문화를 구체적으로 전하는 수많은 유품과 한국, 중국, 인도의 고대 유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 수장된 보물은 7차례에 걸쳐 보관되었는데, 1차부터 5차까지는 756년부터 758년 사이에, 6차는 814년에 일부를 빼면서 그 대신 넣은 것이며, 7차는 950년 즈음 절에서 사용하던 중요 기물들을 남창으로 옮겼다고 한다.
쇼소인의 소장품 중에 8세기대의 신라의 촌락문서도 있는데, 1933년 『화엄경론질(華嚴經論帙)』의 파손부분을 수리하던 중 발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일본에서는 백제금이라고도 하는 신라금과 금동가위, 신라먹, 신라종 등이 소장되어 있다.
발해와 관련해서는 발해 사신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진 인삼이 현재 소장되어 있다. 일본에 인삼이 처음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 것은 739년 발해 문왕 때의 사신이었던 이진몽(已珍蒙)이 인삼 30근을 공헌했다는 『속일본기(續日本記)』의 기록이다. 그리고 다음에 754년 6월 선제추복(先帝追福)을 위하여 도다이지에 봉납한 물품 중 ‘인삼 324근 2냥’이라는 기록도 있다. 8세기 당시 일본에서 인삼은 높은 효능을 가진 약재로 인식되었던 듯하며 이 인삼은 병자에게 제공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발해 사절단에 의해 일본 왕에게 전해졌던 것을 감안한다면 왕을 중심으로 한 일부 귀족들에게만 제공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쇼소인 소장의 인삼은 1940년대 말에 진짜 인삼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또다른 발해 관련 유물은 〈악구궐실병출납장(樂具闕失幷出納帳)〉이라는 문서가 있다. 이 문서에서는 ‘고려객인(高麗客人)’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이는 762년 발해의 사신이었던 왕신복(王新福) 일행이 763년 1월 도다이지를 방문했던 것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이 문서에서 ‘고려객인’은 왕신복 일행을 가리킨다. 발해를 고려라고 칭한 경우는 『속일본기』에서의 기록과 헤이죠 궁에서 출토된 목간, 그리고 이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쇼소인 소장 유물 자료번호 : isea.d_0003_0020_0040_00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