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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광주 평동 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2008~2009
  • 시대
    청동기~조선
  • 위치
  • 원소장처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전동 월전마을, 원두마을 일대
  • 시대
    상고사
  • 유형
    복합
입지
2008~2009년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시행.
유적개관
영산강유역에 위치하는 대규모의 복합유적으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른 다양한 유구 1,237기와 유물 4,479점이 확인이 됨. 초기철기시대의 대표적인 유구로 옹관묘와 수혈을 들 수 있는데 옹관묘는 남쪽에서 9기 정도가 조사되었으며 옹관의 조합방식은 2옹 합구식이 주를 이룸. 수혈은 원형·타원형·부정형 등의 평면형태로 내부에서는 경질무문토기, 경질찰문토기, 석기류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음. 유적내 넓은 범위에 자리 잡은 다양한 형태와 규모를 가진 분구묘는 당시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정치체의 규모와 세력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매우 의미있는 자료라 할 수 있음.
출토유물
* 호형토기, 석검, 석창, 석부, 삼각형석도, 석촉, 경질무문옹형토기, 경질무문토기, 경질찰문토기, 토제품 등
참고문헌
「光州平洞遺蹟Ⅰ」
해설
광주시는 북쪽으로 장성군과 담양군, 동쪽은 화순군, 서쪽으로 영광군과 함평군, 남쪽으로는 나주시와 접해있다. 지형은 동쪽으로 해발고도 1,187m의 무등산을 비롯한 그 지맥과 지봉이 발달하여 화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북부와 서남부는 용진산(349.1m), 망산(270.8m), 석문산(227m), 복룡산(227m)과 같은 비교적 낮은 산들이 장성군, 함평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평동 유적은 광주시 광산구 월전동 월전마을과 원두마을 일대에 위치한다. 광주시의 서남부로 황룡강과 영산강의 합류 지점의 충적평야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노령산맥의 지맥인 어등산, 복룡산, 병풍산 등의 산세가 형성되었으며 서쪽으로는 낮은 구릉성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호남평야로 이어지는 충적대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평동유적 주변으로는 인접한 월전동유적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이 분포한다. 북쪽 산지와 서쪽의 구릉지역에는 용강골 고인돌, 지죽동 매화 고인돌, 용곡 고인돌, 명화동 고분, 금곡동 고분 등 무덤 유적이 주를 이루며 서쪽 구릉지역에는 관동, 기곡, 용강, 금곡, 산정, 기용유적 등 마을유적이 분포한다.
광주 평동 2차 산업단지를 조성하기에 앞서 2005년 호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어 월전동 유물산포지 1개소가 보고되었다. 이에 따라 2008년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조사결과 집자리와 돌널무덤, 독무덤, 구덩유구, 도랑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이에 2008년부터 2009년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집자리를 비롯하여 무덤, 구덩유구, 도랑유구, 건물지, 우물, 야외 화덕자리 등 1,200여기의 유구와 토기, 석기, 철기, 목기 등 4,400여점에 달하는 유물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로는 집자리와 구덩유구,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각각 청동기시대 중기와 후기로 시기 구분된다. 중기 집자리는 대부분 바닥면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구멍이 설치된 이른바 송국리식 집자리로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이 혼재한다. 면적은 7~36㎡ 정도로 편차가 큰 편인데 타원형 구덩이만 존재하거나 2개의 기둥구멍이 설치된 집자리는 대개 20㎡ 이하인데 반해 타원형 구덩이 둘레에 4개의 기둥구멍이 시설된 것은 20㎡ 이상의 중대형의 것이 많다. 중기 집자리의 조성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2310±60 BP, 2420±50 BP, 2380±50 BP, 2310±50 BP, 2580±40 BP)에 근거하여 기원전 5세기~7세기 정도로 편년된다.
후기 집자리는 대개 방형으로 내부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으며 면적 6~19㎡ 정도의 소형이다. 내부에서는 점토대토기문화 관련 유물이 출토된다. 후기는 방사성탄소연대(2200±60 BP, 2290±60 BP)를 통해 볼 때 기원전 3~4세기 정도로 판단된다.
구덩유구 또한 중기와 후기에 조성되었는데 390호 구덩유구의 경우 청동기시대 조기의 덧띠새김무늬토기가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에도 점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덩유구의 평면은 타원형, 부정형 등으로 다종다양하다.
무덤으로는 돌널무덤과 움무덤 등 모두 16가 조사되었는데 주변 상석의 존재로 보아 일부 무덤은 고인돌의 무덤방일 가능성이 있다. 매장주체부는 돌널형과 움식, 위석형이 혼재하며 무덤방의 크기는 장축 90~188cm, 단축 25~50cm, 깊이는 30cm 정도이다.
유물은 덧띠새김무늬토기, 호형토기, 적색마연토기, 뚜껑, 삼각형점토대토기, 쇠뿔모양손잡이, 시루, 대각,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토기류와 간돌도끼, 홈자귀, 삼각형돌칼, 대팻날도끼, 가락바퀴, 갈돌과 갈판, 숫돌, 간돌검, 간돌화살촉, 돌끌 등의 석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평동유적은 청동기시대 중기와 후기의 표지인 송국리유형과 점토대토기문화가 동일 유적내 공존하고 있는 사레로 남한지역에서 조사예가 매우 드물어 학술적 중요도가 매우 높다. 또한 송국리식 집자리와 돌널무덤, 고인돌이 동일 유적 내 함께 조사되어 청동기시대 중기 마을 구성과 전반적인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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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평동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5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