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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자작리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1997
  • 시대
    초기철기~원삼국
  • 위치
  • 원소장처
    경기도 포천시 자작리 250-3 251-2, 250-8번지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입지
1997년 포천 광역지표조사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경기도박물관이 2000~2003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유적개관
포천 자작리유적은 의정부에서 포천시내로 이어지는 43번 국도의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왕방산(해발 737m)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온 해발 198m의 구릉 동남사면 말단부 평탄지에 해당하며, 포천천이 남에서 북으로 43번 국도와 나란히 흐르고 있다. 자작리 유적에서는 주거지 5동과 소형유구 6개, 굴립주 건물지 1동, 구상유구 4기 등이 발굴되었으며, 특히 2호 주거지의 경우 남북의 길이가 23.79m에 달하는 대형 움집터로 당시 자작리 유적의 마을 규모가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물로는 동진대 중국 청자편, 평형기대, 대형옹기, 삼발형토기 등이 출토되어 일반 마을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독자적인 지배영역 마을로 추정된다.
출토유물
* 회색 또는 갈색 경질토기, 경질 민토기, 숯 등
참고문헌
포천시 「문화유적분포지도」,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 2004
「자작리유적1·2」, 경기도박물관, 2004
해설
포천은 경기도 최 동북단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동두천, 연천, 양주, 의정부 남양주와 인접하고 있다. 자작리는 의정부에서 포천읍 방향으로 가는 43번 국도에서 파발막 부근 우측 육군항공단의 맞은편에 위치한다.
자작리유적은 포천천 서쪽의 ‘득새들’이라 넓은 경작지의 해발 102m 충적대지상에 위치한다.서쪽으로는 왕방산과 해룡산, 동쪽으로는 천주산, 국사봉, 주엽산 등의 해발 400~700m에 이르는 산지로 둘러 싸여 있다. 분지의 낮은 지형에는 포천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며 주변으로는 많은 유적들이 분포한다. 유적의 북쪽 20m 지점에는 자작리 고인돌이 위치하며 영송리유적, 성동리유적, 반월산성 등 구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들이 분포한다.
1998년 실시된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의 광역 지표조사 과정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경기도박물관의 3대 하천 광역 지표조사에 의해 집자리와 함께 다량의 유물이 채집되어 유적의 존재가 확실해졌다. 이에 경기북부지역 한성백제시대 문화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1~2002년에 걸쳐 경기도박물관에 의해 긴급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원삼국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집자리 2기와 소형유구, 굴립주건물지, 도랑유구가 조사되었다. 이에 전체적인 유적 범위와 유구 분포 현황 확인을 위한 조사의 필가마성이 제기되어 2003년 동 박물관에 의해 추가적인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신석기~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집자리를 비롯하여 구덩유구, 도랑유구, 굴립주건물지 등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1호 집자리는 평면 육각형으로 크기는 468×455×42cm이다. 바닥은 특별한 처리 없이 생토면을 그대로 생활면으로 이용하였다. 별다른 시설은 없고 직경 22~50㎝ 크기의 기둥구멍자리가 열을 지어 확인된다. 2호는 2,378×1,335×100cm 크기의 대형 집자리이다. 평면 육각형이며 사다리꼴 모양의 남쪽 출입구가 통로로 연결된 대형의 呂자형 집자리이다. 북동벽 모서리에는 전체 길이 500cm, 폭 120cm, 높이 54cm 크기의 부뚜막이 마련되었다. 부뚜막은 할석으로 골조를 만든 후 초본류를 섞은 진흙을 발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면에는 직경 12~50cm 크기의 기둥구멍이 열을 지어 위치한다. 또한 북벽 모서리에는 직경 50~80cm 크기의 저장용 구덩이가 시설되었다. 벽면 바닥에는 단면 U자형의 벽도랑이 시설되었다. 벽도랑 내부에는 벽체를 세우기 위한 기둥구멍이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내부 바닥면에는 벽체 판재와 지붕의 서까래로 추정되는 탄화 목재가 다량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소형유구는 모두 6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원형, 말각방형, 타원형으로 다양하며 크기는 길이 110~330, 너비 72~230, 깊이 32~110cm이다.
유물은 즐문토기, 중도식민무늬토기, 통형기대, 손잡이 달린 동이, 시루, 원저단경호, 대옹, 심발형토기, 뚜껑 등의 토기류와 기와, 중국청자, 꺽쇠, 철정, 철촉 등의 철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신석시대에서 청동기시대를 거쳐 원삼국, 삼국시대에 이르는 복합유적이라는 점에서 하남 미사리유적과 비견되는 학사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자작리에서 발견된 呂자형 집자리는 凸자형 집자리와 함께 하남 미사리, 남양주 장현리, 연천 강내리, 홍천 성산리, 강릉 안인리, 동해 망상동유적을 비롯해 중부지역 각지의 하천 충적지와 해안 사구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집자리 구조의 계보를 두만강, 연해주지역의 초기철기문화에서 구하기도 한다. 집자리 내부는 주로 바닥에 돌을 깔고 주위에 점토띠를 두른 부석식 화덕자리가 설치되며 취사와 난방이 가능한 외줄 구들이 시설되기도 한다. 자작리유적은 경기 북부지역 정치체의 등장과 성장, 형성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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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리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20_007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