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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와수리 신벌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2004
  • 시대
    청동기~철기
  • 위치
  • 원소장처
    철원군 서면 와수리 328번지 일원
  • 시대
    상고사
  • 유형
    복합
입지
2004년 와수리 신벌지구 경지정리 사업지구내 시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유적개관
유구의 분포 범위는 가지구 북쪽인 N1W2~N1E3그리드 이북구역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철기시대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구와 굴립주유구, 원형수혈유구, 구상유구 등 모두 35개 유구가 확인되었다. 철기시대의 주거지는 남쪽으로 출입구를 낸 철자형 주거지로 청동기시대와 같은 층에서 확인되었고, 무시설식과 부석식의 노지를 갖춘 주거지이다. 와수리 신벌지구 유적의 확인으로 한탄강 유역을 비롯하여 영서지역, 나아가 한반도 중북부지역 선사시대 생활 문화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확보되었다.
출토유물
* 경질무문토기, 소량의 타날문토기, 철촉, 소도자, 철겸, 철부, 철경부 동촉
참고문헌
문화재청·강원도 철원군·강원문화재연구소, 「문화유적분포지도」-철원군, 2005
해설
철원군 와수리는 강원도 영서지방의 북서부에 해당하는 철원군 북동부 산악지대에 위치하며 경기도 연천에서 철원, 평강 등을 흘러온 한탄강과 합류하는 임진강유역권의 상류에 속한다.
와수리유적은 신벌이라 불리우는 고지성 충적 평야지대로 주변은 낮게는 해발 470m(성제산), 높게는 1000m(광덕산) 이상의 산지로 둘러 쌓여 있다. 서쪽에는 한탕강의 지류인 남대천이 북동에서 북서방향으로 흐른다. 와수리유적의 서쪽 토성리에는 탁자식 고인돌 2기와 토성, 북쪽 성재산에는 조선시대 산성인 성산성이 위치한다. 남쪽 서면 자동리에는 백자 가마터가 조사된바 있다.
서면 와수리 일대 농로와 급수, 배수시설 등을 설치하기 위한 경지정리 사업에 앞서 20034년 강원고고학연구소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어 유물산포지 8개소가 보고되었다. 이에 따라 2003년~2004년에 걸쳐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집자리와 돌널무덤, 독무덤, 구덩, 구 등이 확인되었다. 이에 2008년부터 2009년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이르는 집자리를 비롯하여 구덩유구, 도랑유구, 굴립주건물지 등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로는 집자리와 구덩유구가 조사되었다. 1호는 평면 장방형으로 크기는 690×370×45cm, 면적은 25.5㎡이다. 바닥면 중앙에는 원형으로 얇게 굴착하여 조성한 화덕자리 2기가 열을 지어 시설되었다. 화덕자리 사이에는 직경 12cm 크기의 기둥구멍 2기가 위치하며 장벽과 단벽을 따라 직경 7~12㎝ 크기의 기둥구멍자리가 열을 지어 확인된다. 또한 양장벽 중앙에는 직경 35~45cm 크기의 저장공 4개가 설치되었다. 내부 바닥면에는 소토와 지붕의 서까래로 추정되는 탄화 목재가 다량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는 사질의 진흙을 1~2㎝ 정도 얇게 깔아 생활면을 조성하였다.
2호는 평면 방형으로 크기는 860×410×33cm, 면적은 35.3㎡이다. 바닥에는 사질의 진흙을 1~2㎝ 정도 얇게 깔아 생활면을 조성하였다. 바닥면 중앙에는 장방형으로 얇게 굴착한 후 강돌과 깬돌을 돌려놓아 조성한 토광위석식 화덕자리 1기와 평면 원형의 구덩식 화덕자리 1기가 시설되었다. 화덕자리 사이와 장벽 안쪽에는 기둥구멍자리가 열을 지어 확인된다. 서단벽쪽에는 석기를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름 160cm의 원형 구덩이가 확인되는데 내부에는 작업대와 석재가 출토된다. 또한 양장벽에는 직경 30~40cm 크기의 저장공 8개가 설치되었다.
4호는 평면 세장방형으로 크기는 1,545×520×46cm, 면적은 80.3㎡이다. 바닥면 중앙에는 장방형으로 얇게 굴착한 후 강돌과 깬돌을 돌려놓아 조성한 토광위석식 화덕자리 2기와 평면 원형의 구덩식 화덕자리 1기가 시설되었다. 화덕자리 사이와 장벽 안쪽, 장벽과 단벽에는 기둥구멍자리가 열을 지어 확인된다. 단벽과 장벽의 가장자리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공이 다수 설치되었다.
유물은 골아가리토기, 겹아가리토기, 겹아가리단사선토기, 단사선토기, 구멍무늬토기, 호형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토기류와 간돌도끼, 반달돌칼, 대팻날도끼, 가락바퀴, 갈돌과 갈판, 숫돌, 돌창, 갈돌, 갈판, 원판형석기, 첨두기, 간돌검, 간돌화살촉, 돌끌, 그물추 등의 석기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와수리유적에서 조사된 2호 집자리는 유구유물 양상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2870±40 BP, 3040±40 BP, 3120±40 BP, 3180±80 BP)에 근거하여 볼 때 남한 중부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1호 집자리는 한반도 중부지역 역삼동유형의 강원지역으로의 확산과 대동강유역 팽이형토기문화의 전파 양상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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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수리 신벌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10_005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