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국(歚善國)에 대한 소개
선선국(鄯善國). 본명은 누란(樓蘭)이며, 도읍은 우니성(扜泥城)이다.주 001
각주 001)
양관에서 1,600리, 장안에서 6,100리 떨어져 있다. 호수는 1,570, 인구는 14,100, 병사는 2,912명이다. 보국후(輔國侯)·각호후(卻胡侯)·선선도위(鄯善都尉)주 002·격거사도위(擊車師都尉)·좌차거(左且渠)·우차거(右且渠)·격거사군(擊車師君)이 각각 1명씩 두어져 있으며, 역장(譯長)주 003扜泥(jiu-niei) : 『史記』의 일부 판본에는 扜가 아니라 扞(γan) 혹은 拘(kiu)로도 표기되어 있다. 카로슈티 문서에는 樓蘭[Kroraina]의 도읍지의 명칭이 kuhani 혹은 kvhani로 표기되어 있고, 이는 『後漢紀』의 驩泥(xuan-niei)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扜泥가 아니라 扞泥가 더 정확한 표기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樓蘭의 위치는 북위 40도 31분, 동경 90도에서 약간 서쪽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있다. 樓蘭은 전77년 한나라가 尉屠耆를 왕으로 세우고 국명을 鄯善으로 개칭하였다. 후에 西域都護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後漢 때에는 莎車에 속했고, 小宛․戎盧․且末 등과 함께 아들을 보내 入侍케 하였다.
각주 003)
2명이 있다.주 004譯長 : 고대 중국에서는 ‘舌人’ 혹은 ‘象胥’라고 불리던 譯官이 존재했는데, 秦 통일 이후 典客 혹은 典屬國이라는 직책을 설치하여 외국의 사무를 처리토록 하였다. 漢代에도 典客이 설치되었는데, 武帝 때에 들어와 大鴻盧로 이름이 바뀌었고 屬官으로는 行人, 譯官, 別火三令, 丞, 郡邸長丞 등이 두어졌다. 西域과 소통하고 사신들의 파견이 빈번해져 “使者相望于道, 一歲中多至十餘輩‘라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西域 각국에 譯長이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자료상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모두 24개국에 36명이 설치되었으며,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4명까지 다양하다. 인구가 많고 국력이 비교적 강하여 한나라와 외교관계가 빈번했던 龜玆, 焉耆, 莎車 등 3국에는 3~4명의 譯長이 두어져 가장 많은 숫자를 보였다. 譯長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俄琼琸馬(2006) 참조.
각주 004)
서북으로 도호의 치소에서 1,785리 떨어져 있으며, 산국(山國)
주 005까지 1,365주 006리이며, 서북쪽으로 거사까지 1,890리 떨어져 있다. 땅은 모래와 염분이 많고 밭이 적어서, 이웃 나라에 농사를 맡기고 옆나라의 곡식에 의존하고 있다.주 007나라에서는 옥이 나오며, 골풀[葭葦]·버드나무[檉柳]주 008·호동(胡桐)주 009·백초(白草)주 100등이 많다. 주민들은 가축을 몰고 수초를 따라다니며, 나귀와 말이 있고 낙타가 많다. 능히 무기를 만드는데 이는 야강과 동일하다.이상 鄯善에 두어진 官職들은 輔國侯와 譯長을 제외하고는 모두 軍職이며, 이는 漢의 西域經營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즉 漢은 西域의 도시들을 장악함으로써 匈奴와의 공격에 대비하려고 했고, 특히 匈奴와의 격돌의 중심지였던 車師에서 가까운 鄯善에 擊車師都尉․擊車師君․却胡侯 등의 軍官을 둔 것은 의미심장하다. 鄯善에는 토착적 전통에 의한 官制도 운영되었으며, 카로슈티 문서에는 kala, guśura, camkura, ogu, kitsaitsa, suvetha, tasuca 등의 官名이 기록되어 있다(Enoki 1963 : 213-214,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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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扜泥(jiu-niei) : 『史記』의 일부 판본에는 扜가 아니라 扞(γan) 혹은 拘(kiu)로도 표기되어 있다. 카로슈티 문서에는 樓蘭[Kroraina]의 도읍지의 명칭이 kuhani 혹은 kvhani로 표기되어 있고, 이는 『後漢紀』의 驩泥(xuan-niei)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扜泥가 아니라 扞泥가 더 정확한 표기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樓蘭의 위치는 북위 40도 31분, 동경 90도에서 약간 서쪽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있다. 樓蘭은 전77년 한나라가 尉屠耆를 왕으로 세우고 국명을 鄯善으로 개칭하였다. 후에 西域都護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後漢 때에는 莎車에 속했고, 小宛․戎盧․且末 등과 함께 아들을 보내 入侍케 하였다.
-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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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3)
譯長 : 고대 중국에서는 ‘舌人’ 혹은 ‘象胥’라고 불리던 譯官이 존재했는데, 秦 통일 이후 典客 혹은 典屬國이라는 직책을 설치하여 외국의 사무를 처리토록 하였다. 漢代에도 典客이 설치되었는데, 武帝 때에 들어와 大鴻盧로 이름이 바뀌었고 屬官으로는 行人, 譯官, 別火三令, 丞, 郡邸長丞 등이 두어졌다. 西域과 소통하고 사신들의 파견이 빈번해져 “使者相望于道, 一歲中多至十餘輩‘라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西域 각국에 譯長이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자료상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모두 24개국에 36명이 설치되었으며,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4명까지 다양하다. 인구가 많고 국력이 비교적 강하여 한나라와 외교관계가 빈번했던 龜玆, 焉耆, 莎車 등 3국에는 3~4명의 譯長이 두어져 가장 많은 숫자를 보였다. 譯長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俄琼琸馬(200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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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4)
이상 鄯善에 두어진 官職들은 輔國侯와 譯長을 제외하고는 모두 軍職이며, 이는 漢의 西域經營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즉 漢은 西域의 도시들을 장악함으로써 匈奴와의 공격에 대비하려고 했고, 특히 匈奴와의 격돌의 중심지였던 車師에서 가까운 鄯善에 擊車師都尉․擊車師君․却胡侯 등의 軍官을 둔 것은 의미심장하다. 鄯善에는 토착적 전통에 의한 官制도 운영되었으며, 카로슈티 문서에는 kala, guśura, camkura, ogu, kitsaitsa, suvetha, tasuca 등의 官名이 기록되어 있다(Enoki 1963 : 213-214, 238).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100)
색인어
- 지명
- 선선국(鄯善國), 누란(樓蘭), 우니성(扜泥城), 장안, 산국(山國), 거사, 야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