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토성(靑海土城)
![청해토성 북문지(ⓒ국립중앙박물관)](/download.do?fileName=ismy_0010056.jpg&levelId=ismy.d_0003_0060_0010)
청해토성 북문지(ⓒ국립중앙박물관)
![청해토성 북벽(ⓒ국립중앙박물관)](/download.do?fileName=ismy_0010057.jpg&levelId=ismy.d_0003_0060_0010)
청해토성 북벽(ⓒ국립중앙박물관)
발해 5경의 도성은 방형 또는 장방형의 토성이나 토석성(土石城)으로 축성하고, 성안에는 남북과 동서로 교차되는 대로를 설정하는 것이 특징이며, 특히 남북의 대로인 주작로(朱雀路)는 너비가 동서대로보다 넓었다 한다.
발해는 국토의 중요 지역에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의 5경을 두었는데, 이 중 남경의 도성 위치에 대하여는 함흥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이 토성을 발굴하고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함경남도 북청의 동남방 16km에 위치하고 있는 청해토성이 남해부라고 보고 있다.
성 주변에 용전리산성, 안곡산성, 거산성 등이 있는데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청해토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는 위성 역할을 하였다. 또 야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북쪽에 감대봉·화삼봉·대덕산(1,416m)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청해토성
발해가 일본과 교류할 때인 776년(문왕 40)에 단 한번 남경을 거쳐 토호포(吐號浦: 新昌)에서 배가 떴다고 하는데 이때 풍랑을 만나 167명 중 120명이 실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