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倭)가 한나라에 조하하고 황제를 알현하기를 요청함
[광무제(光武帝)]주 001중원(中元) 2년(57)에 왜(倭)의 노국(奴國)
주 002이 공물(貢物)을 바치고 조하(朝賀)주 003하였는데, 사인(使人)은 대부(大夫)주 004
각주 004)
를 자칭하였다. [노국은] 왜국(倭國)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나라이다. 광무제는 [노국(奴國) 사자에게] 인수(印綬)를 하사하였다.주 005
안제(安帝) 영초(永初) 원년(107)에 왜(倭)의 국왕(國王)주 006
수승(帥升)
주 007大夫: 중국에서 사용된 신분 호칭의 한 가지. 卿의 아래이고 士의 상위에 있는 신분. 주대에는 주왕실 및 제후를 섬기는 소영주를 지칭하였는데, 그 중에서 상위에 있는 자를 卿이라고 하였으며, 이들은 國政에 참여하였다. 『禮記』 「王制」에는 제후로 上大夫卿, 下大夫, 上士, 中士, 下士가 있다고 하였다. 秦漢 이후에는 卿 아래에 大夫, 官大夫, 公大夫, 五大夫 등 大夫라는 명칭의 작이 존재하였고, 위나라에도 오대부라는 작이 있었다. 한편 漢代에 이르러 지방에서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 세력을 떨치게 되고 鄕擧吏選制를 통해 자제를 중앙관료로 보내면서 지배계층을 형성하게 되는데, 周代의 士大夫라는 용어를 빌어 자신들을 士大夫라고 부르게 되었다.
각주 007)
등이 생구(生口)주 008160인을 바치고 황제에게 알현하기를 원하였다.“倭國王帥升”에 대해서는 몇몇 사료에 그 기록이 조금씩 달라 井上秀雄 등(1977: 287)은 “倭國 王帥 升”으로 해석하는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翰苑』에 인용된 『後漢書』에는 “倭面上國王師升”으로 北宋版 『通典』에서는 “倭面土國王師升”으로, 또 『釋日本紀』「開題」에는 “倭面國”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內藤湖南은 “倭面土”를 ‘야마토’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周鳳과 松下見林은 “倭國王師升”을 景行天皇으로 추정하였다. 白鳥庫吉은 九州의 ‘이토’(回土-怡土-伊都)를 가리킨다고 주장하였고, 志田不動麿는 黥面文身하는 습속에서 비롯된 말이므로 ‘倭面’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石原道博, 2005: 58).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大夫: 중국에서 사용된 신분 호칭의 한 가지. 卿의 아래이고 士의 상위에 있는 신분. 주대에는 주왕실 및 제후를 섬기는 소영주를 지칭하였는데, 그 중에서 상위에 있는 자를 卿이라고 하였으며, 이들은 國政에 참여하였다. 『禮記』 「王制」에는 제후로 上大夫卿, 下大夫, 上士, 中士, 下士가 있다고 하였다. 秦漢 이후에는 卿 아래에 大夫, 官大夫, 公大夫, 五大夫 등 大夫라는 명칭의 작이 존재하였고, 위나라에도 오대부라는 작이 있었다. 한편 漢代에 이르러 지방에서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 세력을 떨치게 되고 鄕擧吏選制를 통해 자제를 중앙관료로 보내면서 지배계층을 형성하게 되는데, 周代의 士大夫라는 용어를 빌어 자신들을 士大夫라고 부르게 되었다.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倭國王帥升”에 대해서는 몇몇 사료에 그 기록이 조금씩 달라 井上秀雄 등(1977: 287)은 “倭國 王帥 升”으로 해석하는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翰苑』에 인용된 『後漢書』에는 “倭面上國王師升”으로 北宋版 『通典』에서는 “倭面土國王師升”으로, 또 『釋日本紀』「開題」에는 “倭面國”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內藤湖南은 “倭面土”를 ‘야마토’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周鳳과 松下見林은 “倭國王師升”을 景行天皇으로 추정하였다. 白鳥庫吉은 九州의 ‘이토’(回土-怡土-伊都)를 가리킨다고 주장하였고, 志田不動麿는 黥面文身하는 습속에서 비롯된 말이므로 ‘倭面’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石原道博, 2005: 58).
- 각주 008)
색인어
- 이름
- 광무제(光武帝), 광무제, 안제(安帝), 수승(帥升)
- 지명
- 왜(倭), 노국(奴國), 노국, 왜국(倭國), 노국(奴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