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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발해고고학에서 크라스키노 성지의 의의

2. 연해주 발해고고학에서 크라스키노 성지의 의의

위에서 말한 대로 크라스키노 성지는 다른 발해유적과는 달리 발해의 중심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이 성지는 발해의 수도로부터 70㎞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또한 이 성지는 연해주의 발해유적 중에서 유일하게 역사적으로 확인된 도시이다. 발해 동경에서 근접하게 위치했다는 점에서 이 성지는 발해문화의 표지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성지의 출토유물은 연해주에 같은 시기에 속하는 여러 유적들이 발해에 속하는 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성지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들은 농업, 목축(볼딘, 2003), 어로, 패각채취 등의 해양경제활동(레쉔꼬·라꼬프·볼딘, 2002), 토기생산, 기와생산과 같은 수공업(겔만·볼딘·잘리샤끄, 1998;볼딘·이블리예프, 1984;볼딘 외, 2001 : 71-79), 장식-실용예술, 불상과 불교건축(이블리예프·볼딘·니끼띤, 2001;레쉔꼬, 2002;아스따쉔꼬바·볼딘, 2004) 등과 같은 발해인의 다양한 생업경제와 문화의 특징을 구명하게 해준다. 전반적으로 크라스키노 성지에 대한 연구업적만 60여개에 달한다.
연해주 발해고고학에서 크라스키노 성지의 연구의의에 대해서 살펴보자.
크라스키노 성벽의 연구로 발해 성지의 성벽구조 특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니꼴라예프스꼬예, 시넬니꼬보-1, 고르바뜨까, 오끄라인까 등 연해주의 일련의 발해 성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성벽이 확인되었다. 성벽의 내부와 외부쪽에 돌로 만든 단을 쌓고 그 사이를 흙으로 채웠다. 이런 식의 성벽 축조법은 발해 상경부에서도 확인되며 판축기법으로 진흙을 차례로 쌓아서 만든 12~13세기 여진족의 토성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이블리예프·볼딘·니끼띤, 1998). 이러한 발해의 전통은 발해멸망이후 일정기간 존속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스몰닌스꼬예 성지(Смольнинское городище)의 경우 출토된 토기는 격자압인문이 새겨진 것으로 발해문화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다(겔만, 2006;쥐시호프스까야 외, 2006).
겔만의 크라스키노 성지 출토 토기 연구에 따르면 이 성지에서 니질계 토기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함이 확인되었다. 발해유적에서도 동북쪽으로 갈수록 이 토기의 비율은 감소한다(러시아 극동의 고대와 중세시대, 2005, 503~507쪽). 동시에 발해토기와는 이질적인 비율이 증가하고 뽀끄로보문화 계열의 토기가 증가한다. 특히 일리스따야 강과 우수리강 근처에서는 몸통에 주름이 지는 瓜形土器가 자주 발견되는데, 이 토기는 크라스키노에서는 드물다. 또 다른 예로 구연부 바로 밑에 두 개의 단이 형성된 토기를 들 수 있는데, 이런 토기는 발해의 동북부 경계지역에 존재하는 성지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반면, 크라스키노 성지에서는 드물다. 바로 크라스키노 성지의 유물들은 발해의 변방과 중심지의 차이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발해와 흑수말갈 민족공동체가 주를 이루는 주변지역의 경계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를 한다(러시아 극동의 고대와 중세시대, 2005 : 476-541).
마지막으로 크라스키노 성지 지역의 발해무덤과 향후 연구전망에 대해서 언급해보겠다.
크라스키노 지역의 바닷가를 따라 넓은 고분군이 존재한다. 1990년과 1993년에 쭈가노프까 강의 우안에서 2기의 고분을 발굴했다. 그 결과 고분은 12~13세기 여진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볼딘·이블리예프, 1994). 하지만 2003년에 니끼띤과 臼杵薰은 성지에서 300m 서쪽에서 석실분을 발견했다. 석실분 내부에서는 철제 요대장식 일괄이 발견되었다(니끼띤·臼杵勳, 2004). 전반적으로 이 무덤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일찍이 알려져있는 발해석실분의 특징을 공유한다. 또한 연해주 옥브리스끼 라이온 체르냐찌노-5 고분군도 같은 형식이다(이블리예프, 1989;니끼띤·겔만, 2002;니끼띤·정석배, 2005). 이런 고분은 지상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고분들을 찾기 위해서는 지구물리학적 탐사가 필요한다.
그러한 탐사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2004년에 시작되었다. 2005년에는 베스쏘노바가 크라스키노 성지 내부지역에 대한 전체적인 자기도를 작성했다. 그 결과는 아직도 발굴, 그리고 전기단층법과 지질레이더를 통한 검증과 해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얻어진 예비적인 평면도 상에서 볼 때 주거구역, 도로, 정원, 그리고 다른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방법이 좀더 개발되면 대형발굴없이 평지위의 유적의 전체적인 포국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크라스키노 성지의 연구는 연해주 8~10세기의 고고학과 역사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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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발해고고학에서 크라스키노 성지의 의의 자료번호 : kr.d_0004_003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