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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망우산보루

忘憂山堡壘
  • 저필자
    최재도(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서울 중랑구, 경기도 구리시 접경의 망우산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용마산과 아차산 줄기가 만나 북쪽으로 뻗은 망우산 능선을 따라 3개의 보루가 줄지어 배치되어 있다. 중랑천 일대와 남동쪽의 한강 유역이 잘 관측된다.
유적개관
정상부의 헬기장과 군용 교통호 및 공동묘지 등으로 인해 훼손이 심하다.♠망우리 공동묘지로 인해 훼손이 심한데, 성벽의 둘레는 약 120m가량으로 추정된다.♠망우리 공동묘지로 인해 훼손이 심한데, 정상부 남쪽 경사면에 일부 석축이 노출되어 있다.
출토유물
* 고구려 토기편, 무문토기편
참고문헌
「남한의 고구려유적」, 2006
해설
서울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 접경의 망우산에 있는 고구려 보루이다. 용마산과 아차산 줄기가 만나 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3개의 보루가 줄지어 배치되어 있다. 태조 이성계가 동구릉에 자신의 묘자리를 잡아놓고는, ‘이제 근심을 잊었구나’조선왕조실록 숙종9년(1683년) 3월 25일라고 말한 것이 망우리의 유래이다. 현재 망우산 정상부와 서쪽 경사면에 대규모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망우산1보루는 약 60만평 규모의 망우리공동묘지 남쪽 끝 봉우리(해발280.3m) 정상부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서쪽의 중랑천 일대와 남동쪽의 한경 유역이 한눈에 조망되며, 남쪽의 용마산 5보루와는 직선거리로 약 850m가량 떨어져 있다.
유적의 평면 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전체 둘리는 146m, 내부 면적은 1,527㎡ 정도이다. 현재 망우산에 있는 보루 중 훼손이 심한 2,3보루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사적 제455호로 지정되었다. 정상부에 조성된 헬기장의 외곽을 따라 석축시설이 일부 노출되어 있었으며, 북쪽 사면에는 성 돌을 재사용하여 쌓은 것으로 보이는 축대가 조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헬기장과 참호를 없애고, 유적을 돌아가도록 하는 등산로를 새로 만들어 보루를 보존하고 있다. 1994년 지표조사에서 고구려 토기 조각이 발견되어 고구려 보루로 추정된다.
망우산2보루는 용마산과 아차산의 주 능선이 합쳐져 북쪽으로 연장되는 망우산의 최고봉(해발 281m)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쪽의 중랑천 일대와 동쪽의 구리시, 남동쪽의 한강 유역이 한눈에 조망된다.
유적은 망우리공동묘지가 조성되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이다. 유적의 평면 형태는 북동-남서방향이 긴 장타원형이며, 둘레는 약 120m 정도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 없다. 유적에 들어서 있는 분묘들 주위로 축대나 담이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석재의 형태나 상태를 보면 성 돌이 재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물로는 흑갈색이나 회백색을 띠는 무른[연질(軟質)] 토기 조각이 다수 수습되었는데, 아차산· 용마산 일대 고구려 보루의 토기와 거의 동일하다. 이외에도 청동기시대의 토기와 석기가 수습되었다.
망우산3보루는 2보루에서 북동쪽으로 약 160m 떨어진 봉우리 해발(275m) 정상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쪽의 중랑천 일대와 동쪽의 구리시 일대 뿐만 아니라 북쪽의 불암산 일대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2보루와 마찬가지로 공동묘지에 포함되어 있어 유적은 원래 형태와 규모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이다. 정상부의 남쪽 경사면에 있는 묘지 뒤편으로 5~7단 정도의 석축이 일부 노출되어 있지만, 이 석축이 보루의 외곽 성벽인지 성 돌을 재사용하여 최근에 축조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유물은 정상부 주변에서 고구려 토기 조각 이외에 청동기시대 토기가 수습되어 이 일대에 청동기시대 유적이 분포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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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산보루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5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