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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사과수촌고분군

四樹墓群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
  • 원소장처
    요녕성 본계시 본계만족자치현 초하성진 사과수촌(中國 遼寧省 本溪市 本溪滿族自治縣 草河城鎭 四棵樹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유적개관
160㎡에 적석묘와 석실분이 분포하고 있다.
참고문헌
「文物地圖集」
해설
현재 본계시의 도심에서 약 30km, 본계만족자치현 현소재지(縣所在地)인 소시진(小市鎭)에서는 약44km 떨어진 초하성진 사과수촌 동북쪽에서 발견된 고분군이다.
약 160m² 면적에 적석묘(積石墓)와 석실묘 두 종류의 무덤들이 산포되어 있다.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보고되지 않아 유적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덤의 조영방식이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고구려 고분으로 추정된다.
본계 지역은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현도군(玄菟郡, 한(漢) 무제(武帝)가 고조선을 멸하고 설치한 당시의 현도가 아닌 요하방면으로 이전한 제2군치나 제3군치로 보아야한다.)에 속한 기간을 제외하면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의 요동군(遼東郡)에 속한이래, 줄곧 요동군에 속해있었다. 그런데 서로 맞닿아있는 환인에 대하여서는 어떠한 이유였던지 ‘영향권 밖’, 혹은 ‘塞外’로 표현되고 있다. 즉 이 경계는 단순히 행정적 구획이 아니라 이질적인 두 세력이 접한 당시 국경과도 같은 구분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 기록이 등장하는 전국시대부터 당(唐)이 한반도로 진출한 시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지형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요동은 평야지대인데 비해 동쪽으로 본계 지역, 대체로 혼하(渾河)를 만나면서 지형이 급격하게 바뀐다. 한반도 북부에서 발원한 거대 산맥들을 만나면서 험준한 산악지형이 되는 것이다. 즉 한반도 방면으로 중첩되어 있는 대흑산맥(大黑山脈), 길림합달령산맥(吉林哈達領山脈), 용강산맥(龍崗山脈)과 천산산맥(千山山脈), 그리고 노령산맥(老嶺山脈)이 동북쪽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38년 무렵 주몽이 환인(桓仁) 일대에서 고구려를 개국한 이후부터 줄곧, 고구려는 요동의 진출을 두고 중국 세력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다.
고구려가 요하 유역까지 진출한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385년에 고국양왕(故國壤王)이 현도군과 요동군을 함락한 바가 있으나 이는 5개월에 그친 일시적인 일이고, 대체로 광개토왕대에 들어 402년 숙군성 공격, 404년 요서 공격 등을 통해 고구려의 요하 유역진출이 가능해 진 것으로 파악된다. 또 본계 지역에 고구려 유적이 나타난다는 것은 곧, 고구려가 요동으로 진출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계는 고구려의 요동진출의 첫 교두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요동 진출로는, 반대로 중국세력의 침입로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일찍부터 고구려는 요동에서 국도(國都)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에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는데, 이 지역의 유적들도 그 흔적으로 파악된다.
사과수촌 고분군은 404년 고구려의 요동 점유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되었다고 보이며, 고구려의 요동진출 및 지역지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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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수촌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100_0030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