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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망파령관애

望波嶺關隘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상향(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台上鄕)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750m
입지
중국 길림성 집안시 서북쪽 50km 거리의 삼가자댐 부근에 위치한다. 망파령 산줄기는 대체로 동남에서 서북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서북향 산줄기의 끝지점에는 용두령이라는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가 강쪽으로 돌출하여 병풍처럼 협곡을 가로막고 있다. 세차게 북류하던 쌍차하는 앞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돌아나가며, 강 건너편에는 가파르게 우뚝 솟은 산이 이어진다. 망파령 관애는 용두령의 등성이에 축조되어 있다.
유적개관
총 길이 750m, 잔고 1.5~2.5m 되는 석축 차단벽이다. 서북단은 원래 종으로 13m, 높이 0.5~0.8m의 석루를 쌓아 제방처럼 만들었는데, 1976년 삼가자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다. 용두령과 망파령 사이에 폭 9m 개구부가 있으며, 양족에는 폭 10m, 높이 5m의 차단벽이 남아있는데, 문지로 파악된다. 문지의 왼쪽 후방에는 높이 2m, 길이 20m, 폭 8m인 평탄대지가 있으며, 대지 위에는 석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망파령 관애는 험준한 산세를 따라 차단벽을 구축하여 혼강에서 신개하를 거슬러 집안으로 통하는 교통로상의 요충지에 위치한 군사방어시설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망파령 관애가 신개하 하구에 위치한 패왕조산성과 함께 신개하 일대에서 고구려 도성의 외곽방어선을 구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물개관
* 등자, 철기, 토기 등
참고문헌
「集安縣文物志」
해설
집안시 서북쪽 50km 거리의 삼가자(三家子)댐 부근에 위치한다. 집안시 쌍차향(雙岔鄕)에서 서북으로 10km 떨어져 있는데, 쌍차향과 태상향의 경계지점에 해당된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이었던 국내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주요 교통로 중 하나는 혼강(渾江)에서 신개하(新開河)를 거슬러 노령(老嶺) 산줄기를 넘어야 하는데, 망파령관애는 신개하의 상류에서 이 교통로를 차단하는 위치에 있다. 관애(關隘)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신개하 하구의 패왕조산성(覇王朝山城)과 함께 도성 외곽 방어선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망파령 산줄기는 대체로 동남~서북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서북향 산줄기의 끝 지점에는 용두령(龍頭嶺)이라는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가 강 쪽으로 돌출하여 병풍처럼 협곡을 가로막고 있다. 세차게 북류하던 신개하의 지류, 쌍차하(雙岔河)는 용두령 앞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가 용두령을 돌아나간다. 강 건너편에도 가파르게 우뚝 솟은 산이 이어져서 강줄기는 ‘S’ 곡선을 그리며 북류한다.
망파령관애는 망파령에서 뻗어 나와 협곡을 가로막고 있는 용두령의 등성이에 축조하였다. ‘왕팔발관애(王八脖關隘)’라고도 한다. 신개하를 거슬러 집안으로 가는 길목을 성벽이 차단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을 패성(壩城) 혹은 관애(關隘)라고도 부르는데, 패(壩)는 제방의 의미로 곡부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돌로 쌓았으나 현재는 많이 허물어졌다.
이 관애에 대해서는 1963년 5월, 길림성박물관과 길림사범대학, 길림성철학사회과학연구소, 집안현문물보관소 등이 합동으로 조사하였고, 1976년 삼가자댐의 건설로 유적의 대부분이 수몰되었다. 1983년 집안현문물조사대가 재조사와 실측조사를 실시하였다.
전체 길이는 750m, 기저부 너비 10m, 잔존 높이 1.5~2.5m이고, 방향은 350°이다. 성벽의 북쪽 끝은 쌍차하에 맞닿아 있고 성벽 아래쪽 강변에는 잔존 길이 13m, 높이 0.5~0.8m인 돌 제방을 축조하였지만, 현재는 수몰되었다. 성벽 남쪽 끝은 크고 작은 7개의 산봉우리로 이어지는데, 산봉우리 사이의 구릉지에도 돌로 성벽을 축조한 흔적을 볼 수 있다. 현재는 도로가 성벽의 중간을 뚫고 지나간다. 도로 북변에 성벽의 단면이 드러나 있다. 네모반듯한 큰 강돌로 기초를 다진 다음, 작은 자갈을 안쪽으로 약간씩 물리면서 층층이 쌓아 올렸다. 성돌 가운데는 다듬은 것도 있는데, 크기는 20cm, 35cm, 45cm전후이다. 성벽 높이는 산등성이와 같아 병력이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한 통로를 이루고 있는데 폭은 1.5~2.5m이다. 성벽 남단 90m 정도는 일찍이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자갈로 쌓은 다음 진흙을 10~20cm 두께로 덧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9단, 2.5m 전후이고, 약간 다듬은 성돌을 안쪽으로 조금씩 물리면서 쌓았다. 성벽 남단에는 폭 9m 정도로 트인 곳이 있는데, 문지로 추정되며 양쪽 측벽은 다듬은 큰 돌로 축조하였다. 현재 측벽의 너비는 10m이고, 잔존 높이는 5m 정도이다. 문길의 폭은 10m이다. 문지 왼쪽 뒤편에 2m 높이로 축대를 쌓은 언덕이 있는데, 언덕 정상은 비교적 평탄하며 길이는 20m, 너비는 8m이다.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일찍이 건물지가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현지 주민에 의하면, 관애 부근에서 쇠화살촉 꾸러미와 쇠등자가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1963년 조사시 남쪽 0.5km 경지에서 돌절구 1점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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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파령관애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