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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성씨록』 에 이르기를, 산목직(山木直)은...]

『성씨록』 에 이르기를, 산목직(山木直)은 민기촌(民忌寸), 회원숙녜(檜原宿禰), 평전숙녜(平田宿禰), 평전기촌(平田忌寸), 율촌기촌(栗村忌寸), 소곡기촌(小谷忌寸), 이세국(伊勢國) 엄예군(嚴藝郡)의 민기촌(民忌寸), 경기촌(輕忌寸), 하신기촌(夏身忌寸), 한국기촌(韓國忌寸), 신가기촌(新家忌寸), 문기촌(門忌寸), 요원기촌(蓼原忌寸), 고전기촌(高田忌寸), 국멱기촌(國覔忌寸)[육오국(陸奧國), 신전군(新田郡)], 전정기촌(田井忌寸), 수기촌(狩忌寸), 동문부기촌(東文部忌寸), 장미기촌(長尾忌寸), 회전직(檜前直)[대화국(大和國), 갈상군(葛上郡)], 곡숙녜(谷宿禰), 문부곡기촌(文部谷忌寸), 문부강기촌(文部岡忌寸), 노기촌(路忌寸), 노숙녜(路宿禰) 등 25성의 조상이다.
 
【주석】
1. 성씨록왈(姓氏錄曰)
이 일문은 〈판상계도(坂上系圖)〉 산목직(山木直)조에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제23권 우경 제번(상)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 조의 일문이다. 현재의 초략본에는 후한(後漢) 영제(靈帝)의 아들 연왕(延王)에서 나왔다는 내용만 있다.
2. 산목직(山木直)
산목직에 대해서는 앞의 [일문11] 산목직 참조.
3. 민기촌(民忌寸)
민(民)이라는 씨명은, 대왕의 직할지에 속해 있던 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민기촌의 본래 성은 직(直)이었고, 다시 연(連)으로 바뀌었다.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1년 5월 갑진조에서 왜한직(倭漢直) 등의 성을 연(連)으로 바꾸었다고 하였고, 동 14년 6월 갑오조에서 왜한련(倭漢連)에게 기촌(忌寸)을 사성하였다고 하였다.
민직(民直)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민직대화(民直大火, 『일본서기』 天武 원년 6월 갑신조 등), 민직소유(民直小鮪, 『일본서기』 天武 원년 7월 임자조 등)이 있고, 민기촌(民忌寸)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민직대화가 기촌으로 성을 바꾼 민기촌대화(民忌寸大火, 『속일본기』 大寶 3년 7월 임자조), 민직소유가 성을 바꾼 민기촌원지비(民忌寸袁志比, 『속일본기』 和銅 4년 4월 임오조 등), 민기촌비량부(民忌寸比良夫, 『속일본기』 大寶 2년 12월을묘조 등), 민기촌흑인(民忌寸黑人, 天平 4년경 「播磨國正稅帳」, 『대일본고문서』 2-150), 민기촌대미(民忌寸大梶, 『속일본기』 天平 9년9월기해조등), 민이미길고마(民伊美吉古磨, 天平 17년 10월 21일부 「右兵庫移」, 『대일본고문서』 2-477), 민기촌진읍(民忌寸眞楫, 『속일본기』 天平 18년 5월무오조 등), 민이미길약마려(民伊美吉若麻呂, 天平勝寶 4년 「灌頂梵天神策經跋語」, 『寧樂遺文』 下-622), 민기촌총마려(民忌寸總麻呂, 『속일본기』 天平寶字 8년 9월 을사조 등), 민기촌의마려(民忌寸蟻麻呂, 『속일본기』 天平神護 원년10월정축조), 민기촌광성(民忌寸廣成, 『日本後紀』 延曆 16년 정월 갑오조 등), 민기촌석승(民忌寸石勝, 弘仁 4년7월 12일부, 「因幡國東木寺田勘文」 『平安遺文』 1-126). 민기촌천수(民忌寸川守, 承和 14년6월 27일부 「山城國宇治郡司解」 『平安遺文』 1-78), 민기촌국성(民忌寸國成, 『日本文德天皇實錄』 齊衡 3년11월경자삭조), 민이미길능진(民伊美吉能津, 『日本三代實錄』 貞觀 8년 11월 을사조) 등이 있다.
민기촌씨는 연력(延曆) 4년에 판상(坂上), 내장(內藏), 평전(平田), 대장(大藏), 문(文), 조(調), 문부(文部), 곡(谷), 양(良), 좌태(佐太), 산구(山口) 등과 함께 숙녜(宿禰)라는 성을 받았다(『속일본기』 延曆 4년 6월 癸酉條). 따라서 숙녜라는 성을 받지 못한 민기촌광성(民忌寸廣成) 등은 방계의 민기촌씨로 생각된다.
그러나 민기촌국성(民忌寸國成)은 내장소속(內匠少屬) 정7위하로서 내장조신(內藏朝臣)이라는 성을 받았다(『日本文德天皇實錄』 齊衡 3년 11월 경자삭조). 또한 민이미길능진(民伊美吉能津)은 대취대속(大炊大屬) 정6위상으로서 응천문(應天門)의 화재 사건에서 공을 세워 본거지를 산성국(山城國) 기이군(紀伊郡)에서 우경(右京) 3조(三條)로 바꿀 수 있었다(『日本三代實錄』 貞觀 8년 11월 을사조). 산성국 기이군에 민이미길씨가 거주하였던 사실은 산성국 기이군 사람 대취대속(大炊大屬) 종6위하 진기촌비진마려(秦忌寸比津麻呂)가 원래 씨성인 민이미길(民伊美吉)을 회복한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日本三代實錄』 貞觀 5년 8월 무진조). 한편 민기촌씨는 내장기촌(內藏忌寸) 등 59씨와 함께 이미길(伊美吉)이라는 성을 받았다(『日本文德天皇實錄』 天安 원년 정월 경신조).
4. 회원숙녜(檜原宿禰)
회원숙녜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상) 「회원숙녜(檜原宿禰)」 조(813) 참조. 해당 조항에서는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와 조상이 같다. 도하직(都賀直)의 손자 하제직(賀提直)의 후손이라는 내용만 보인다.
5. 평전숙녜(平田宿禰)
평전숙녜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상) 「평전숙녜(平田宿禰)」 조(817) 참조. 해당 조항에서는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와 조상이 같다. 도하직(都賀直)의 5세손인 색부직(色夫直)의 후손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6. 평전기촌(平田忌寸)
평전(平田)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근강국(近江國) 애지군(愛智郡) 평전향(平田鄕), 즉 현재의 자하현(滋賀縣) 언근시(彦根市) 도지(稻枝) 부근의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평전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평전기촌소성(平田忌寸小成, 『類聚國史』 99, 叙位, 天長 원년 11월 정사조)이 있다. 천안 원년에 민기촌(民忌寸), 내장기촌(內藏忌寸) 59씨와함께이미길(伊美吉)이라는성으로개성되었다(『日本文德天皇實錄』 天安 원년정월 경신조).
7. 율촌기촌(栗村忌寸)
율촌(栗村)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단파국(丹波國) 하록군(何鹿郡) 율촌향(栗村鄕), 즉 현재의 경도부(京都府) 능부시(綾部市) 이구전(以久田) 부근의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율촌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율촌기촌씨가 단파국 하록군 율촌향을 본거지로 삼고 있었던 사실은 하록군에 한부향(漢部鄕)이 있고 하록군 사람으로 한부복도자(漢部福刀自, 『日本三代實錄』 貞觀 8년 9월 임술조), 한부매도자매(漢部妹刀自賣, 『日本三代實錄』 仁和 3년 6월 정미조)가 있는 사실로 추측할 수 있다.
8. 소곡기촌(小谷忌寸)
소곡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원강국(遠江國) 반전군(磐田郡) 소곡향(小谷鄕), 즉 현재의 정강현(靜岡縣) 인좌군(引佐郡) 일대에 있던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나 분명하지 않다. 소곡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9. 이세국엄예군민기촌(伊勢國嚴藝郡民忌寸)
엄예군(嚴藝郡)은 엄기군(嚴伎郡)으로도 표기한다. 엄예군은 현재 삼중현(三重縣) 하예군(河藝郡)의 일부이다.
이세국 엄예군의 민기촌씨는 원래 씨성이 한인부(漢人部)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호경운(神護景雲) 원년에 이세국 반고군(飯高郡) 사람 한인부을리(漢人部乙理) 등 3인에게 민기촌이라는 성을 내렸다는 내용이 보이는데(『속일본기』神護景雲 원년 12월 정해조), 이들이 이 항목의 민기촌씨와 동족일 것이다.
10. 경기촌(輕忌寸)
경(輕)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대화국(大和國) 고시군(高市郡) 경읍(輕邑), 즉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강원시(橿原市) 대경정(大輕町) 부근을 가리키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경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11. 하신기촌(夏身忌寸)
하신(夏身; 나츠미)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이하국(伊賀國) 명장군(名張郡) 하신향(夏身鄕), 즉 현재의 삼중현(三重縣) 명장시(名張市) 하견(夏見; 나츠미)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12. 한국기촌(韓國忌寸)
한국(韓國; 가라쿠니)이라는 씨명은 한국이라는 국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韓)을 ‘가라’라고 읽는 것은 왜가 처음 접촉한 나라가 가라(加羅)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뒤에는 당(唐)이라고 표기하고도 당진(唐津, 가라츠)와 같이 ‘가라’로 읽었다. 화천국 신별의 「한국련(韓國連)」 조에서는 무열천황(武烈天皇) 때 한국(韓國)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와서 복명할 때 한국련이라는 성을 받았다고 하였다. 또한 『속일본기』 에 원래 한국련원(韓國連源)의 조상인 염아(鹽兒)라는 인물이 원래 물부련(物部連)이라는 씨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조(父祖)가 사신으로 다녀온 나라의 이름을 따서 한국련으로 고쳤다는 내용이 보인다(『속일본기』 延曆 9년 11월 임신조). 한국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13. 신가기촌(新家忌寸)
신가(新家)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하내국(河內國) 지기군(志紀郡) 신가향(新家鄕), 즉 현재의 대판부(大阪府) 등정사시(藤井寺市) 소산(小山) 주변의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가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신가기촌대어(新家忌寸大魚, 天平 4년 8월 10일부 「皇后宮職解」, 『대일본고문서』 1-449 등)가 있다. 그는 다른 사료에서 대부분 신가대어(新家大魚, 天平 3년 8월 10일부 「皇后宮職解」, 『대일본고문서』 1-445 등)로 보이므로, 기촌이라는 성을 사용하지 않은 신가침어(新家針魚, 天平 15년 10월 17일부 「寫疏所解」, 『대일본고문서』 2-347 등), 신가제산(新家弟山, 天平 21년 3월 「東大寺寫一切經所解」 10-610 등),신가어조(新家御助, 天平勝寶 6년 8월 8일 「百部法華經充本帳」, 『대일본고문서』 4-18 등)도 신가기촌일 가능성이 있다.
14. 문기촌(門忌寸)
문(門)이라는 씨명에 대해서는 문부(門部)의 반조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와 지명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문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15. 요원기촌(蓼原忌寸)
요원(蓼原)이라는 씨명은,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 에 두 눈이 먼 여자가 약사불에 정성을 드려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에 보이는 낙랑경(諾樂京, 나라) 월전지(越田池)의 남쪽 요원리(蓼原里), 즉 현재의 나량시(奈良市) 법련정(法蓮町) 부근의 지명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日本靈異記』 下卷 「二目盲女人歸敬藥師佛木像以現得明眼第十一」).
요원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으나, 기촌이라는 성을 갖지 않은 요원등성(蓼原藤成, 天平勝寶 7년 9월 28일부 「班田司歷名」, 『대일본고문서』 4-82)이 보인다.
16. 고전기촌(高田忌寸)
고전(高田)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대화국(大和國) 십시군(十市郡) 고전장(高田莊), 즉현재의 나량현(奈良縣) 앵정시(櫻井市) 고전(高田)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전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고전기촌가수(高田忌寸家守, 『類聚國史』99, 叙位, 天長 10년 2월 을해조)가 있다. 그는 승화(承和) 7년(840)에 외종5위하 월후개(越後介) 고전숙녜가수(高田宿禰家守)로 보인다.
17. 국멱기촌(國覓忌寸)
국멱(國覓)이라는 씨명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국멱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359-일문16]의 국멱기촌 항목 참조. 육오국(陸奥國) 신전군(新田郡), 즉 현재 궁성현(宮城縣) 율원군(栗原郡) 지역의 국멱기촌씨 인명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으나, 신귀(神龜)2년에 하이(蝦夷) 정벌의 공로로 훈위(勳位)를 받은 국멱기촌승마려(國覓忌寸勝麻呂)가 육오국에 거주하였을 가능성이 있다(『속일본기』 神龜 2년 윤정월 정미조).
18. 전정기촌(田井忌寸)
전정(田井)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하내국(河內國) 지기군(志紀郡) 전정향(田井鄕), 즉 현재의 대판부(大阪府) 팔미시(八尾市) 지기정(志紀町) 전정중(田井中)이라는 지명 혹은 이세국(伊勢國) 엄예군(嚴藝郡) 전정향(田井鄕)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전정기촌(田井忌寸)의 본래 성은 직(直)과 연(連)이었다. 전정직길마려(田井直吉摩呂)가 천무천황(天武天皇) 10년(681) 4월에 연이라는 성을 받았다(『일본서기』 天武 10년 4월 경술조). 한편 682년에 왜한직(倭漢直) 등에게 성을 내릴 때 전정직씨도 함께 연이라는 성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685년에 왜한련(倭漢連)에게 기촌이라는 성을 내렸을 때 함께 기촌이 되었을 것이다.
전정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대왜국(大倭國) 우지군(宇智郡) 자모향(資母鄕)사람인 전정이미길남족(田井伊美吉男足)이 보인다(연대 미상 「勘籍」 25-93).
19. 수기촌(狩忌寸)
수(狩)라는 씨명은 사냥에 종사하는 수인(狩人)이라는 직명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 지명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가 있다.
수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수기촌(狩忌寸, 天平 17년 4월 21일부 「左馬察移」, 『대일본고문서』 2-423)이 있다.
20. 동문부기촌(東文部忌寸)
동문부(東文部)라는 씨명 중 동(東)은 서쪽의 하내(河內) 지역과 대비되는 왜(倭)를 의미하며, 대화국(大和國), 즉현재 나량현(奈良縣) 남부의 지명을 나타내고, 문부(文部)는 문필이라는 직능을 뜻하는 것이다.
동문부기촌(東文部忌寸)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21. 장미기촌(長尾忌寸)
장미(長尾)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대화국(大和國) 갈하군(葛下郡) 장미읍(長尾邑), 즉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북갈성군(北葛城郡) 당마정(當麻町) 장미(長尾)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장미기촌(長尾忌寸)의 성은 원래 직(直)에서 연(連)을 거쳐 기촌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천무천황 11년(682)과 14년(685)에 왜한직(倭漢直) 등이 각각 연과 기촌이 될 때 그 일족으로서 함께 새로운 성을 받았을 것이다(『일본서기』 天武 11년 5월 갑진조, 天武 14년 6월 갑오조).
장미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장미기촌국승(長尾忌寸國勝, 天平寶字 6년 2월 1일 「增壹阿含經卷十跋語」 『寧樂遺文』下-633), 장미기촌금촌(長尾忌寸金村, 『속일본기』寶龜 2년 정월 신사조) 등이 있다. 장미기촌금촌은 782년에 대학박사(大學博士)가 되었다(『속일본기』延曆 원년 6월 신미조). 그러나 [359-일문17]에 의하면 지노직(志努直)의 셋째 아들인 아량직(阿良直)이 군기촌(郡忌寸)과 장미기촌(長尾忌寸) 등 7성의 조상이라고 하였으므로, 장미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이 모두 이 조항의 장미기촌 일족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22. 회전직(檜前直)
회전(檜前)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의 대화국(大和國) 고시군(高市郡) 회전향(檜前鄕), 즉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고시군(高市郡) 명일향촌(明日香村) 회전(檜前) 일대의 지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대화국 갈상군(葛上郡), 즉 현재의 나량현 남갈성군(南葛城郡) 지역의 회전직씨는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23. 곡숙녜(谷宿禰)
곡(谷, 하자마)이라는 씨명은 현재 나량현(奈良縣) 고시군(高市郡) 명일향촌(明日香村)의 곡(谷)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서기』 에 의하면 소아하이(蘇我蝦夷)와 그 아들 입록(入鹿)이 감도강(甘檮岡)에 나란히 집을 짓고 대신의 집을 상궁문(上宮門)이라 하고 입록의 집을 곡궁문(谷宮門)이라고 하였다(『일본서기』 皇極 3년 11월조). 이때 곡궁문의 곡을 파좌마(波佐麻; 하자마)라고 한다고 하였으므로, 곡은 ‘다니’가 아니라 ‘하자마’라고 볼 수 있다. 한편 한직(漢直) 등이 두 문을 지킨다고 하였으므로, 소아씨와 왜한직의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우경 제번(상) 「곡숙녜(谷宿禰)」 조에서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와 조상이 같고 도하직(都賀直)의 4세손인 우지직(宇志直)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곡숙녜씨에 대해서는 해당 조의 곡숙녜 항목 참조.
곡숙녜의 시조인 우지직과 관련하여, 『곡씨가보(谷氏家譜)』 에 의하면 산목직(山木直)의 4세손인 한곡응우지(漢谷應宇志)의 아들 곡직염수(谷直鹽手)가 천무천황을 섬겼고, 4세(四世) 법마려(法麻呂)가 연력(延曆) 4년에 숙녜(宿禰)라는 성을 받았다고 하였다. 한곡응우지는 우경 제번(상) 「곡숙녜(谷宿禰)」 조에 보이는 우지직(宇志直)과 동일 인물로 생각된다. 곡직염수는 천무천황 원년에 근강 조정 측의 장수로 견양련오십군(犬養連五十君)과 함께 활약하다가 속진시(粟津市)에서 참수당한 인물로 보인다(『일본서기』 天武 원년 7월 임자조). 또한 연력(延曆) 4년(785)에 판상기촌(坂上忌寸) 등과 함께 곡기촌(谷忌寸)도 숙녜(宿禰)라는 성을 받았다(『속일본기』 延曆 4년 6월 계유조).
24. 문부곡기촌(文部谷忌寸)
문부곡(文部谷)이라는 씨명은, 앞 항목의 곡씨(谷氏) 일족이 문한과 관련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문부곡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족으로 생각되는 문부곡직(文部谷直)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문부곡직충직(文部谷直忠直, 『日本三代實錄』 仁和 3년 7월 무자조), 문부곡직영세(文部谷直永世, 『日本三代實錄』 仁和 3년 7월 무자조)가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인화(仁和) 3년에 효원천황(孝原天皇)의 후손이며 안배조신(安倍朝臣)과 동족이라고 주장하며 춘연조신(春淵朝臣)이라는 씨성을 받았다는 기록(『日本三代實錄』 仁和 3년 7월 무자조)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효원천황의 후손이 아니라 판상씨와 조상을 같이하는 왜한씨(倭漢氏) 계통으로 생각된다.
25. 문부강기촌(文部岡忌寸)
문부강(文部岡)이라는 씨명 중 문부는 문한과 관련된 일을 맡았기 때문일 것이고, 강(岡)은 대화국(大和國) 고시군(高市郡) 강읍(岡邑), 즉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고시군(高市郡) 명일향촌(明日香村) 강(岡)이라는 지명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부강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26. 노기촌(路忌寸)
노(路)라는 씨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대화국(大和國) 첨상군(添上郡)의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노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노기촌천마려(路忌寸泉麻呂, 『속일본기』 延曆 6년 6월 신축조)가 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의 노숙녜(路宿綱) 항목 참조.
27. 노숙녜(路宿禰)
노(路)라는 씨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노숙녜(路宿禰)의 원래 성은 기촌(忌寸)이었는데, 연력(延曆) 6년(787)에 정6위상 노기촌천마려가 평전기촌장마려 등 4인과 함께 숙녜라는 성을 받았다는 기사(『속일본기』 延曆 6년 6월 신축조)가 보인다.
노숙녜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상) 「노숙녜(路宿禰)」 조(821) 참조. 해당 조에서는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와 조상이 같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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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록』 에 이르기를, 산목직(山木直)은...] 자료번호 : ss.k_0003_0030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