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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권제17...]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권제17. 하무조신(賀茂朝臣; 가모노아소미)의 본계(本系)는 대신조신(大神朝臣; 오미와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대국주신(大國主神; 오쿠니누시노카미)의 후손이다. 아들 대전전녜고명(大田田禰古命; 오타타네코노미코토)의 손자 대하무도미명(大賀茂都美命; 오카모츠미노미코토)[다른 이름은 대하무족니(大賀茂足尼; 오카모노스쿠네)이다.]이 하무신사(賀茂神社; 가모진자)를 섬겼다. 그래서 성을 하무(賀茂; 가모)라고 하게 되었다. 손자가 소전전족니(小田田足尼; 워타타노스쿠네), 다음으로 대등비고(大等毗古; 오토히코)이다. 이는 이하국(伊賀國; 이가노쿠니)의 압수전공(鴨藪田公; 가모노야부타노키미)의 조상이다. 소전전족니의 아들이 우마사하무족니(宇麻斯賀茂足尼; 우마시카모노스쿠네)이고, 그 아들이 어다저족니(御多氐足尼; 미타테노스쿠네)이다. 이가 이예국(伊豫國; 이요노쿠니)의 압부수(鴨部首; 가모베노오비토)의 조상이다. 다음이 수다저족니(須多氐足尼; 스타테노스쿠네), 다음이 인장족니(忍 足尼; 오시미카노스쿠네)이다. 이가 주인군(酒人君; 사카히토노키미), 대화(大和; 야마토), 아파(阿波; 아하), 찬기(讚岐; 사누키)등의 하무숙녜(賀茂宿禰; 가모노스쿠네) 및 압부(鴨部; 가모베) 등의 조상이다. 다음이 소장족니(小 足尼; 워미카노스쿠네)인데, 이가 역군(伇君), 원강(遠江; 도호타후미)·토좌(土佐; 도사) 등의 하무숙녜 및 압부(鴨部) 등의 조상이다. 수다저족니의 아들이 의부녜족니(意富禰足尼; 오호네노스쿠네)이고, 다음이 천녜족니(千禰足尼; 치네노스쿠네)이다. 의부녜족니의 8세손인 소을중(小乙中) 승마려(勝麻呂; 가츠마로)인데, 이가 이예국의 하무이예조신(賀茂伊豫朝臣; 가모노이요노아소미)과 하무수(賀茂首; 가모노오비토) 등의 조상이다. 천녜족니의 4세손인 흑언(黑彦; 구로히코)이 천정중원영진인천황(天渟中原瀛眞人天皇; 아마노누나하라오키노마히토노스메라미코토)[시호는 천무(天武; 덴무)이다.] 13년에 조신(朝臣; 아소미)이라는 성을 받았다. 금상(今上)의 홍인(弘仁) 2년에 정6위상 하무숙녜하수(賀武宿禰河守; 가모노스쿠네카하모리), 아우 정7위상 관수(關守; 세키모리), 조카 춘성(春成; 하루나리), 종7위상 고강(高岡; 다카워카)·우주(友主; 도모누시), 아우인 광우(廣友; 히로토모)·야장(野長; 노나가) 등 7인에게 같이 하무조신(賀茂朝臣; 가모노아소미)을 내렸다.
 
【주석】
1. 신찬성씨록권제십칠(新撰姓氏錄卷第十七)
이 일문은 압각가본(鴨脚家本) 『신찬성씨록』 잔간(殘簡)에 수록되어 있으며 『신찬성씨록』 제17권 대화국(大和國) 신별(神別) 「하무조신(賀茂朝臣)」 조의 일문이다. 현재의 『신찬성씨록』 초본에는 “대신조신과 조상이 같다. 대국주신의 후손이다. 대전전녜고명의손자 대하무도미명[다른 이름은 대하무족니이다.]은 하무신사를 받들어 섬겼다(大神朝臣同祖. 大國主神之後也. 大田田禰古命孫大賀茂都美命[一名大賀茂足尼.] 奉齋賀茂神社也.)”라고만 되어 있다. ‘권제17(卷第十七)’이라는 표현은 이 조항에서만 보이고, 다른 일문에서는 ‘제1권’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완본의 원래 표현은 현재로서는 확정하기 어렵다.
2. 하무조신본계(賀茂朝臣本系)
현재의 『신찬성씨록』 에는 하무조신 다음에 ‘본계(本系)’라는 두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본계’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354-일문3]성씨록제8권운(姓氏錄第八卷云)조에서 ‘고교조신본계(高橋朝臣本系)’라고 되어 있으며,[355-일문3] 압현주본계(鴨縣主本系)조에 ‘압현주본계(鴨縣主本系)’라고 되어 있다. 「본계(本系)」 에 대해서는 『신찬성씨록』 서문 황통미조성명(皇統彌照聖明)조의 「본계」 항목 참조.
하무(賀茂; 가모)라는 씨명은 압(鴨; 가모)이라고도 쓰며 율령제하의 대화국(大和國)갈상군(葛上郡) 상부향(上鳧鄕)·하부향(下鳧鄕)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어소시(御所市)즐라(櫛羅)·소림(小林)·삼실(三室)·죽전(竹田) 일대의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무조신의 원래 성은 군(君)이었는데,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 11월무신삭조에 의하면 압군(鴨君)에게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내렸다고 한다.
하무조신씨 일족으로는 하무조신하이(賀茂朝臣蝦夷, 『일본서기』 持統 9년 4월 갑오조), 압조신길비마려(鴨朝臣吉備麻呂, 『속일본기』 大寶 원년 정월 정유조 등), 압조신견마(鴨朝臣堅磨, 『속일본기』 和銅 5년 정월 무자조 등), 압조신치전(鴨朝臣治田, 『속일본기』 神龜 원년 2월 임자조), 압조신조(鴨朝臣助, 『속일본기』 神龜 원년 2월 임자조 등), 하무조신비매(賀茂朝臣比賣, 『속일본기』天平 7년 11월 기미조 등), 하무조신고마려(賀茂朝臣高麻呂, 『속일본기』 天平 9년 9월 기해조) 등이 있다.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대화국(大和國) 신별(神別) 「하무조신」 조(567) 하무조신 참조.
3. 대신조신(大神朝臣)
대신조신에 대해서는 대화국(大和國) 신별(神別) 「대신조신」 조(566) 참조.
4. 대국주신지후(大國主神之後)
대물주신(大物主神)·대기귀명(大己貴命)이라고도 한다. 『일본서기』 신대상(神代上), 제8단에 “대기귀신(大己貴神)의 행혼(幸魂)·기혼(奇魂)이 일본국(日本國) 삼제산(三諸山)으로 가서 머물게 되었는데 이가 대삼륜신(大三輪神)이며, 이 신의 아들이 감무군(甘茂君; 가모노키미)”이라고 하였다. 대국주신에 대해서는 좌경 신별(하) 「석변공(石邊公)」 조(417)대국주명(大國主命) 참조.
5. 자대전전녜고명(子大田田禰古命)
현재의 『신찬성씨록』 에는 대전전녜고명 앞에 ‘아들 자(子)’라는 글자가 없다. ‘아들’이란 대전전녜고명이 대국주신(大國主神)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일본서기』 숭신천황(崇神天皇) 7년 2월 신묘조에 대물주신이 나의 아들인 대전전근자(大田田根子; 오타타네코)로 하여금 제사지내도록 하면 나라가 평안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같은 해 8월 기유조에 대전전근자가 자신이 대물주대신(大物主大神)의 아들이라고 답한 내용이 보인다. 대전전녜고명에 대해서는 대화국 신별 「하무조신(賀茂朝臣)」 조(567) 대전전녜고명 참조.
6. 대하무도미명(大賀茂都美命)
대하무도미명에 대해서는 대화국 신별 「하무조신」 조(567) 대하무도미명 참조.
7. 하무신사(賀茂神社)
하무신사에 대해서는 대화국 신별 「하무조신」 조(567) 하무신사 참조.
8. 잉부성하무(仍負姓賀茂)
이 문장은 현재의 『신찬성씨록』 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무(賀茂) 사성(賜姓)에 대해서는 『선대구사본기(先代舊事本紀)』 지기본기(地祇本紀)에 11세손인 대압적명(大鴨積命)이 기성서리조(磯城瑞籬朝)의 시대에 하무군(賀茂君)이라는 성을 받았다는 내용이 보인다. 또『대삼륜신삼사진좌차제(大三輪神三社鎭座次第)』 별궁소사지사(別宮小社之事)조에 서리궁어우천황(瑞籬宮御宇天皇)의 시대에 대전전근자명(大田田根子命)의 손자 대하무기명(大賀茂祇命)이 천황의 명을 받들어 갈성읍(葛城邑) 하무(賀茂)에 신사를 세우고 사대주명(事代主命)을 받들어 섬겼으므로, 하무군이라는 성을 받았다는 내용이 보인다.
9. 소전전족니(小田田足尼)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10. 대등비고(大等毗古)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11. 압수전공(鴨藪田公)
압수전(鴨藪田)이라는 씨명 중 수전(藪田)은 지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알 수 없다. 이하국(伊賀國)의 압수전공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12. 우마사하무족니(宇麻斯賀茂足尼)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13. 어다저족니(御多氐足尼)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14. 이예국압부수(伊豫國鴨部首)
이예국(伊豫國)의 압부수씨 일족으로는 압부수가도사(鴨部首加都士, 『平城宮木簡』 10-7), 압부수군(鴨部首君, 『平城宮木簡』 10-7), 압부수복주(鴨部首福主, 『日本文德天皇實錄』 嘉祥 3년7월 갑신조) 등이 있다. 압부수가도사와 압부수군 등은 상촌군(桑村郡) 임리(林里)사람이다. 또 압부수복주는 사재를 털어 궁핍한 백성을 구휼하였다고 『일본문덕천황실록』 에 보인다.
15. 수다저족니(須多氐足尼)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16. 인장족니(忍 足尼)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17. 주인군(酒人君)
주인(酒人)이라는 씨명은 『일본서기』 숭신(崇神) 8년 4월 을묘조에 술을 관장하는 사람은 좌개미태(佐介弭苔; 사카비토)라고 하였듯이, 궁중에서 술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주인(酒人)의 반조씨족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주인군(酒人君)이라는 씨명을 가진 사람은 달리 보이지 않는다.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 10월 기묘삭조에 주인공(酒人公)에게 진인(眞人)이라는 성을 내렸다고 한 주인공씨와는 다른 계통의 씨족으로 생각된다. 주인공에 대해서는 대화국 황별 「주인진인(酒人眞人)」 조 참조.
『속일본기』 화동(和銅) 4년(711) 8월 병오조에 주부군대전(酒部君大田)·갱마(粳麿)·석우(石隅) 세 사람에게 경인년적(庚寅年籍, 持統 4년)에 의거하여 압부(鴨部)라는 성을 내렸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때 압부라는 성을 받은 주부군씨는 주인군(酒人君) 씨와 동족일 것이다.
18. 대화아파찬기등국하무숙녜(大和阿波讚岐等國賀茂宿禰)
대화국(大和國)의 하무숙녜씨(賀茂宿禰氏) 일족으로는 하무숙녜하수(賀茂宿禰河守, 『日本後紀』 弘仁 2년 윤12월 을묘조 등), 하무숙녜관수(賀茂宿禰關守, 상동)가 있다. 이 기사에서 대화국(大和國)에 거주하는 하수(河守) 등은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받았다.
아파국(阿波國)의 하무숙녜씨 일족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아파국에는 삼호군(三好郡)에 가무읍(加茂邑), 나하군(那賀郡)에 가무곡(加茂谷)이 있다. 또한 『연희식(延喜式)』 신명장(神名帳)의 미마군(美馬郡)조에 압신사(鴨神社)가 보인다.
찬기국(讚岐國)의 하무숙녜씨 일족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성이 없는 하무정자(賀茂貞子, 寬弘 원년 「讚岐國大內郡入野鄕戶籍」 『平安遺文』2-576), 하무도자녀(賀茂刀自女, 상동)가 보이는데, 찬기국 하무숙녜씨 일족일 가능성이 있다. 『연희식(延喜式)』신명장(神名帳) 아야군(阿野郡)에 압신사(鴨神社)가 보인다. 압신사는,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정관(貞觀) 7년 10월 9일 정사조에 찬기국의 종5위하 하무신(賀茂神)에게 종5위상을 내렸다는 내용이 보이고, 정관 17년 5월 27일 무신조에 종5위상 하무천신(賀茂天神)에게 정5위하를 내렸다는 기사가 보인다.
19. 압부(鴨部)
대화(大和)·아파(阿波)·찬기(讚岐) 등의 압부씨(鴨部氏) 일족의 인명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지만, 찬기국(讚岐國)에는 한천군(寒川郡)과 아야군(阿野郡)에 압부향이 있다.
또한 압부씨로는 압부색호(鴨部色乎, 大寶 2년 「豐前國仲津郡丁里戶籍」, 『대일본고문서』 1-192). 압부흑마려(鴨部黑麻呂, 상동), 압부마아야매(鴨部麻我夜賣, 상동), 압부지□신(鴨部止□身, 「貢進軍布付」 『藤原宮跡出土木簡槪報』 38), 압부(鴨部, 이름이 빠짐, 「調三斗付札」 『藤原宮木簡』 1-47), 압부을만려(鴨部乙万呂, 天平 15년 5월 1일 「一切經本充幷納紙帳」, 『대일본고문서』 8-173 등), 압부양만려(鴨部養万呂, 天平寶字 4년 정월 4일자 「鴨部養万呂解」, 『대일본고문서』 4-399), 압부병족(鴨部竝足, 天平寶字 6년 12월 6일 「奉寫灌頂經料錢用帳」, 『대일본고문서』 16-19), 압부병립(鴨部竝立, 天平寶字 6년 윤12월 29일 「雇人功給歷名帳」, 『대일본고문서』 16-182), 압부소충(鴨部小虫, 天平寶字 6년경 「賣料綿幷用度錢下帳」, 『대일본고문서』 16-86), 압부사인(鴨部舍人, 天平寶字 7년 7월 25일부 「下道主狀」, 『대일본고문서』 5-455), 하무부추마려(賀茂部秋麻呂, 神護景雲 4년 6월 25일부 「優婆塞貢進解」, 『대일본고문서』 6-49 등), 하무부마(賀茂部馬, 상동), 압부선주(鴨部船主, 『續日本後紀』 承和 3년 5월 정사조), 압부씨성(鴨部氏成, 『續日本後紀』 承和 3년 5월 정사조) 등이 있다.
이들 중에서 압부색호·흑마려·마아야매는 풍전국(豐前國) 중진군(仲津郡) 정리(丁里) 사람이며, 압부지□신은 은기국(隱岐國) 차평(次評) 압리(鴨里) 사람이다. 또한 하무부마는 백기국(伯耆國) 회견군(會見郡) 하무향(賀茂鄕)의 호주이고, 추마려는 그 호구(戶口)였다. 하무부추마려(賀茂部秋麻呂)는 압부추만려(鴨部秋万呂, 神護景雲 4년 8월 「奉寫一切經料淨衣用帳」, 『대일본고문서』 6-11)라고도 표기하였다. 압부선주라는 씨성은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承和 3년 5월 정사조에서 하내국(河內國) 사람 산위(散位) 압부선주(鴨部船主)와 무산위(武散位) 동성(同姓) 씨성(氏成) 등에게 하무조신(賀茂朝臣)이라는 성을 내렸다. 속수좌웅명(速須佐雄命)의 후예라고 하였다. 하내국의 압부씨(鴨部氏)에 대해서는 미정잡성(未定雜姓) 하내국(河內國) 「압부(鴨部)」 조(1139) 참조.
20. 소장족니(小 足尼)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21. 역군(伇君)
역(伇)이라는 씨명은,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10년 정월 병진조에 전향일대궁(纏向日代宮) 역민(伇民)의 우두머리이므로 역으로 씨를 삼았다고 하였다.
역군씨 일족으로는 역군소각(伇君小角, 『속일본기』文武 3년 5월 정축조 등)이 있다. 역군소각은 『속일본기』 문무천황(文武天皇) 3년 5월 정축조에 “역군소각을 이두도(伊豆島)에 유배하였다. 처음에 소각은 갈목산(葛木山)에 살았는데 주술로 명성이 있었다. 외종5위하 한국련광족(韓國連廣足)이 스승으로 삼았는데, 후에 그 능력을 시샘하여 요혹(妖惑)으로 참소하였다. 그래서 먼 곳에 유배 보냈다. 세간에서 전하기를, 소각은 귀신을 부릴 수 있어서 물을 긷고 땔감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만약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곧 주술을 써서 묶어 버린다”라고 하였다.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 상권에서는 역우바새(役優婆塞)는 하무역공(賀武役公)인데, 지금의 고하무조신(高賀武朝臣)이며 대화국(大和國) 갈목상군(葛木上郡) 모원촌(茅原村)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지혜롭고 널리 공부하여 신선의 경지에서 노닐었다고 하였다. 만년에는 공작왕의 주술을 익혀 귀신을 마음대로 부렸다고 하였다.
한편 원래 성이 하무역수(賀茂伇首)인 하무역군씨(賀茂伇君氏)가 있는데, 『속일본기』양로(養老) 3년(719) 7월 경자조에 종6위상 하무역수석수(賀茂伇首石穗), 정6위하 천우삼천석(天羽三千石) 등 160인에게 하무역군(賀茂伇君)이라는 성을 주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22. 원강토좌등(遠江土佐等)
원강국(遠江國, 靜岡縣 일부)의 하무숙녜씨(賀茂宿禰氏) 일족의 인명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압부씨(鴨部氏) 일족으로는 압부제이(鴨部弟伊, 『藤原宮跡出土木簡槪報』14)가 있다. 압부제이는 원강국(遠江國) 장전평(長田評, 후대의 長上郡·長下郡) 압리(鴨里) 사람이었다.
토좌국(土佐國)의 하무숙녜씨와 압부씨는 달리 보이지 않는다.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景雲) 2년 11월 무자조에 “토좌국(土左國) 토좌군(土左郡) 사람 신의전공명대(神依田公名代) 등 41인에게 하무(賀茂)라는 성을 내렸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이 하무공씨(賀茂公氏)는 토좌국(土佐國)의 하무숙녜씨(賀茂宿禰氏)와 동족일 것이다. 또한 『대삼륜신삼사진좌차제(大三輪神三社鎭座次第)』대직녜신사(大直禰神社)조에 대전전근자명(大田田根子命)은 대물주명(大物主命)의 5세손인 무반편우명(武飯片隅命)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미량원(美良媛)인데, 토좌(土左) 하무부신(賀茂部臣)의 딸이라고 하였다. 이 하무부신은 압부씨(鴨部氏)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토좌군(土佐郡)에는 압부향(鴨部鄕)이 있는데, 압부씨의 본거지였을 것이다.
또한 『토좌국풍토기(土左國風土記)』 일문(『吉田家文書』)에 토좌군(土左郡) 압부향(鴨部鄕)이 보인다. 『석일본기(釋日本紀)』 권제12, 술의(述義) 8에 인용된 『토좌국풍토기』일문에도 토좌군 군가(郡家) 서쪽 40리에 토좌 고하무대사(高賀茂大社)가 있는데, 그 신의 이름은 일언주존(ー言主尊)이며 그 조상은 분명하지 않으나, 대혈육도존(大穴六道尊)의 아들 미서고언근존(味鋤高彦根尊)이라는 설이 있다고 하였다.
23. 의부녜족니(意富禰足尼)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24. 천녜족니(千禰足尼)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25. 소을중(小乙中)
『일본서기』 천지천황(天智天皇) 3년(664) 2월 정해에 천황이 대황제(大皇弟)에게 명하여 관위계명(冠位階名), 씨상(氏上), 민부(民部), 가부(家部) 등의 일을 정비하도록 하였다. 그때 제정된 26계 관위(冠位) 중에 23번째 관위로 소을중이 보인다.
26. 승마려(勝麻呂)
승마려라는 이름은 여기에만 보인다.
27. 이예국하무이예조신(伊豫國賀茂伊豫朝臣)
이예국(현재의 愛媛縣) 하무이예조신의 원래 성은 하무직(賀茂直)이다. 『속일본기』 천평보자(天平寶字) 2년 3월 임오조에 이예국 신야군(神野郡) 사람 소초위상(少初位上) 하무직마주(賀茂直馬主) 등에게 하무이예조신(賀茂伊豫朝臣)이라는 성을 내렸다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신호경운(神護景雲) 2년 4월 신축조에 이예국 신야군 사람 하무직인주(賀茂直人主) 등 네 사람에게 이예하무조신이라는 성을 내렸다고 하였다.
하무이예조신씨 일족으로, 하무직(賀茂直)으로 불리던 시대의 사람으로는 하무직추마려(賀茂直秋麻呂, 天平勝寶 2년 정월 8일부 「但馬國司解」, 『대일본고문서』 3-356 등)가 있다. 또한 이예국에는 신거군(新居郡)에 하무향(賀茂鄕)이 있다. 신거군은 원래 신야군이었는데, 천황의 이름을 피해서 신야군을 신거군으로 고쳤다고 한다(『類聚國史』 권제28, 「天皇避譚」, 大同 4년 9월 을사조).
28. 하무수(賀茂首)
이예국의 하무수씨 일족의 이름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29. 흑언(黑彦)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30. 천정중원영진인천황십삼년(天渟中原瀛眞人天皇十三年)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 11월 갑술조에 압군(鴨君)에게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내렸다는 기사가 보인다.
31. 금상홍인이년(今上弘仁二年)
금상은 차아천황(嵯峨天皇)이다. 이 사성에 대해서는 『일본후기(日本後紀)』 홍인 2년 윤12월 을묘조에 대화국(大和國) 사람 정6위하 하무숙녜하수(賀茂宿禰河守)와 정7위상 하무숙녜관수(賀茂宿禰關守) 등에게 조신이라는 성을 주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32. 하무숙녜하수(賀茂宿禰河守)
『일본후기』 에 보인다. 『일본후기』 에서는 정6위하라고 하였는데, 이 일문에서는 정6위상으로 되어 있다. 「본계장(本系帳)」 을 제출할 때는 정6위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33. 하무숙녜관수(賀茂宿禰關守)
『유취국사(類聚國史)』 권제99 서위(敍位) 홍인(弘仁) 5년 정월 을묘조에 종6위상 하무숙녜관수에게 종5위하를 주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일본후기』 홍인 6년 정월 갑신에는 종5위하 하무조신관수를 대사인조(大舍人助)로 삼았다는 내용이 보인다.
34. 춘성(春成)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35. 고강(高岡)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36. 우주(友主)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37. 광우(廣友)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38. 야장(野長)
이 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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