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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조호(朝戶; 아사헤)

조호(朝戶; 아사헤)
 백제국(百濟國) 사람 흉광사주조호(胷廣使主朝戶; 무네히로노오미아사헤)의 후손이다.
 
【주석】
1. 조호(朝戶)
조호라는 씨명은 율령제 비후국(肥後國) 익성군(益城郡) 마도(麻部; 아사베) 지역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 구마모토현(熊本縣) 구마모토시(熊本市) 일대에 비정된다.
조호 일족으로는 천평(天平) 8년(736) 3월 12일자 「강본택청경장(岡本宅請經帳)」(『대일본고문서』 7-51)에 기재된 조호제공(朝戶諸公)과 「천평승보 2년(750) 8월 28일자 조동대사사해(天平勝寶二年八月二十八日付 造東大寺司解)」(『대일본고문서』 25-133)에 기재된 조호소진(朝戶小津)이 있다. 『원형석서(元亨釋書)』 에는 대화국(大和國) 평군군(平群郡)인 자보(慈寶; 지호)에 관해 “속성(俗姓)이 조호씨이고 대화국(大和國) 평군군(平群郡) 사람으로 홍인(弘仁) 10년(819) 11월에 죽었다”라고 적혀 있다. 『일본후기』 홍인(弘仁) 2년(811) 6월 무진조에는 “전등대법사위(傳燈大法師位) 승오(勝悟)의 졸전(卒傳)에는 불교 철학에 관해 당시 제1인자로 간주되는 호명(護命; 고묘)과 자보(慈寶) 등 뛰어난 불교인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라고 적혀 있다.
2. 흉광사주조호(胷廣使主朝戶)
흉광사주조호는 여기에만 보인다.
조호가 조상이라 주장하는 백제국(百濟國) 사람 흉광사주조호(胷廣使主朝戶)는 여기에만 보인다. 또 조호도 나량 시대의 고문서와 평안 시대 이후 사서에만 일족에 관한 기록이 보일 뿐이다. 따라서 조호와 흉광사주조호의 관계를 입증할 자료가 「고기」 와 「구전」 등에 존재하지 않아 미정잡성에 기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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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朝戶; 아사헤)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7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