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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어원진인(御原眞人; 미하라노마히토)

어원진인(御原眞人; 미하라노마히토)
정중창태주부천황(渟中倉太珠敷天皇; 누나쿠라후토타마시키노스메라미코토)[시호는 민달(敏達; 비다츠)이다.]의 황자(皇子) 언인대형왕(彦人大兄王; 히코히토오에노미코)의 후손이다.
 
【주석】
1. 어원진인(御原眞人)
어원(御原; 미하라)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 담로국(淡路國) 삼원군(三原郡) 삼원(三原; 미하라)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 병고현(兵庫縣) 남담로시(南淡路市) 일대이다.
어원진인은 여기에만 보인다.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천평보자 3년(759) 6월 10일자 「대화국성하군전지매권(大和國城下郡田地賣券)」(『대일본고문서』 4-368)에 보이는 어원상판(御原相坂)을 어원진인씨 일족이라고 보았다.
2. 정중창태주부천황(渟中倉太珠敷天皇)
정중창태주부천황은 제30대 천황(재위 572~585)이다. 중국식 시호는 민달천황이다. 『고사기』 에는 소명창태주부명(沼名倉太珠敷命; 누나쿠라노후토타마시키노스메라미코토)이라 기재되어 있다. 물부씨(物部氏), 중신씨(中臣氏)와 함께 배불론의 입장에서 소아마자(蘇我馬子)와 대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민달천황에 관해서는 좌경(左京) 황별(皇別) 「노진인(路眞人)」 조(006)의 민달천황 참조.
3. 언인대형왕(彦人大兄王)
『고사기』 민달천황단에는 ‘인판일자인태자(忍坂日子人太子; 오시사카노히코히토노오호에노미코)’, 『일본서기』 에는 ‘압판언인대형황자(押坂彦人大兄皇子; 오시사카노히코히토노오에노미코), 언인황자(彦人皇子; 히코히토노미코), 언인대형황자(彦人大兄皇子; 히코히토노오에노미코)’라고 적혀 있다. 『일본서기』 민달천황 4년(575) 정월 갑자조에는 “식장진수왕(息長眞手王)의 딸 광희(廣姬)를 세워서 황후로 삼아 한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낳았다. 그 첫째가 압반언인대형황자(押坂彦人大兄皇子)이다”라고 적혀 있다. 또한 민달천황 5년(576) 3월 무자조에는 “유사(有司)가 황후(皇后)를 세울 것을 청하여 풍어식취옥희존(豐御食炊屋姬尊)을 황후로 삼았다. 두 명의 아들과 다섯 명의 딸을 낳았다. 그 셋째가 소간전황녀(小墾田皇女)인데 언인대형황자(彦人大兄皇子; 히코히토노오에노미코)에게 시집갔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고사기』 와 『일본서기』 에 기재된 언인대형왕에 관한 계보 기사는 어원진인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된다. 그러나 어원진인씨가 주장하는 언인대형왕의 후손임을 증명할 기록이 「고기」 와 「구전」 에 존재하지 않아 미정잡성에 기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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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진인(御原眞人; 미하라노마히토)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7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