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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상원촌주(桑原村主; 구하하라노스구리)

상원촌주(桑原村主; 구하하라노스구리)
 한(漢) 고조(高祖)의 7세손인 만덕사주(萬德使主)로부터 나왔다.
 
【주석】
1. 상원촌주(桑原村主)
『일본서기』 신공황후 섭정 5년조의 “신라에 가서 도비진(蹈鞴津)에 진을 치고, 초라성(草羅城)을 함락시키고 돌아왔다. 이때의 포로들은 지금의 상원(桑原), 좌미(佐糜), 고궁(高宮), 인해(忍海) 등 4읍 한인(漢人)들의 시조이다”에 나오는 상원(桑原)이다. 『화명유취초(和名類聚抄)』 에는 대화국(大和國) 갈상군(葛上郡) 상원향(桑原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원촌주씨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주조(朱鳥) 원년(686) 4월조에 “시의(侍醫) 상원촌주가도(桑原村主訶都)에게 직광사를 주었다. 성을 내려 연(連)이라 하였다”라고 하여 상원촌주가도의 인명이 보인다. 이해에 그는 촌주에서 연(連)을 받았다. 『속일본기』 문무(文武) 3년(703) 정월조에 내약관(內藥官) 상원가도(桑原訶都)라는 인물이 연(連) 성을 받고 있는데, 상원촌주가도(桑原村主訶都)와 동일 인물로 보인다. 『일본서기』 천무(天武) 13년(684) 5월조에는 상원련인족(桑原連人足)이 나오는데 시기적으로 모순이며 연(連) 성의 개변이라고 생각된다. 『속일본기』 천평신호(天平神護) 원년(765) 정월조에 상원련도주(桑原連島主)가 있다. 또 동 보귀(寶龜) 원년(770) 10월조에 상원련도주가 외종5위하에서 종5위하로 진급되었고, 동 보귀 9년(778) 7월조에는 종5위상으로 진급되고 상원공(桑原公)으로 개성되어 있다. 그는 명부(命婦)로 나오는데, 명부가 5위 이상의 여성(內命婦), 5위 이상의 관인의 처(外命婦)를 총칭하므로 여성임을 알 수 있다. 동 천평신호(天平神護) 2년(766) 2월조에는 상원촌주족상(桑原村主足床), 상원촌주강마려(桑原村主岡麻呂) 등 40인이 상원공(桑原公)의 성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40인 중에 상원씨 일족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상원공씨(桑原公氏) 일족으로는 상원공족도(桑原公足島, 『속일본기』 천평신호 원년 윤10월조), 상원공추성(桑原公秋成, 『類聚國史』 193, 渤海, 延曆 14년 5월조), 상원공복적(桑原公服赤, 『類聚國史』 99, 敍位, 弘仁 11년 정월조)이 있다. 상원공복적은 『일본문덕천황실록』 인수(仁壽) 2년(852) 2월조에는 홍인 13년(822)에 도숙녜(都宿禰)의 성으로 개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상원씨 역시 중국계로 분류하고 있으나, 도비진(蹈鞴津), 초라성(草羅城)의 지명으로부터 가야계일 가능성이 높다.
2. 한고조(漢高祖)
한나라를 건국한 초대 황제인 유방(劉邦, 기원전 256?~기원전 195)이며, 시호는 고조, 존호는 고황제이다. 『사기』 고조본기와 『한서』 고조기에 상세하다.
3. 만덕사주(萬德使主)
대화국 제번의 「상원직(桑原直)」 조(939)에는 만득사주(萬得使主)로 나오고, 그 본계는 “상원사주(桑原使主)와 조상이 같으며, 한 고조 7세손 만득사주(萬得使主)의 후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섭진국 제번의 「상원사(桑原史)」 조(984)에는 “상원촌주와 조상이 같고, 고려인 만덕사주의 후손이다”라고 하여 만덕사주를 고구려인으로 본다. 〈판상계도〉에 인용된 『신찬성씨록』 일문에는 아지왕(阿智王, 阿智使主)이 고구려, 백제, 신라에 산재해 있는 본국의 인민을 데려오기를 청하자 인덕(仁德) 대에 따라온 사람들의 후손 중에 상원촌주가 보인다. 아지사주 전승은 『일본서기』 응신기 20년 9월조에 관련 기록이 보인다. 출자에 대해서는 한 고조의 후예라는 주장은 가탁이고, 한반도계 중에서도 백제, 가야 지역으로부터 도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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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촌주(桑原村主; 구하하라노스구리)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10_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