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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소수련(掃守連; 가니모리노무라지)

소수련(掃守連; 가니모리노무라지)
 진혼명(振魂命; 후루무스비노미코토)의 4세손 천인인명(天忍人命; 아메오시히토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주석】
1. 소수련(掃守連)
소수련은 소부련(掃部連; 가니모리노무라지)으로도 표기된다. 소수련이라는 씨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화천국 신별 「소수수(掃守首; 가니모리노오비토)」 조에서 “웅략천황 대에 청소 일을 감독하여 소수련을 사성받았다”라고 적고 있듯이, 청소 관련 업무를 관장한 반조씨족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소수련씨 중에서 육국사에 이름이 보이는 최초의 사람은 『일본서기』 대화 5년(649)5월 계묘삭조에 사신으로 신라에 파견된 대산상 소부련각마려(掃部連角麻呂)이다. 『일본서기』 백치 4년(653) 5월 임술조에서는 소을상 소수련소마려(掃守連小麻呂)가 부사(副使)로 당에 파견되었다. 이후 소수련씨는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2월 기묘조에서 숙녜를 사성받았다. 숙녜를 사성받은 후 『속일본기』 대보 원년(701) 춘정월 23일조에는 아하류(阿賀流), 천평보자(天平寶字) 8년(764) 동10월 7일조와 동10월 28일조에는 광족(廣足)이 보인다. 『일본후기』 대동(大同) 원년(806) 춘정월 28일조에는 제족(弟足)이 보이며, 『속일본후기』 승화 3년(836) 5월 10일조에는 명(明)이 보인다.
소수숙녜를 사성받지 못한 소수련씨는 『속일본기』 신귀(神龜) 2년(725) 동10월 21일조에 소수련족광산(掃守連族廣山)이 보인다. 이후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2년(835) 2월13일조에 소수련풍상(掃守連豐上)과 소수련풍영(掃守連豐永)이 보이는데 이들은 선세숙녜(善世宿禰)를 사성받았다.
고문서에 이름이 보이는 소수련씨로는 천평 17년(745) 4월 17일자 「내소부사해(內掃部司解)」(『대일본고문서』2-408)에 정7위상 행영사(行令史) 소수련(掃守連)이 보이는데, 이로써 내소부(內掃部)의 영사였던 소수련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천평승보 2년(750) 8월 「경사상일장(經師上日帳)」(『대일본고문서』3-456)에 미선사인(未選舍人) 소수련광야(掃守連廣野)가 보인다.
소수련씨는 『신찬성씨록』 하내국 신별에도 보이는데, 이 소수련씨도 진혼명의 4세손 천인인명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 좌경 신별의 소수련씨와 동족임을 알 수 있다.
2. 진혼명(振魂命)
진혼명은 『선대구사본기』 신대계기(神代系紀)에 진혼존(振魂尊)으로 표기되고 있는데, 진혼존의 아들 전옥명(前玉命)이 소수련(掃守連) 등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다.
『신찬성씨록』 하내국 신별에 소수숙녜(掃守宿禰; 가니모리노스쿠네)가 진혼명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 천인인명(天忍人命)
천인인명은 『고어습유』에서 소수련의 먼 조상으로 등장한다. 즉 “천조(天祖) 언화언(彦火尊; 히코히노미코토)이 해신의 딸 풍옥희명(豐玉姬命)과 결혼하여 언렴존(彦瀲尊)을 낳았는데, 낳아 기를 때에 해변에 집을 지었다. 이때 소수련의 먼 조상 천인인명이 곁에서 받들어 모시며 빗자루를 만들어 게를 청소하고 포설(鋪設)을 관장하게 되어 이를 직책으로 삼게 되어 해수(蟹守; 가니모리)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신찬성씨록』 대화국 신별의 소수(掃守), 하내국 신별의 소수련(掃守連)과 소수조(掃守造), 화천국 신별의 소수수(掃守首)가 진혼명의 4세손 천인인명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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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련(掃守連; 가니모리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1_0040_002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