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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신송조(神松造; 가미마츠노미야츠코)

신송조(神松造; 가미마츠노미야츠코)
 도신(道臣; 미치노오미)의 8세손 금촌대련공(金村大連公)의 후손이다.
 
【주석】
1. 신송조(神松造)
신송조는 이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습개초(拾芥抄)』에 신사조(神私造)가 보인다. 대반씨 계보인 『고옥가가보』에는 금촌대련공의 아들 우지고련공(宇遲古連公)의 후손으로 우치대반련(宇治大伴連), 신사련(神私連), 대반력진련(大伴櫟津連)이 보인다.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신송조(神松造)가 신사련(神私連)을 오사(誤寫)한 것으로 보고, 신사(神私; 가미노키사이치)씨는 신(神; 가미)씨 중에서 사부(私部)의 반조가 된 씨일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신사련씨는 앞의 『고옥가가보』 이외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고옥가가보』에서 우지고련공(宇遲古連公)의 후손 씨족인 우치대반련씨(宇治大伴連氏)와 대반력진련씨(大伴櫟津連氏)의 본거지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신사련씨(神私連氏)의 본거지도 추정 가능하다. 대반력진련씨는 『속일본기』 신귀(神龜) 원년(724) 10월임인조에 명초군(名草郡)의 소령(少領) 정8위하 대반력진련자인(大伴櫟津連子人)이 보여 기이국 명초군의 유력 호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치대반련(宇治大伴連)씨는 기이국 명초군 우치(宇治)를 본거로 하던 씨족이었다. 따라서 이들 씨족과 함께 우지고련공(宇遲古連公)의 후손으로 등장하는 신사련씨도 기이국 명초군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던 씨족이었을 것이다.
2. 도신(道臣)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도신명(道臣命)으로 기재되었을 것이다.
3. 금촌대련공(金村大連公)
『일본서기』에서는 금촌대련공(金村大連公), 대반금촌련(大伴金村連)이라고 표기하였다. 무열천황 즉위전기에서 인현천황이 죽은 후 태자(무열천황)의 명으로 대신(大臣) 평군진조(平群眞鳥)와 유(鮪) 부자를 치고 무열천황을 즉위시켰다 그 공으로 자신은 대련이 되었다. 그 후 무열이 후사 없이 죽자 월전국에 있던 응신천황의 현손 언주인왕의 아들 계체천황을 영입하여 즉위시켰다.
이후 안한, 선화, 흠명 대에도 대련이었으나, 흠명 초에 백제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비난을 받고 실각하였다.
* 『습개초(拾芥抄; 슈가이쇼)』
원래 서명은 ‘습개약요초(拾芥略要抄)’로 백과사전이다. 겸창(鎌倉; 가마쿠라) 시대에 원형이 성립한 후 남북조시대에 등원공현(洞院公賢)이 이를 증보하였다. 세시(歲時), 문학(文學), 관위(官位), 국군(國郡),명소(名所) 등 99개 부문으로 나누어 저술한 백과편람이다. 『연희식』 이후 공가(公家)의 제도와 신앙,습속 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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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조(神松造; 가미마츠노미야츠코) 자료번호 : ss.k_0001_0040_002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