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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가본련(榎本連; 에노모토노무라지)

가본련(榎本連; 에노모토노무라지)
 위와 같다.
 
【주석】
1. 가본련(榎本連)
가본(榎本; 에노모토)은 박본(朴本; 에노모토)으로도 표기한다. 이 씨명은 지명과 관련이 있다. 『화명유취초』에는 산성국(山城國) 을훈군(乙訓郡) 가본향(榎本鄕)이 있다. 율전관(栗田寬)은 가본련이 이곳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일본서기』에 보이는 대반박본련(大伴朴本連; 오토모노에노모토)씨에 주목하였다. 즉 『일본서기』 천무천황 원년 6월 갑신조에서는 대반박본련대국(大伴朴本連大國; 오모노에노모토노오쿠니)이 감라촌(甘羅村; 가무라노무라)의 엽사 20여 인의 우두머리였다고 적고 있는데, 따라서 박본은 감라촌 부근을 본거지로 하던 사람으로 추측하였다. 감라촌은 현재 나량현 우타군(宇陀郡) 대우타정(大宇陀町) 신락강(神樂岡) 부근으로 추측되고 있다(『일본서기』 하, 암파서점, p. 388). 좌백유청은 가본씨의 가본은 대화국(大和國)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뒤에 대화국 갈상군(葛上郡) 가본장(榎本莊)이라는 지명이 존재하는 곳을 가본씨의 본거지로 추정하였다. 이곳은 현재 나량현(奈良縣) 어소시(御所市) 백원(柏原) 소자(小字) 가본(榎ノ本)이다.
가본련씨로서 최초로 육국사에 이름이 보이는 사람이 앞에서 언급한 대반박본련대국이다. 대국은 임신의 난 때에 엽사들을 거느리고 대해인황자(천무천황) 측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가본련씨 일족으로는 『속일본기』 천평신호(天平神護) 원년(765) 동10월 계묘조에 보이는 명초군(名草郡)의 의소령(擬少領) 가본련천도(榎本連千島)가 나오는데, 그는 기이국 명초군의 호족 세력으로 추정된다. 『일본문덕천황실록』 가상 3년(850) 9월임오조에도 그 후 『일본문덕천황실록』 가상 3년(850) 9월 임오조에 섭진국에 가서 팔십도(八十島)를 제사지낸 사람 중에 궁중 무녀(御巫)로 무위였던 가본련정자(榎本連淨子)가 보인다.
그 후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14년(872) 12월 26일 임술조에 절부(節婦) 안예국(安藝國) 좌백군(佐伯郡)의 하본련복좌매(榎本連福佐賣)에게 관위 두 단계를 올려 주고 집안의 조를 면제하고 문려에 표시하였다고 적고 있다. 정관 18년(876) 11월 25일 무술조에서는 가본련직자(榎本連直子)가 외종5위하로 상병(尙兵)으로 임명되었다고 적고 있다. 상병은 천황이 거주하는 내리(內裏)에서 근무하는 여관 중에서 호위 등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2. 동상(同上)
『신찬성씨록』완본에서는 ‘도신명십세손좌저언지후야(道臣命十世孫佐▼{弖-丿+丨}彦之後也)’라고 적었을 것이다. 대반씨 계보인 『고옥가가보』에서는 금촌대련공의 아들로 반련공(磐連公),협수언련공(狹手彦連公), 강수고련공(糠手古連公), 아피포자련공(阿被布子連公), 우지고련공(宇遲古連公)을 적고 협수언련공에 대해서 대반련(大伴連), 대전부련(大田部連), 가본련(榎本連) 등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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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본련(榎本連; 에노모토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1_0040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