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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경부조(輕部造)

경부조(輕部造)
 석상(石上; 이소노카미)과 같은 조상이다.
 
【주석】
1. 경부조(輕部造)
경부(輕部)라는 씨명에 대해 좌백유청(佐伯有淸)은 경부의 반조씨족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경부에 대해 『고사기』 윤공천황단에서 윤공천황이 목리지경태자(木梨之輕太子; 기나시노카로노미코)를 위한 명대(名代; 나시로)로 경부(輕部)를 두었다고 적고 있다. 목리지경태자는 윤공천황의 제1황자로 저군(儲君)의 지위에 있었으나, 그 후 친여동생 경대낭황녀(輕大娘皇女; 가루노오이라츠메)와 간음한 것이 발각되어 실각하였다. 『고사기』에서는 윤공천황이 죽은 후 간음 사실이 발각되어 목리지경태자가 이예국(伊豫國)으로 유배되었다고 적고 있으나, 『일본서기』에서는 윤공천황 24년에 사실이 발각되어 경대낭황녀만 이예국으로 유배되었다고 적고 있다.
명대(名代; 나시로)는 『관직요해(官職要解)』에서는 왕족의 공업(功業)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설치한 부민(部民; 베민)이라고 적고 있다. 윤공천황이 태자 목리지경태자의 세력 강화를 위해 사유민으로 경부를 두었고, 경부를 지휘하는 경부조를 두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목리지경태자가 추문으로 실각하므로 그에게 소속된 경부나 경부조는 없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경부조를 목리지경태자의 명대였던 경부와 연관시키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경부는 율령제 시대에 화천국(和泉國) 화천군(和泉郡) 경부향(輕部鄕)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곳은 현재 대판부(大阪府) 천북군(泉北郡) 충강정(忠岡町)이다. 경부라는 씨명을 가진 씨족은 경부조 이외에 경부신(輕部臣; 가루베노오미)이 있다. 경부신의 경부라는 씨명도 앞의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경부신은 『고사기』효원천황단(孝元天皇段)에서 효원의 손자 무내숙녜(武內宿禰; 다케시우치노스쿠네)의 아들 허세소병숙녜(許勢小柄宿禰; 고세노코가라노스쿠네)의 후손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서기』 천무 13년(654) 11월조에서 조신을 사성받는 52씨족 중의 하나로 등장하여, 이후 경부조신이 된다. 그러나 이후 경부조신씨는 사서에 보이지 않고 『신찬성씨록』에도 씨명이 보이지 않아, 7세기 말 이후 쇠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부조씨 일족은 고문서에 보인다. 천평 15년 9월 1일 「섭진국이(攝津國移)」(『대일본고문서』 2-338)에 경부조궁장(輕部造弓張)과 경부조고마려(輕部造古麻呂), 경부조광녀(輕部造廣女)와 천평승보 3년 3월 10일 「자전구비마려해(茨田久比麻呂解)」(『대일본고문서』 3-491)에 보이는 경부조이여지(輕部造伊與志)와 경부조진옥족매(輕部造眞屋足賣)등이 있다.
2. 석상동조(同祖)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석상’ 다음에 ‘조신’이라는 글자가 있었을 것이다. 석상조신에 관해서는 앞의 좌경 신별(상) 「석상조신」 조(346) 참조.
경부조가 석상조신과 같은 조상이라는 것은 『선대구사본기』 천손본기에 실린 물부씨(物部氏)의 계보에서 요속일존의 9세손 옥승산대근고명(玉勝山代根古命; 다마츠야마시로네코노미코토)이 산대수주작부련(山代水主雀部連; 야마시로노미나세노사키베노무라지), 경부조(輕部造; 가루베노미야츠코), 소의부수(蘇宜部首; 소키베노오비토) 등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다. 즉 경부조의 조상 옥승산대근고명은 물부씨의 조상인 요속일존의 9세손이므로 경부조는 석상조신과 같은 조상을 가진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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