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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빙숙녜(冰宿禰; 히노수쿠네)

빙숙녜(冰宿禰; 히노수쿠네)
 석상(石上; 이소노카미)과 같은 조상이다.
 
【주석】
1. 빙숙녜(冰宿禰)
빙(冰; 히)이라는 씨명은 빙실을 관리하고 왜왕(천황)에게 바치는 직책과 관련이 있다.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2월 기묘조에 의하면 빙련(冰連) 등 여러 씨족이 숙녜 성을 사성받았다고 하므로 빙숙녜의 옛 씨성은 빙련임을 알 수 있다. 빙련 씨 일족으로는 『일본서기』에 빙련노인(冰連老人; 히노무라지오키나), 빙련진옥(冰連眞玉; 히노무라지마타마), 빙련노(冰連老; 히노무라지오유)가 보인다. 백치 4년(653) 5월 신해삭 임술조에 대사(大使) 길사장단(吉士長丹)과 함께 당에 파견된 121명의 사신단 중에 학생 빙련진옥의 아들 빙련노인이 등장하며, 백치 5년(654) 2월조에서는 빙련노인이 을축년(천지 3년,664) 이후에 귀국하였다고 적고 있다. 지통 4년(690) 10월 을축조에서는 제명 7년(661)에 백제구원군에 참가하였던 빙련노가 당군에 포로가 되었다가 천지 3년(664)에 귀국하였다고 적고 있다.
빙숙녜씨 일족으로 사서에 보이는 사람은 빙숙녜계마려(冰宿禰繼麻呂; 히노스쿠네츠구마로)이다.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12년(845) 춘정월 갑인조에 빙숙녜계마려가 정6위하에서 외종5위하로 승서되고, 이후 승화 15년 춘정월 갑술조에 준하개(駿河介)로 임명되었다. 『일본문덕천황실록』 제형(齊衡) 3년 4월 무술조에서는 산위(散位) 외종5위하로 향년 76세였던 그의 훙전을 싣고 있다. 이를 통해 그가 좌경인(左京人)으로 준하개(駿河介) 이외에 산박사(筭博士), 주계조(主計助)를 역임하였을 알 수 있다. 고문서에서는 천평 5년 「우경계장(右京計帳)(『대일본고문서』 1-502)의 빙숙녜도미녀(冰宿禰刀彌女), 천평 17년 12월 21일부 「사경소청기서지해(寫經所請綺緖紙解)」(『대일본고문서』8-590)의 빙숙녜금궁(冰宿禰金弓)과 빙숙녜광만려(冰宿禰廣萬呂), 승력(承曆) 2년 12월 30일부 「주세료출운국정세반각장(主稅寮出雲國正稅返却帳)」의 빙숙녜방성(冰宿禰方盛) 등이 보인다. 그 밖에 평성궁 목간(『平城宮發掘調査出土木簡槪報』 4-7)에 빙숙녜궁계(冰宿禰宮繼)가 보인다.
2. 석상동조(石上同祖)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석상(石上)’ 다음에 ‘조신(朝臣)’이라는 글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상조신에 대해서는 좌경 신별(상) 「석상조신」 조 참조. 『선대구사본기(先代舊事本紀)』 천손본기(天孫本紀)에서는 물부씨의 조상 요속일존(饒速日尊)의 11세손 물부포도구류련공(物部布都久留連公; 모노노베노후츠쿠루노무라지노키미)의 손자 물부대전숙녜련공(物部大前宿禰連公; 모노노베노오마에노스쿠네노무라지노키미)이 빙숙녜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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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숙녜(冰宿禰; 히노수쿠네) 자료번호 : ss.k_0001_0040_0010_0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