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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약탕좌숙녜(若湯坐宿禰; 왕카유에노스쿠네)

약탕좌숙녜(若湯坐宿禰; 왕카유에노스쿠네)
 석상(石上; 이소노카미)과 같은 조상이다.
 
【주석】
1. 약탕좌숙녜(若湯坐宿禰)
약탕좌(若湯坐)는 약탕인(若湯人)으로도 표기한다.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2월기묘조에 의하면 약탕인련(若湯人連)이 숙녜 성을 사성받았다고 하므로, 약탕좌숙녜의 옛 씨성은 약탕좌련(若湯坐連)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약탕좌라는 씨명은 『고사기』 수인천황단에 처음 보인다. 수인이 아들 본모지화기어자(本牟智和氣御子)를 어떻게 양육할지 대후에게 묻자 대후는 “유모를 두고 대탕좌(大湯坐)와 약탕좌(若湯坐)를 두어 양육하면 된다.”라고 대답하였고, 수인은 아들을 위해 조취부(鳥取部), 조감부(鳥甘部), 품지부(品遲部), 대탕좌(大湯坐), 약탕좌(若湯坐)를 두었다고 한다. 탕좌(湯坐)는 뜨거운 물을 준비하여 갓난아이를 목욕시키는 사람을 가리키며, 대탕좌는 나이 많은 탕좌, 약탕좌는 나이 적은 탕좌를 가리킨다. 약탕자련(若湯坐連)은 약탕좌를 지휘하는 반조씨족이었을 것이다.
약탕좌련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고사기』 나 『일본서기』에 보이지 않고, 천무천황 13년에 약탕좌숙녜라는 씨성을 사여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사서에 보이는 최초의 인물은 『속일본기』 양로 3년(719) 5월 계묘조의 약탕좌숙녜가주(若湯坐宿禰家主)로, 대초위하(大初位下) 약탕좌련가주(若湯坐連家主)에게 숙녜(宿禰)라는 성(姓)을 사여하였다고 한다. 『속일본기』에는 이외에도 약탕좌숙녜씨 일족이 보인다.
728년에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약탕좌숙녜소월(若湯坐宿禰小月), 745년에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여관(女官) 약탕좌숙녜계녀(若湯坐宿禰繼女), 765년에 정6위상 외종5위하로 승진한 약탕좌숙녜자인(若湯坐宿禰子人), 772년에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여관 약탕좌숙녜자충(若湯坐宿禰子虫)이 있다.
2. 석상동조(石上同祖)
『신찬성씨록』완본에는 ‘석상(石上)’ 다음에 ‘조신(朝臣)’이라는 글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선대구사본기(先代舊事本紀)』 천손본기(天孫本紀)에서는 물부씨의 조상 요속일존(饒速日尊)의 7세손 건담심대녜명(建胆心大禰命; 다케이코코로오네노미코토)의 동생 대미포명(大咩布命; 오메후노미코토)이 약탕인련(若湯人連)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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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탕좌숙녜(若湯坐宿禰; 왕카유에노스쿠네) 자료번호 : ss.k_0001_0040_0010_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