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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아도숙녜(阿刀宿禰; 아토노스쿠네)

아도숙녜(阿刀宿禰; 아토노스쿠네)
 석상(石上; 이소노카미)과 같은 조상이다.
 
【주석】
1. 아도숙녜(阿刀宿禰)
아도숙녜의 옛 씨성은 아도련(阿刀連; 아토노무라지)이다. 천무천황 13년(684)에 아도련씨의 종가는 숙녜(宿禰) 성을 사성받아 이후 아도숙녜로 불리게 된다.
아도(阿刀; 아토)는 아도(阿都; 아토), 안두(安斗; 아토), 아두(阿斗; 아토), 안도(安刀; 아토), 안도(安都; 아토), 적(迹; 아토)으로도 표기된다. 아도라는 씨명은 지명과 관련이 있다. 『일본서기』 용명천황 2년 4월 병오조에 따르면 아도(阿都)는 물부수옥대련(物部守屋大連; 모노노베노모리야오무라지)의 별업(別業)이 소재한 곳의 지명으로, 물부씨의 세력권이었다. 이곳은 율령제 시대에는 하내국(河內國) 섭천군(渋川郡) 적부향(跡部鄕)이라는 행정구역명이 되었으며, 현재 대판부(大阪府) 팔미시(八尾市) 식송정(植松町) 일대이다.
아도련씨가 사서에 보이는 것은 천무천황 대 이후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안두련지덕(安斗連智德; 아토노무라지치토코)과 안두련아가포(安斗連阿加布; 아토노무라지아카후)가 672년 임신의 난 때 대해인황자(뒤의 천무천황)의 측근으로 활약하였음을 알 수 있다. 673년 2월에 천무천황이 즉위식을 거행한 후에 아도 지역의 유력자임을 말해 주는 아도련이라는 씨성을 지덕과 아가포에게 사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서기』 천무 13년(684) 12월 기묘조에 의하면 아도련은 다른 씨족들과 함께 새로 숙녜(宿禰)라는 성을 사여받았는데, 이때 사성받은 사람은 안두력지덕과 안두련아가포, 그리고 이들의 자식들일 것이다. 이후 『속일본기』 화동 원년(708) 정월 을사조에 지덕이 정6위상에서 종5위하로 승진하였다.
한편 숙녜 성을 사성받지 못한 아도련씨 중에 아두련약(阿斗連藥; 아토노무라지쿠수리)이 보인다. 천무천황 대 말기인 주조 원년(686) 1월에 난파궁(難波宮)이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아두련약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 궁으로 옮겨 붙었다고 한다.
8세기에 아도련씨나 아도조씨에게 숙녜 성을 사성하는 일이 이어졌다. 『속일본기』양로(養老) 3년(719) 5월 계묘조에서는 정8위하 아도련인족(阿刀連人足; 아토노무라지히토타리) 등 3인에게 아도숙녜라는 씨성을 사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慶雲) 3년(769) 7월 임오조에서는 769년에 좌경인 아도조자로(阿刀造子老) 등 5인에게 아도숙녜(阿刀宿禰)라는 씨성을 사여하였다고 하므로 아도조씨(阿刀造氏) 중에서도 아도숙녜가 된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도숙녜씨는 8, 9세기에 관인으로 활약하였다. 『속일본기』에 보이는 아도숙녜씨는 외종5위하까지 승진하였다. 『속일본기』 신호경운 2년(768) 7월 신축조에 정6위하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여관(女官) 안도숙녜풍도(安都宿禰豐島; 아토노수쿠네토요시마), 보귀 2년(771) 11월 정미조에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아도숙녜진족(阿刀宿禰眞足; 아토노스쿠네마타리), 연력 10년(791) 춘정월 무진조에서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안도숙녜장인(安都宿禰長人; 아토노스쿠네나가히토)이 모두 외종5위하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진족은 대학조(大學助), 안예개(安藝介), 주계두(主計頭) 등을 역임하였으며, 장인은 주세조(主稅助)를 역임하는 등 실무 관료로 활약하였다.
『일본후기』에서는 모두 안도숙녜(安都宿禰)로 표기하고 있는데, 안도숙녜입주(安都宿禰笠主; 아토노스쿠네가사누시), 안도숙녜풍영(安都宿禰豐永; 아토노스쿠네토요나가), 안도숙녜길자(安都宿禰吉子; 아토노스쿠네요시코)의 관위 수여 기사가 보인다. 안도숙녜입주는 연력(延曆) 16년(797) 2월 계유조에서 태정관의 사생(史生) 종7위하로 등장하는데, 찬일본기소(撰日本紀所)에서 공봉(供奉)한 노고를 치하하여 관위를 두 단계 승진시켰다고 한다. 대동(大同) 원년(806) 2월 기유조에서 정6위상 안도숙녜풍영이 외종5위하로 승진하고 있으며, 홍인(弘仁) 3년(812) 5월 경신조에서는 여관 안도숙녜길자가 종6위상에서 종5위하로 승진하고 있다.
이후 아도숙녜씨는 『속일본후기』 승화 2년 3월 25일조에 종5위하 아도숙녜대족(阿刀宿禰大足; 아토노수쿠네오타리)이 보인다. 여기에서는 기이국(紀伊國) 고야산(高野山) 금강봉사(金剛峯寺)에서 입적한 공해법사(空海法師; 구카이)의 장례를 위해 순화천황이 부물과 함께 조서(弔書)를 보냈는데, 조서에서 공해가 15세 때 숙부인 종5위하 아도숙녜대족에게 글을 읽는 것을 배웠다고 적고 있다. 공해의 세속 씨성은 좌백직(佐伯直; 사헤키노아타이)이므로, 아도숙녜대족은 공해의 외삼촌이었을 것이다.
2. 석상동조(石上同祖)
『선대구사본기(先代舊事本紀)』 천손본기(天孫本紀)에서는 물부씨의 조상 요속일존(饒速日尊)의 손자 미요전명(味饒田命; 우마시니기타노미코토)이 아도련(阿刀連) 등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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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숙녜(阿刀宿禰; 아토노스쿠네) 자료번호 : ss.k_0001_0040_0010_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