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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대호수(大戶首; 오헤노오비토)

대호수(大戶首; 오헤노오비토)
 아폐조신(阿閇朝臣; 아헤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대언명(大彦命; 오히코노미코토)의 자식인 비모유비명(比毛由比命; 히모유히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안한(安閑; 안칸) 때에 하내국(河內國; 가후치노쿠니)의 일하대호촌(日下大戶村; 구사카노오헤노무라)에 집을 짓고 수(首; 오비토)로서 봉사하였다. 이에 대호수(大戶首; 오헤노오비토) 성을 사성받았다. 『일본기』에는 누락되어 있다.
 
【주석】
1. 대호수(大戶首)
대호(大戶; 오헤)라는 씨명은 위의 해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하내국 일하대호촌, 율령제하에서는 하내국 하내군 대호향(大戶鄕)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 대판부 동대판시 일하정(日下町) 부근이다.
대호수씨 일족으로는 「등원궁적출토목간(藤原宮跡出土木簡)」(『목간연구(木簡硏究)』3-18)에 일하리(日下里) 사람인 대호수말려(大戶首末呂)가 보인다. 또한 『속일본후기』승화(承和) 원년(834) 정월 신미조에 횡적(橫笛)을 잘 부는 외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대호수청상(大戶首靑上)이라는 인물이 있다. 청상에 대해서 동년 12월 을미조에는 아악생사(雅樂笙師) 정6위상 대호수조생(大戶首朝生) 등 30명과 함께 양지숙녜(良枝宿禰)를 사성받고 안배씨(安倍氏)에서 갈라져 나온 씨족[枝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속일본후기』 승화 3년 윤5월 병자조에는 하내국인(河內國人) 견당음성장(遣唐音聲長)외종5위하 양기숙녜청상(良枝宿禰靑上) 등의 본관을 우경(右京) 7조 2방으로 편입하였다고 한다.
2. 비모유비명(比毛由比命)
앞의 「일하련」 조(259) 유결명 참조.
3. 시안한어세(諡安閑御世)
완본에는 ‘광국압무금일천황시안한(廣國押武金日天皇諡安閑)’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안한천황은 『일본서기』 계보상 제27대 천황(446~536, 재위 531~535)이다. 아버지는 계체(繼體)이고, 어머니는 미장련초향(尾張連草香)의 딸 목자원(目子媛)이다. 구대형(勾兄)이라고도 하며 제28대 천황인 선화천황(宣化天皇)의 형이다. 계체천황이 사망하고 난 뒤 2년간 공위(空位)였다가 3년 후에 즉위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안한·선화 두 천황과 배다른 동생인 흠명(欽明) 사이에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양조가 대립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이른바 신해(辛亥)의 변이다. 안한 대에는 일본열도 도처에 둔창을 설치하였는데 하내국 일하대호촌에 둔창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4. 일하대호촌(日下大戶村)
일하대호촌은 율령제하에서 하내국 하내군 대호향(大戶鄕)에 해당된다. 현재 대판부 동대판시 일하정(日下町) 부근이다. 『대동유취방(大同類聚方)』 등에는 일하대호라는 지명이나 씨명이 종종 등장한다.
5. 수(首)
수는 『일본서기』 청녕기 2년 11월조와 현종 즉위전기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둔창의 책임 관리자를 의미하는 칭호로도 쓰이다가 후에 성(姓)이 되었다. 한편 기옥현(埼玉縣)행전시(行田市) 도하산고분(稻荷山古墳)에서 출토된 철검명에 ‘장도인수(杖刀人首)’라는 신분이 보이듯이 수(首)는 늦어도 5세기 후반대까지 각종 직장자(職掌者)의 장(長)을 뜻하는 칭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6. 일본기루(日本紀漏)
『일본서기』 안한기에는 대호수라는 씨성의 유래에 대해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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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수(大戶首; 오헤노오비토)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13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