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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한시전부조(韓矢田部造; 가라야타베노미야츠코)

한시전부조(韓矢田部造; 가라야타베노미야츠코)
 상모야조신(上毛野朝臣; 가미츠케노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도요키이리히코노미코토)의 후손이다. 3세손인 미모리별명(彌母里別命; 미모리와케노미코토)의 후손이 현고군(現古君; 우츠시코노키미)과 기장족비매(氣長足比賣; 오키나가타라시히메)[시호는 신공(神功; 진구)이다.]이다. 축자(筑紫; 츠쿠시)의 강빙궁(橿冰宮; 가시히노미야)에 계실 때 바다 속에 물건이 있어 현고군(現古君; 우츠코노키미)을 보내 살펴보도록 하였다. 돌아와 아뢰는 날에 한소사주(韓蘇使主; 가라노오미) 등을 데리고 오니 한시전부조(韓矢田部造; 가라야타베노미야츠코)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일본기』에는 누락되어 있다.
 
【주석】
1. 한시전부조(韓矢田部造)
한시전부(韓矢田部; 가리야타베)라는 씨명은 한인(韓人)으로 편성된 시전부의 반조씨족에서 유래한다. 본거지는 섭진국 팔부군(八部郡) 팔부향(八部鄕)이었다. 현재 병고현(兵庫縣) 신호시(神戶市) 병고구(兵庫區) 시부정(矢部町) 일대이다. 한시전부조씨 일족으로는 『군서류종(群書類從)』(15-470)에 실려 있는 관평 8년(896) 2월 10일자 「장곡사연기문(長谷寺緣起文)」 에나오는 신시전부조미마려(辛矢田部造米麻呂)가 있다. 「장곡사연기문」 에는 덕도(德道)라는 승려의 속세 이름이 신시전부조미마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섭진국에는 군(君) 성을 가진 한시전부군씨도 있었는데 신시전부군(辛矢田部君)이라고도 한다. 천평 15년(743) 9월 1일자 「섭진직이(攝津職移)」(『대일본고문서』 2-338)에는 신시전부군법마려(辛矢田部君法麻呂)와 신시전부군대국(辛矢田部君大國) 등 다수의 동족 인명이 보인다. 이들은 한시전부조와 동족으로 상모야조신과 같은 조상을 칭하고 있었을 것이다.
2. 상모야조신(上毛野朝臣)
『일본서기』 숭신 48년 4월조에 숭신의 황자인 풍성입언명의 후손이라고 전한다. 옛 성은 군(君)이며, 천무 13년(684) 11월에 조신 성으로 개성되었다. 하모야군(下毛野君)과 함께 관동지방을 대표하는 씨족이었다. 자세한 것은 좌경 황별(하) 「상모야조신」 조(098)와 우경 황별(상) 「상모야조신」 조(136) 참조.
3.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풍성입언명은 제10대 숭신의 아들로, 『고사기』에는 풍목입일자명(豐木入日子命), 『일본서기』에는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으로 나온다. 『고사기』 숭신천황단과 『일본서기』 숭신 48년 4월 무신삭 병인조에 의하면 상모야군(上毛野君)과 하모야군(下毛野君)의 시조로 기술되어 있다. 자세한 것은 좌경 황별(하) 「하모야조신(下毛野朝臣)」 조(097)의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참조.
4. 미모리별명(彌母里別命)
『일본서기』 경행 56년 8월조에는 동국(東國) 지방의 하이를 정벌하여 다스린 인물인 어제별왕(御諸別王; 미모로와케노미코)으로 나온다. 언협도왕(彦狹島王)이 아버지이다. 언협도왕에 대해서는 좌경 황별(하) 「수수사(垂水史)」 조(107) 참조. 화천국 황별 「진현주(眞縣主)」 조(324)에는 풍성입언명삼세손어제별명(豐城入彦命三世孫御諸別命)’으로 나온다.
5. 현고군(現古君)
『일본서기』 응신천황 15년 8월 정묘조에 보이는 상모야군(上毛野君)의 조상인 무별(巫別)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6. 기장족비매(氣長足比賣)
『고사기』에는 식장대일매명(息長帶日賣命), 『일본서기』에서는 기장족희존(氣長足姬尊)으로 나온다. 중애의 황후가 되어 응신천황을 낳았다. 기장(氣長; 오키나가)은 식장(息長; 오키나가)이라고도 한다. 기장족비매의 아버지는 개화천황의 증손 기장숙녜왕(氣長宿禰王)이며 어머니는 갈성고상희(葛城高顙姬)라고 전한다.
7. 강빙궁(橿冰宮)
『고사기』 중애천황단에는 가지비궁(訶志比宮; 가시히노미야), 『일본서기』 중애 8년 정월조에는 강일궁(橿日宮; 가시히노미야)으로 나온다. 현재 복강시(福岡市) 동구(東區)에 있는 신사인 향추궁(香椎宮; 가시이구)이다. 중애가 급사하자 신공황후가 이곳에 신사를 세워 중애의 넋을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8. 한소사주(韓蘇使主)
여기에만 보여 자세히 알 수 없다.
9. 일본기루(日本紀漏)
신공황후 때 현고군이 한시전부조(韓矢田部造)를 사성받았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는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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