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원공(廬原公; 이호하라노키미)
여원공(廬原公; 이호하라노키미)
입조신(笠朝臣; 가사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치무언명(稚武彦命; 와카타케히코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손자인 길비무언명(吉備武彦命; 기비타케히코노미코토)은 경행천황의 치세 때에 동방(東方)으로 파견되어 모인(毛人; 에미시)과 흉폭한 귀신(鬼神)을 토벌하였다. 아배여원국(阿倍廬原國; 아헤노이호하라노쿠니)까지 이르렀다. 복명(復命)하는 날에 여원국(廬原國)을 하사받았다.
【주석】
1. 여원공(廬原公)
여원(廬原; 이호하라)이라는 씨명은 준하국(駿河國) 여원군(廬原郡)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 정강현(靜岡縣) 정강시(靜岡市) 암원군(庵原郡) 지역이다. 오백원(五百原)이라고도 하며 원래 성은 공(公)과 군(君)이었다. 승화 2년(835) 10월에 조신(朝臣) 성을 사성받았다(『속일본후기』). 『고사기』 효령천황단에는 효령의 황자인 일자자견별명(日子刺肩別命)의 자식으로 이파씨(利波氏), 국전씨(國前氏) 등과 동족으로 나온다. 여원공씨의 인물로는 『일본서기』 천지천황 2년(663) 8월조에 아배비라부(阿倍比羅夫)와 함께 백강전투에 파견된 여원군신(廬原君臣)이 있으며, 『속일본기』 신귀 2년(725) 윤정월조의 정8위상 오백원군충마려(五百原君虫麻呂), 「천평 10년(738) 준하국정세장(駿河國正稅帳)」(2-67) 등의 여원군족의(廬原君足礒)가 보인다.
여원(廬原; 이호하라)이라는 씨명은 준하국(駿河國) 여원군(廬原郡)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 정강현(靜岡縣) 정강시(靜岡市) 암원군(庵原郡) 지역이다. 오백원(五百原)이라고도 하며 원래 성은 공(公)과 군(君)이었다. 승화 2년(835) 10월에 조신(朝臣) 성을 사성받았다(『속일본후기』). 『고사기』 효령천황단에는 효령의 황자인 일자자견별명(日子刺肩別命)의 자식으로 이파씨(利波氏), 국전씨(國前氏) 등과 동족으로 나온다. 여원공씨의 인물로는 『일본서기』 천지천황 2년(663) 8월조에 아배비라부(阿倍比羅夫)와 함께 백강전투에 파견된 여원군신(廬原君臣)이 있으며, 『속일본기』 신귀 2년(725) 윤정월조의 정8위상 오백원군충마려(五百原君虫麻呂), 「천평 10년(738) 준하국정세장(駿河國正稅帳)」(2-67) 등의 여원군족의(廬原君足礒)가 보인다.
2. 입조신동조(笠朝臣同祖)
『고사기』 효령천황단에는 오백원군의 조상을 일자자견별명(日子刺肩別命), 입신의 조상을 약일자건길비진일자명(若日子建吉備津日子命)으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입조신에 대해서는 우경 황별(하) 「입조신」 조(169) 참조.
『고사기』 효령천황단에는 오백원군의 조상을 일자자견별명(日子刺肩別命), 입신의 조상을 약일자건길비진일자명(若日子建吉備津日子命)으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입조신에 대해서는 우경 황별(하) 「입조신」 조(169) 참조.
3. 치무언명(稚武彦命)
효령천황의 황자로 『고사기』 효령천황단에 약일자건길비진일자명(若日子建吉備津日子命)으로 나오며, 길비진언명(吉備津彦命)이라고도 한다. 좌경 황별(상) 「길비조신」 조(079)및 우경 황별(하) 「입조신」 조(169) 참조.
효령천황의 황자로 『고사기』 효령천황단에 약일자건길비진일자명(若日子建吉備津日子命)으로 나오며, 길비진언명(吉備津彦命)이라고도 한다. 좌경 황별(상) 「길비조신」 조(079)및 우경 황별(하) 「입조신」 조(169) 참조.
4. 길비무언명(吉備武彦命)
『고사기』에 길비신의 조상인 어서우이건일자(御鉏友耳建日子) 또는 길비신건일자(吉備臣建日子)로 나온다. 좌경 황별(상) 「하도조신(下道朝臣)」 조(080) 참조.
『고사기』에 길비신의 조상인 어서우이건일자(御鉏友耳建日子) 또는 길비신건일자(吉備臣建日子)로 나온다. 좌경 황별(상) 「하도조신(下道朝臣)」 조(080) 참조.
5. 동방(東方)
『고사기』 숭신천황단에 ‘동방이십도(東方十二道)’와 『일본서기』 경행천황 25년 7월조의 ‘견무내숙녜(遣武內宿禰). 영찰북륙급동방제국지지형(令察北陸及東方諸國之地形).’이라거나, 대화 2년(646) 3월조의 ‘동방팔도(東方八道)’라는 용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동방은 이후의 동해도(東海道)와 동산도(東山道) 등의 지방을 가리킨다.
『고사기』 숭신천황단에 ‘동방이십도(東方十二道)’와 『일본서기』 경행천황 25년 7월조의 ‘견무내숙녜(遣武內宿禰). 영찰북륙급동방제국지지형(令察北陸及東方諸國之地形).’이라거나, 대화 2년(646) 3월조의 ‘동방팔도(東方八道)’라는 용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동방은 이후의 동해도(東海道)와 동산도(東山道) 등의 지방을 가리킨다.
6. 모인(毛人)
일반적으로 하이(蝦夷; 에미시)라고 하며 일본 열도의 동북쪽에 거주하던 이민족을 가리킨다. 우경 황별(하)의 「좌백직」 조(168) 참조.
일반적으로 하이(蝦夷; 에미시)라고 하며 일본 열도의 동북쪽에 거주하던 이민족을 가리킨다. 우경 황별(하)의 「좌백직」 조(168) 참조.
7. 아배여원공(阿倍廬原公)
이후 준하국(駿河國) 안배군(安倍郡) 지역을 일컫는다. 현 정강현(靜岡縣) 안배군(安倍郡)과 정강시(靜岡市) 암원군(庵原郡) 지역이다.
이후 준하국(駿河國) 안배군(安倍郡) 지역을 일컫는다. 현 정강현(靜岡縣) 안배군(安倍郡)과 정강시(靜岡市) 암원군(庵原郡) 지역이다.
8. 여원국(廬原國)
중심지는 준하국(駿河國) 여원군(廬原郡) 여원향(廬原鄕)이다. 현 정강시(靜岡市) 암원군(庵原郡) 암원촌(庵原村)이다. 이곳에는 있는 삼지평고분(三池平古墳)은 곡진산고분(谷津山古墳)과 함께 여원공씨가 4세기 후반 이후 정강 및 청수평야(淸水平野)를 개척하여 이 지역의 유력한 씨족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 밖에 오왕당산(午王堂山) 3호분, 신명신사고분(神明神社古墳) 등도 여원공씨와 관계된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심지는 준하국(駿河國) 여원군(廬原郡) 여원향(廬原鄕)이다. 현 정강시(靜岡市) 암원군(庵原郡) 암원촌(庵原村)이다. 이곳에는 있는 삼지평고분(三池平古墳)은 곡진산고분(谷津山古墳)과 함께 여원공씨가 4세기 후반 이후 정강 및 청수평야(淸水平野)를 개척하여 이 지역의 유력한 씨족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 밖에 오왕당산(午王堂山) 3호분, 신명신사고분(神明神社古墳) 등도 여원공씨와 관계된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