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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고향조신(高向朝臣; 다카무쿠노아소미)

고향조신(高向朝臣; 다카무쿠노아소미)
 석천(石川; 이시카하)과 씨가 같다. 무내숙녜(武內宿禰; 다케시우치노스쿠네)의 6세손 저자신(猪子臣; 이코노오미)의 후손이다. 『일본기』와 합치한다.
 
【주석】
1. 고향조신(高向朝臣)
고향조신의 고향(高向; 다카무쿠)이라는 씨명은 율령제 하내국(河內國) 금부군(錦部郡)의 고향(高向; 다카무쿠)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 대판부(大阪府) 장야시(長野市) 고향(高向) 일대에 해당된다.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 고향신(高向臣)이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고향신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서명(舒明) 즉위전기에 대부(大夫) 고향신우마(高向臣宇摩)가 보인다. 황극(皇極) 2년(643) 11월 병자삭조에는 고향신국압(高向臣國押)이 소아씨(蘇我氏)를 따르는 한직(漢直) 등을 설득하여 무기를 버리도록 한 인물이라 적혀 있다. 또 7세기 중엽의 학자이며 관인으로 활동한 고향한인현리(高向漢人玄理)가 있다. 고향흑마려(高向黑麻呂), 고현리(高玄理)라고도 쓴다. 『일본서기』 추고(推古) 16년(608)9월 수사 배세청(裵世淸)의 송사로 파견된 견수사 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를 따라 유학을 떠나 서명천황 12년(640) 10월에 귀국하였다. 추고천황 16년에 견수사 파견 때 동행한 유학생(승)에 관해서는 『일본서기』에 기재되어 있다. 학생 왜한직복인(倭漢直福因), 나라역어혜명(奈羅譯語惠明), 고향한인현리(高向漢人玄理), 신한인대국(新漢人大國), 학문승으로 신한인일문(新漢人日文), 남연한인청안(南淵漢人請安), 지하한인혜은(志賀漢人惠隱), 신한인광제(新漢人廣齊) 등 8인이다. 이때 파견된 학생과 승려는 모두 도래인으로 구성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고향한인현리는 한인에서 고향사로 개성하였고 고향사씨는 동문씨(東文氏, 東漢氏)의 지족으로 문필과 기록을 담당한 사성 씨족의 일원이다. 사라는 성으로 보아 도래계 씨족이다. 대화개신 때 승려 민(旻)과 함께 국박사에 임명되었다. 대화(大化) 2년(646)에 신라에 파견되었다. 백치 5년(654)에 대금상(大錦上, 664~ 685년에 사용된 관위 26계 중 7위)으로 견당압사(遣唐押使)가 되어 입당한 뒤 당에서 죽었다.
고향조신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천무천황 14년(685) 5월 신미조에 앞서 13년(684)4월 갑자조에 대사로 신라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한 고향조신마려(高向朝臣麻呂)가 보인다. 『속일본기』에는 대보(大寶) 3년(703) 정월 갑자조에 북륙도(北陸道)에 파견된 종5위하(極位) 고향조신대족(高向朝臣大足), 화동(和銅) 원년(708) 3월 병오조의 우병위솔(右兵衛率), 화동 2년(709) 11월 갑인조에 산배수(山背守)에 임명된 종5위하(극위) 고향조신색부지(高向朝臣色夫智)가 보인다. 또 고향조신가주(高向朝臣家主)는 천평승보 4년(752) 4월 동대사대불개안회에서 치부소승(治部少丞)으로 당산악두(唐散樂頭), 개안사시사(開眼師施使)를 담당하고, 천평보자(天平寶字) 8년(764) 10월 등원중마려(藤原仲麻呂)의 난 때 공적을 세워 정6위상에서 종5위하(극위)로 승진하였으며, 천평신호(天平神護) 2년(766) 9월에는 남해도사(南海道使)로 파견되었다.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원년(859) 3월 26일 임오조에는 정6위상에서 종5위하(극위)로 승진한 고향조신공보(高向朝臣公輔)가 보인다. 원경(元慶) 4년(880) 10월 19일 기해조의 졸전에는 산위(散位) 종4위하 고향조신공보가 우경인(右京人)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연력사(延曆寺)에서 거주하면서 진언교(眞言教)를 배우고 정진하다가 환속하였고, 극위는 종4위하이며 중궁대진(中宮大進), 식부권소보(式部權少輔) 등을 역임하고 64세로 세상을 떴다고 적혀 있다.
2. 석천동씨(石川同氏)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석천조신동조(石川朝臣同祖)’라고 기재되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였다. 그러나 동씨(同氏)는 씨가 같은 것이고 동조(同祖)는 조상이 같은 것을 나타내므로 구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무내숙녜(武內宿禰)
『고사기』효원천황단(孝元天皇段)에는 건내숙녜(建內宿禰; 다케우치노스쿠네)로 기재되어 있다. 『일본서기』에는 효원의 증손자로 경행(景行) 천황대에 출생하여 성무(成務) 천황대에 대신의 지위에 올랐으며 중애(仲哀)를 거쳐 신공(神功), 응신(應神), 인덕(仁德)시대까지 활약한 인물로 기재되어 있다. 좌경 황별(상) 「전구조신(田口朝臣)」 조(066)의 무내숙녜 참조.
4. 저자신(猪子臣)
저자신은 여기에만 보인다. 계보상으로도 ‘무내숙녜 ○대손’이라는 표기도 보이지 않아 무내숙녜와 연결되어 있는 것 자체가 의문스럽다. 또 고향씨는 하내국(河內國) 금부군(錦部郡) 일대에 거주한 씨족이다. 근거리의 하내국(河內國) 석천군(石川郡) 일대의 석천씨와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동조관계를 맺게 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5. 일본기합(日本紀合)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 고향신이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받았다는 사성 기사와 합치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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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조신(高向朝臣; 다카무쿠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8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