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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거세조신(巨勢朝臣; 고세노아소미)

거세조신(巨勢朝臣; 고세노아소미)
 석천(石川; 이시카하)과 조상이 같으며 거세웅병숙녜(巨勢雄柄宿禰; 고세노오카라노스쿠네)의 후손이다. 『일본기』와 합치한다.
 
【주석】
1. 거세조신(巨勢朝臣)
거세조신의 거세(巨勢; 고세)라는 씨명은 율령제 대화국(大和國) 고시군(高市郡) 거세(巨勢; 고세)라는 지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 나량현(奈良縣) 고시군(高市郡) 고취정(高取町)에 해당된다.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는 거세신(巨勢臣: 고세노오미) 등 52씨가 조신 성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거세(巨勢; 고세)는 허세(許勢; 고세)라고도 표기한다.
거세신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계체(繼體) 원년(507) 정월 갑자조의 허세남인대신(許勢男人大臣; 고세노오히토노오미), 흠명(欽明) 원년(540) 9월 기묘조의 허세신도지(許勢臣稻持; 고세노오미이나모치), 흠명 5년(544) 3월조의 허세나솔기마(許勢奈率奇麻)와 이름이 빠진 허세신(許勢臣), 흠명 31년(570) 7월 시월조(是月條)의 허세신원(許勢臣猿), 숭준(崇峻) 즉위전기(卽位前紀) 거세신비량부(巨勢臣比良夫) 등이 있다. 황극(皇極) 원년(643) 11월 병자삭조의 소덕(小德) 거세덕태신(巨勢德太臣)과 대화 원년(645) 7월조의 거세덕태신(巨勢德太臣), 백치 4년(653) 5월조의 거세신약(巨勢臣藥) 등이 있다.
거세신 일족 중에는 대외관계 직무에 종사하는 인물이 많다. 『일본서기』 흠명천황 31년(570) 7월에는 허세신원(許勢臣猿; 고세노오미사루)이 근강(近江; 오우미)에 도착한 고구려 사신을 맞이한 인물로 나온다. 또 숭준천황 4년(591) 11월 임오조에는 거세원신(巨勢猿臣; 고세노사루노오미)이 기남마려숙녜(紀男麻呂宿禰), 대반설련(大伴囓連) 등과 함께 임나 부흥을 위한 대장군이 되어 축자(筑紫)에 머물렀다고 적혀 있다. 대화 원년(645) 7월에는 거세덕태신(巨勢德太臣, 徳太는 徳陀・徳陀子・徳太古・徳陀古로도 표기)이 고구려가 파견한 사신에게 조를 전하였다고 하고, 백치 2년(651) 시세조에는 신라가 파견한 사신 지만사찬(知萬沙湌) 등이 축자에 정박했을 때 신라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로 나온다. 백치 4년 5월 임술조에는 견당학생이 된 중신겸족의 아들 정혜 등 학문승과 함께 당으로 건너간 학생(學生) 거세신약(巨勢臣藥)이 기재되어 있고, 지통천황 3년 5월 무술조에는 효덕천황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신라에 파견된 거세도지(巨勢稻持)가 나온다. 『속일본기』 경운(慶雲) 4년(707) 3월 경자조에는 견당부사(遣唐副使) 종5위하 거세조신읍치(巨勢朝臣邑治)가 보인다.
거세조신 일족으로는 『일본서기』에는 천무천황 14년(686) 3월 신유조의 경직대부(京職大夫) 직대삼(直大參) 허세조신신단노(許勢朝臣辛檀努), 천무천황 14년(686) 9월 무오조의 직광사 거세조신속지(巨勢朝臣粟持; 고세노아소미아하모치), 천무천황 14년 10월 갑신조의 직광사 거세조신마사(巨勢朝臣馬飼), 지통천황 즉위전기의 거세조신다익수(巨勢朝臣多益須), 지통천황 7년(693) 4월 신사조의 거세조신마려(巨勢朝臣麻呂) 등이 있다. 또 『속일본기』 양로(養老) 원년(717) 정월 기미조에 중납언(中納言) 종3위 거세조신마려(巨勢朝臣麻呂)의 졸전이 적혀 있고, 신귀(神龜) 원년(724) 6월 계사조에 중납언(中納言) 정3위 거세조신읍치(巨勢朝臣邑治)의 졸전이 보이고, 연력(延曆) 6년(787) 윤5월 기묘조에 종4위하 좌중변(左中弁) 겸 하내수(河内守) 거세조신묘마려(巨勢朝臣苗麻呂)의 졸전이 기재되어 있다. 양로 4년(720) 10월 무자조에 종5위하(극위) 거세조신족인(巨勢朝臣足人)이 식부(式部) 원외소보(員外少輔)에 보임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천평(天平) 원년(729) 3월 갑오조의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로 승진한 거세조신소마려(巨勢朝臣少麻呂), 보귀(寶龜) 5년(774) 정월 정미조의 정5위하에서 정5위상(극위)으로 승진한 거세조신공성(巨勢朝臣公成) 등이 보인다.
* 왜계 백제 관료(倭系百濟官僚)
왜인 계통이면서 백제의 관료가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일본서기』 흠명기에 기재된 왜계 백제 관료를 보면, 상부(上部) 덕솔(德率) 과야차주(科野次酒), 기신(紀臣) 나솔(奈率) 미마사(彌麻沙), 허세(許勢) 나솔 가마(哥麻), 물부(物部) 나솔 용가다(用歌多), 물부 나솔 가비(哥非), 상부 나솔 물부오(物部烏), 상부 나솔 과야신라(科野新羅), 물부 시덕(施德) 마기모(麻奇牟), 중부(中部) 나솔 기련(己連), 기주신(旣酒臣, 許勢臣; 고세노오미), 하내직(河內直) 그리고 민달기(敏達紀)의 달솔 일라(日羅) 등이 있다.
이들의 활동 내용을 보면, 백제 왕권에 봉사하는 백제 관료로서 왜 왕권에 군사력을 요청하기 위해 청병사의 임무를 띠고 파견되거나 신라에 의해 멸망된 금관국 등 임나 제국을 구원하기 위해 안라가야에 파견되었다.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엽까지 백제가 북방에서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며 남방에서 가야 제국을 둘러싸고 신라와 대립하고 있던 상황에서 대외 활동에 종사한 인물들이다. 특히 이들에게 대왜 외교를 담당하게 한 것은 왜어에 능숙한 외교관적 능력 때문이었고, 가야에 파견한 것도 가야에 와 있던 왜 사신 등과의 언어 소통 등에 유효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2. 석천동조(石川同祖)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석천’ 다음에 ‘조신(朝臣)’이라는 2글자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였다.
3. 거세웅병숙녜(巨勢雄柄宿禰)
『속일본기』에는 거세남병숙녜(巨勢男柄宿禰)에게 세 명의 아들, 즉 작부조신(雀部朝臣)등의 조상인 이도숙녜(伊刀宿禰), 경부조신(輕部朝臣) 등의 조상인 성천건일자(星川建日子), 거세조신(巨勢朝臣) 등의 조상인 호리숙녜(乎利宿禰)가 있다고 적혀 있다. 『고사기』효원천황단(孝元天皇段)에는 건내숙녜(建內宿禰)의 7남 2녀 중 둘째 아들인 허세소병숙녜(許勢小柄宿禰; 고세노오카라노스쿠네)라고 적혀 있고, 허세소병숙녜(許勢小柄宿禰)의 분주에는 거세신(巨勢臣), 작부신(雀部臣), 경부신(輕部臣)의 조상이라고 적혀 있다. 『일본서기』에는 계보에 관해서는 기술되어 있지 않다. 또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정관(貞観) 3년(861) 9월 26일조에는 거세남한숙녜(巨勢男韓宿禰)가 무내숙녜(武內宿禰)의 다섯째 아들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4. 일본기합(日本紀合)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684) 11월 무신삭조의 거세신(巨勢臣; 고세노오미)등 52씨가 조신 성을 받았다는 사성 기사와 합치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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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조신(巨勢朝臣; 고세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80_0020